우리 같이 늙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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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같이 늙었구나
  • 은옥주
  • 승인 2018.04.11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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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낡은 건물, 낡은 나 - 은옥주 / 공감미술치료센터 소장


<인천in>은 지난 2016년 6월부터 '공감미술치료센터' 은옥주 소장과 미술치료의 길을 함께 걷고있는 딸(장현정), 아들(장재영)과 [미술치료사 가족의 세상살이]를 격주 연재합니다. 은옥주 소장은 지난 2000년 남동구 구월동에 ‘미술심리연구소’를 개소하면서 불모지였던 미술치료에 투신, 새 길을 개척해왔습니다. 현재는 송도국제도시에 '공감미술치료센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건물에 수도요금 폭탄이 터졌다.
보통 30만원 안팎으로 나오던 요금이 160만원이나 나왔으니 깜짝 놀라고 걱정이 되어 탐사하시는 분을 이분 저분 부탁해도 신통한 해결점이 보이지 않았다.
건물 곳곳을 샅샅이 뒤지고 다니다 보니 오래된 건물이라 곳곳이 흠집투성이 이고 어디부터 손을 대야할 지 마음이 답답하고 짜증이 났다.

소개받은 기술 좋은 아저씨가 마침 꼭 짚어내어 주셔서 수도 문제는 해결했지만 뒤돌아보니 이 건물의 살았던 30여년의 세월 동안 늘 고장나고 얼어터지고 물이 넘치고 해서 마음을 놓고 지낼 수가 없었던 것 같다.

“에잇 이제 다 낡아서 신경 쓰이니 팔아치우고 신경 안 쓰고 좀 살아야겠다.” 하고 털어놓았더니 가족들이 다 그러자고 엄마는 인제 몸 편히 살아야 된다고 마구 건물 흉을 보는 것이었다. 그런데 왜 내 마음이 달라지는 지,  건물 흉보는 소리가 듣기 싫어서 조금 전 까지도 있는대로 짜증을 내던 내 입에서 “그래.. 건물도 늙고 나도 늙었다. 그래도 이 건물 덕분에 너희가 공부도 마음껏 하고 우리가 즐겁게 살 수 있게 됐잖아!” 하고 건물을 두둔하는 말이 나도 모르게 나왔다.

이사 올 때만해도 나는 두 계단을 껑충껑충 뛰어 올라오던 젊은 아줌마였다.
집이 있는 4층 정도는 아무 문제도 없었는데 요즘 아래층에 내려갈 때는 큰 숨 쉬고 용기를 좀 내어야 갈 수 있고 피곤한 날은 4층이 400계단 쯤되는 듯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런데도 건물 구석구석에 문제가 생긴 것처럼 내 몸도 건강진단을 해보니 온몸이 구석구석 병명이 붙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낡아 있었다.

새삼 낡은 건물에게 미안해졌다.
‘그래 우리 가족을 살리느라고 너 참 애썼다.
고장 나거나 힘들 때 짜증이나 냈지. 평소에 별로 고마워하지 않고 살았구나’
나는 낡은 건물과 낡은 나 스스로에게 새삼스럽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수고 했다. 참 수고 많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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