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타는 죄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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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타는 죄가 없어요
  • 양진채
  • 승인 2018.04.20 06: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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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단편소설 <콜트스트링의 겨울> / 이상실



이상실 소설가의 단편소설 <콜트스트링의 겨울>은 부평 갈산동에 있었던 기타를 제조하던 콜트악기 투쟁을 전면화한 소설이다.
저임금과 열악한 작업환경, 여성노동자에 행해지던 폭언과 폭행을 개선하고자 2006년에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극심한 노동착취를 당하며 살던 노동자들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자발적으로 노동조합을 만든 것이다. 사측에서는 2007년 4월에는 인천 콜트악기 노동자 56명을 정리해고하고, 7월에는 계룡시에 있는 콜텍 악기를 위장폐업하고 남아있던 67명 전원을 정리해고 했다. 그들은 공장에서 쫓겨났고, 광화문광장에 텐트를 쳤다. 회사는 공장을 해외로 이전해버렸다. 법원의 복직판결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기타로 명성을 날리던 콜트악기의 명성도 죽었다. 지난 4월 19일, 콜트콜텍 노동자들은 11년의 긴 투쟁을 마무리 짓고 다시 12년째를 시작해야 했다.
소설 <콜트스트링의 겨울>은 부당해고 농성과 해산 과정을 ‘신발’을 상징으로 해서 소설화해내고 있다.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도 최고의 기타를 만든다는 자부심을 가졌던 노동자들이었다.

 
그들은 추위에 떠밀려 공장안으로 들어갔다. ‘콜트스트링 노동자밴드’가 노동가요를 부르며 ‘투쟁!’을 연호했다. 승우가 윤지에게 물었다.
“저 밴드의 기타도 여기서?”
“저것도 여기서 만든 거고 다 내 손을 거쳐 간 제품이야.”
승우가 자신의 기타를 만지작거렸다.
“내 것도?”
“그것도.”

 

그러나 그 자부심은 노동자의 권리를 찾기 위해 일어선 순간 무너진다. 경찰기동대와 용역은 불법으로 공장을 점유했다는 이유로 무자비하게 농성자를 끌어낸다.
 

‘단결로 연대로, 부당해고 복직투쟁!’
‘단결로 연대로, 부당해고 복직투쟁!’
해고자 대표인 노조위원장이 구호를 선창했고 농성자들이 따라했다. 그들은 바닥에 누워서 스크럼을 짰다. 주먹을 쥐고 천장을 향해 팔을 쳐들었다. 그러나 용역들의 완력에 힘을 잃었고 스크럼은 실타래처럼 풀리고 말았다. 저항은 몸부림에 지나지 않았다. 모두 아래층으로 끌려 나갔고 경찰기동대 차량에 태워졌다.

 

그렇게 연행되었던 윤지가 사라진다. 승우의 집에 무언가를 놓고 간다는 말을 남긴 채.
승우는 윤지의 동선을 찾아 윤지가 두고 간 물건이 무엇인지 찾다가 신발장에서 자신의 것이 아닌 신발을 본다. 그것은 윤지가 새 신발을 사기 전에 신던 신발이었다.

 
나는 내가 신고 있는 이 신을 ‘콜트로바’라고 지었는데 이젠 이걸 벗어버리려고 새 신을 샀어. 새 신을. 새 신발 이름은 ‘달로바’로 지을 거야. 콜트스트링을 벗어나서 달나라로 가는 신발이라는 의미지. 자유의 세계로 가는 달로바. 멋지지 않아? 한 번 만져 봐. 신발 코에 달 모양도 있어. 어때 달이 잡히지? 승우는 새로 산 신발 이름을 뭘로 지을 거야?
승우는 새로 산 신발 이름을 이 세상을 함께 걷자는 의미로 ‘함께걸음’이라고 금세 지었다.

 

‘콜트로바’라는 신발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신발은 콜트악기 투쟁을 해나가는 동안 신었던 신발이었다. 윤지는 이 신발을 승우 집에 놓고 새로 산 신발 ‘발로바’를 신고 간 것이다. 기나긴 투쟁에 지친 윤지가 이 싸움의 장에서 떠난 것이다. 몇 년째 투쟁을 하고, 사람들이 죽어나가도 그 싸움을 아는 이가 드물다.
 
 
사람들이 죽었어. 몇이나 될까. 많았지. 맨 먼저 죽은 사람은 남자였어. 강 씨가 콜트스트링에서 부당해고를 당하고 나서 시간제로 택배 일을 하다가 비관 자살을 한 거야. 다음으로 해고 무효투쟁을 하다가 옥상에서 투신한 최 씨가 죽더니, 문 씨 성을 가진 여잔데 우리 회사에서 해고 된 뒤로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죽었고, 그렇게 여자 남자가 죽고 또 죽어갔어. 얼마 전에 뉴스 봤잖아? 노숙자 황 아무개가 서울역에서 죽었다고. 다음은 내가 죽을 차례라고 생각했는데, 난 그러지 못했어.
 
비록 나는 내 남편의 아내고 딸하고 아들을 둔 엄마일지라도, 학창시절에는 내가 다녔던 학교의 일원이었을지라도, 해고 노동자 중의 한 명일지라도, 오천만 국민의 한 사람일지라도 내가 죽는다고 해서 오천만이 사천구백구십구만 구천구백구십구 명으로 수정됐다가 또 어느 산모의 뱃속에 있던 아이가 내 죽음을 대신해서 태어날지라도 오천만으로 환원되지 않아. 빼기도 더하기도 없는 여전한 오천만이지. 그래서 나 하나를 떼 놓고 보면 존재가치가 없는 거야.

 

연예인이나 정치인의 움직임은 실시간 보도 되지만 11년간 최장기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노동자의 목숨을 건 투쟁을 주목하는 이는 거의 없다. 공장에서 쫓겨나 광장에 텐트를 칠 수 밖에 없는 그들의 싸움에 귀 기울이는 이는 드물다.

 
콜트스트링 업주가 몇 십 년 간 몇 백억씩 흑자 보다가 한 이삼 년 적자났다고 정리해고를 감행한 거야. 법원에서도 정리해고가 부당하다며 복직판결이 났는데, 결국 필리핀으로 공장을 옮겨 버리고 갈산동에 있는 콜트스트링은 문을 닫아버렸잖아. 국가와 사용자는 주체고 우리는 객체야.

 
그래도 아주 외롭지만은 않다. 그들의 11년 투쟁을 함께 기억하고 알리고자 했던 11일간의 연대 프로젝트가 어제까지 있었다. 정부종합청사 옆 농성장을 꾸미고 미술팀들이 천막 미술관도 세워주었다. 음악인들이 문화제를 준비하고, 미술작가들이 현장 드로잉도 진행했다.
승우는 광화문 집회 현장에서 윤지를 찾는다. ‘콜트로바’ 신발을 들고. 윤지가 ‘달로바’를 싣고 사라졌지만 다시 올 것이라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승우의 짐작대로 윤지는 집회 해산과정에서 부딪혀 넘어진 승우 앞에 나타난다. 그리고 낡고 헌, 옆구리에 기타주름 같은 주름이 잡힌 헌 신발 ‘콜트로바’로 갈아 싣는다.
 
소설은 승우의 시점으로 서술되고 있어 윤지의 갈등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윤지는 다만 ‘콜트로바’를 벗고 ‘달로바’로 갈아 신었을 뿐이다. 그리고 결국 돌아온다. 윤지가 떠날 수 밖에 없었던 마음도, 끝내 그 거리, 광장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던 마음도 결국 독자의 몫이 된다. 그러한 서술은 독자로 하여금 감정 이입을 하지 않은 채 냉정하게 읽게 한다. 마치 아무것도 모르면서 우리의 싸움을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인상이다.
 

윤지는 손에 든 목련 잎을 승우의 손에 얹었다.
“만져 봐.”
승우는 잎사귀를 문질렀다. 서걱대는 소리가 났다.
“우리가 지금 자연을 탐닉하는 건 사치 아닐까?”
승우가 말하자 윤지는 ‘우리가 이 땅을 밟고 있는 것도 사치’라며 몇 술 더 떴다.


 
지금도 부평의 GM 노동자의 삶이 휘청이고 있다. 노동자가 인간적인 대우, 노동력에 대한 정당한 대우를 받는 것, 그들이 누리는 조그만한 것들이 ‘사치’가 아니라 삶이 되어야 한다. 12년째 싸움을 시작할 수 밖에 없는 콜트콜텍 노동자의 싸움을 우리 모두가 끝낼 수 있도록 힘을 모아줄 수 있어야 한다. 이상실 소설가의 <콜트스트링의 겨울>은 그래서 고맙다.




@정택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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