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즈, 새로운 여행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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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즈, 새로운 여행의 시작
  • 양진채
  • 승인 2018.05.08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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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타이페이 101빌딩과 민중중정기념관
<101빌딩에서 내려다본 타이페이 시내 ⓒ양진채>


이틀 동안 오키나와와 이시가키, 다케도미를 둘러보는데 좀 지쳤다. 무엇보다 다케도미에서 이시가키로 배를 타고 나와 다시 텐더보트로 갈아타야 했는데, 줄이 어마어마했다. 2000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이시가키를 구경하고 모였으니 당연했다. 100명 정도 탈 수 있는 텐더보트는 15분 거리에 있는 크루즈까지 승객을 태워야 했고, 크루즈를 운영하는 코스타 측 텐더보트는 많지 않았다. 한 시간 가량을 배를 타기 위해 줄을 서 있어야 했다. 코스타 측에서는 1회용 물수건, 음료수, 시원한 물을 나눠주었다. 지칠만 할 때쯤에는 크루즈 내에서 오락을 담당하던 댄서 몇이 이동용 엠프를 가지고 돌아다니며 음악을 틀고 춤을 추면서 지친 승객을 달랬다. 그래도 다리 아픈 건 어쩔 수 없었다. 특히나 연로하신 분들이 많은데 좀 무리라는 생각이었다.
겨우 ‘우리 집’인 크루즈로 돌아와 씻고 저녁을 먹었다. 식사는 뷔페에서든 레스토랑 정찬이든 어느 것이든 가능했다. 선상신문인 ‘Today’는 매일 저녁이면 배달되어 다음날의 다양한 정보와 프로그램을 소개해주었다. 프로그램이 소개된 쪽만 절취할 수 있도록 되어 있어 수첩에 끼워 넣고 어디를 갈까, 무얼 먹을까 고민 될 때 중간 중간 확인하면 유용 했다.
 
저녁을 먹고 대공연장에서 매직쇼를 관람하고 5층 그랜드바를 지나는데 홀에서 ‘미스 코스타 세레나 선발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미모와는 크게 상관이 없는 최종 세 명의 후보가 워킹, 섹시한 댄스, 연기력을 선보였다. 몸을 사리지 않고 즐기는 후보 덕분에 바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배꼽을 잡고 웃었다.


<크루즈, 코스타 세레나 내 대공연장 ⓒ최슬기>


크루즈 안에서는 어디서든 음악이 나오면 몸을 가볍게 흔드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춤을 잘 추는 사람이 아니라 즐기는 사람들이 보기 좋았다. 한두 명이 춤을 추기 시작하면 너도나도 춤을 추었고, 나중에는 군무가 되었다. 오래 전에는 이렇게 동네에 경사가 있으면 사람들이 모여 음식도 나누고, 노래도 하고 춤도 추고 했던 때가 떠올랐다. 문득, 맛있는 음식을 두고 떠오르는 얼굴처럼, 함께 여행을 오고 싶은 지인들이 생각났다. 우리도 이렇게 여행을 왔더라면 저 사람들 못지않게 이 무대를 주름잡았을 텐데, 하면서 미소를 지었다. 그럴 날이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렇게 보는 것만으로 흥에 겨워 즐기다보니 지쳤다. 크루즈를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운동이 되어 매일 꿈 없는 잠을 잘 수 있었다.
 
대만 기륭항에서는 아침 일찍 하선했다. 오후 4시쯤이면 크루즈가 대만 기륭항을 떠나기 때문에 그 전에 타이페이의 101빌딩과 민중중정기념관을 관람하는 일정이 잡혀 있었다. 피곤이 가시지 않았고, 아침 일찍 시작하는 일정이라 산뜻한 기분은 아니었다. 대만 상륙 허가 도장을 찍은 임시 여권을 들고 하선하는데 어디선가 익숙한 음악이 들렸다. 익, 숙, 한! ‘아리랑’이었다. 어디서 들리는 소리인가 했더니 대만 측 악단 십여 명이 우리 하선을 축하해주기 위해 주차장 한 편에서 연주를 하고 있었던 것 이다. 해외에서 듣는 아리랑, 작은 감동이었다.
세계 10위 안에 드는 101빌딩 90층에서 도시를 한 눈에 내려다보았다. 타이페이를 여러 번 와봤지만 101빌딩에 올라가 본 것은 처음이었다. 굳이, 라는 생각이었다. 이렇게 위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면, 그 도시에서 아웅다웅 사는 사람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 아웅다웅하는 사람 속에 내가 있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1980년 4월 5일 개관한 타이페이 중정기념관(중정은 장제스의 본명이다) ⓒ최슬기>


ⓒ최슬기
 
가이드에게 대만 역사를 간략하게 듣고 중정기념관을 관람했다. 한 나라의 위상을 아주 잠깐 생각했다.
크루즈로 되돌아오는 동안, 시간에 대해 생각했다. 비행기를 타고 어느 나라, 도시에 도착하면 일정의 절반 이상을 차에서 보내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몇 시간씩 달려 도착해서 얼마간 관광을 하고 다시 엉덩이가 아파올 때까지 달려 다른 도시로 이동해야 했다. 그야말로 ‘이동’이었다. 크루즈 역시 이동이었다. 그러나 ‘이동수단’에 방점이 찍힌다기보다 크루즈 자체가 ‘관광’에 방점이 찍힌다는 걸 알았다. 이동하는 동안을 즐기는 관광. 그러다보니 기항지에 대한 매력이 상대적으로 덜했다.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얘기를 많이 했다.
 
평소의 나를 분리시켜 놓고, 선상 액티비티를 즐기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생을 생각해보는 크루즈야말로 어떤 여행지에서도 만나기 힘든 크루즈 여행의 묘미, 힘이었다. 크루즈에서 무궁무진한 사연을 지닌 다양한 지역의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역동적인 삶을 보고 배운다, 그러니 기항지에서 크루즈로 돌아오면 밥을 먹고 또 슬금슬금, 다락방에 숨겨놓은 곶감 빼먹듯 맛있는 놀이를, 여흥을 즐길 무언가를 찾아 나서게 되는 것이다.
 
이제 크루즈는 기항지 일정을 끝내고 부산을 향해 물길을 헤쳐 간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8일 저녁시간, 크루즈는 다시 망망한 바다 한 가운데를 달리고 있다. 그 와중에 나는 뷔페와 정찬 레스토랑 어디서 식사를 할까 망설이다 방문을 나서기로 한다. 아직 저녁 먹기는 이른 시간, 감미로운 재즈가, 물놀이를 하는 아이들의 청량한 웃음소리가, 기운차게 울리는 댄스음악이, 망망한 바다의 바람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10일 점심때 쯤이면 부산항에 닿을 것이다. 로밍을 해오지 않았고, 배에서 구매한 와이파이는 용량 적어 거의 모든 정보를 차단하고 살았다. 망망한 바다 위 크루즈에서는 그래도 될 것 같았다. 아직도 나는, ‘이제 슬슬 집으로 갈 시간이 다가온다’가 아니라, 아직 들러보지 못한 또 어떤 곳, 어떤 사람들을 생각하게 된다. 마지막 밤이 될 내일은 또 어떤 음식과 쇼와 공연들이 나를, 우리를 기다릴까 설렌다.


#인천항만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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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즈에 매일 배달되는 선상 신문. 다양한 프로그램의 정보가 소개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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