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가자는데 괜찮다고 그냥 가라고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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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가자는데 괜찮다고 그냥 가라고 했어"
  • 김인자
  • 승인 2018.06.05 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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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 보행기로 이동하시는 할머니(2)


"할머니, 아드님이 할머니 보러 자주 와요?"
"아니, 바빠서 잘 못와."
"예에?"
"근데 이쁜 색시 바쁜 거 아닌가? 괜히 나 때문에 일에 지장있는거 아닌가 몰라. 나 혼자 가도 돼. 바쁜데 얼른 가요."
"저 바쁜거 없어요, 할머니. 괜찮아요."
"안 바쁘긴.우리 아들도 바쁘다고 혼자 사는 지 에미 얼굴도 한번 보러 못오는데? 허긴 서운해할 것도 읍는게 요즘 사람들 너나 나나 할거 없이 죄다 바쁘지. 안 바쁘믄 또 먹고 살기가 힘들잖아. 그렇게 생각하믄 바쁜게 영 나쁜건 아니야."
할머니가 나를 보며 웃으신다. 그 웃음이 참 좋은데 왼쪽 가슴 언저리가 싸하니 시리다.


"내가 맻 년 전에만 해도 이거 읍시도 안 가는데, 읍시 오만 군데 죄 돌아댕겼는데. 요즘은 얘가 없으믄 집 밖에 나갈 엄두를 못내. 나한텐 야가 자식새끼보다도 더 큰 의지가 돼."
"예, 할머니 저희 친정엄니도 지팽이가 없으믄 요기서 조기도 잘 못 걸으셔요."
"이런, 색시 친정엄니도? 올해 연세가 어찌 되시나?"
"예, 내년이면 구순이셔요."
"구순? 그름 올해 아홉이신가?
나보다 다섯 살 위시구만.
그래도 걸어다니시긴 허지?"
"예, 지팡이 짚으시고 걷긴 걸으시는데 많이는 못 걸으세요. 다리에 힘이 없으셔서 조금만 걸으셔도 고자리에 풀석 주저앉으셔요."
"에구, 그르시구만. 정신은 있으시고?"
"예에... 치매에 걸리셔서 그러시죠..."
"이런, 요양원에 모셨나?"
"아니요,저희 집에 계셔요."
"에고, 젊은 색시가 고생이 많겠네. 복받을거야. 고맙네, 고마와.
나두 살아있는 동안은 내 정신 가지고 내 손으로 밥이라도 끓여먹다가 죽어야 되는데. 밤에 자다가 조용히 가길 소원하는데 그렇게 죽는 것도 복을 타고 나야 허는거라서... 내가 죽는 복이라도 타고 났을까? 매일 내가 기도하는게 바로 이거야. 밤새 자다가 그냥 고대로 죽게 해달라는거."
"예, 할머니 제가 보기에도 울 할무니는 건강하게 잘 사시다가 떠나실 때 되믄 소풍가듯이 편안하게 가실 거 같아요."

"아고오, 이쁘게 생긴 색시가 우짜믄 이르케 말도 이쁘게 하나그래? 하기사 지난번에 다치지만 않았어도 내가 지금 이깟거에 의지하가네? 안 그랬음 지금도 나는 펄펄 날라 댕길건데."
"할머니 다치셨어요?"
내가 할머니의 툭 튀어나온 무릎을 보며 여쭈니 할머니가 걷던 걸음을 멈추시고 무릎을 걷어 보여주신다.
"이게 다친 다리야. 그때는 이렇게 될지 몰랐지."
"어쩌다가 무릎이 이리 되셨어요? 할머니."
"내가 걸어가고 있는데 오토바이가 와서 칵 박았어. 그날도 오늘처럼 교회가고 있었는데... 저도 놀래고 나도 놀래고 젊은 아가 뛰어와서 괜찮냐고 하는데 괜찮다고 했지. 병원 가자는데 괜찮다고 그냥 가라고 했어."
"이런, 할머니 교통사고는 다쳐도 그 당시에는 아픈 거 잘 몰라요. 그 담날 되면 여기저기 탈이 나는데 병원가시지?"
"그러게 피도 안나고 일어나서 걸어보라고 해서 걸었는데 괜찮더라고. 그래서 젊은 아보고 괜찮으니 어서 가라고 했지."
"에구 할머니 그 즉시 병원에 가보셔야했는데. 병원 가자고 안했어요? 할머니 다치게 한 그 오토바이탄 사람이?"
"가자고 했지. 얼굴이 새파래가지고 안절부절 못하던걸 뭐. 배달하는 학생같던데 나도 자식을 키우면서 병원가잔 말을 못 하겠더라고. 금새 그 큰 눈에서 닭똥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질라고 하는 걸보니 에릴 때 집 나가서 객지로 떠도는 새끼 생각도 나고 그래서 나는 괜찮다 그만 가봐라 했지. 지도 을마나 놀랬갔어."
"그랬더니 그냥 갔어요? 그 아이는?"
"갔지 그럼. 집에 와서 자는데 새벽부터 오 만군데가 안 아픈데 없이 죄다 아픈거야. 온 밤을 홀랑 샜지. 으트게 이리저리 애를 쓰다가 아침이 됐는데 꼼짝을 못하겠드라고.
교회 가자고 친구가 와서 보고는 빙원에 데리고 갔는데 치료를 지대로 못 받아서 그런가 이모양 이꼴이 됐어.
그래도 이마만치 걸어댕기는게 어디야? 죽었어도 할 말 읍을 거인데. 이만하길 다행이구나, 감사하다 생각해.

에구 늙으믄 입은 닫고 주머니를 열어야 된다고 허드만 내가 주책이구만 첨보는 색시 앞에서 뭔 대지도 않는 소리를 이르케 지껄였나그래."
"아니예요, 할무니 허시고 싶은 말씀 있으시면 머시든 다하셔도 되세요."
"그르게 이쁜 색시가 늙으이 얘기를 참 잘 들어주네. 요즘 젊은 사람들 늙으이들이 머라하믄 다 듣기 싫어하는데 고마와 나 교회 다왔어."

할머니가 멀리서부터 다니시는 교회는 일반 건물 3층에 있었다. 엘리베이터도 없는데 할머니가 보행기를 어떻게 들고 계단을 올라가실까 걱정이 되었다.
"할머니, 제가 이 보행기 교회에 얼릉 올려다 놓고 올께요. 잠시만 요기서 기다리고 계셔요."
"아냐, 안 그래도 돼. 요기다 세워두고 그냥 가믄 돼. 걱정헐 거 하나투 없어."
할머니가 두고 가믄 된다고 말씀하시는 곳은 교회 앞 전봇대였다. 전봇대 옆에는 고물상이 있었다.
"할머니, 여기 사람들이 왔다갔다 많이 하는 곳이라 할머니 보행기 잃어버릴 수도 있어요. 제가 얼릉 올려다 놓고 올께요."
"아녀, 누가 안 가져가. 그리고 잃어버려도 헐 수 없어. 우에 가지고 올라 가봤자 어디 둘 데도 읍어. 여기다 두래."
"여기다요?"
"응, 그리고 이따 집에 갈 때도 성가스러. 내가 그거 가지고 내려 올라믄 힘들어. 그냥 여다 둬."
아, 할머니가 당신 혼자 걷기도 힘드신데 보행기를 들고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하는게 쉽지않으시겠구나. 길에다 두었는데 누가 가져가지 않으면 다행이겠지만 혹시 또 버리려고 내다놨나 생각하고 누가 또 가져갈 수도 있겠다 싶어 근처 철물점에 가서 자전거 매다는 줄을 사다가 층계에 매달았다.
"할머니, 이따가 집에 가실땐 이 열쇠로 요기를 열고 보행기 끌러서 밀고 가시면 되어요. 이건 요 의자 밑에 넣으시고요."
"에구 비쌀건데. 이렇게 고마울데가 있나... 글치않아도 누가 가져가믄 으트카나 내가 교회에 앉았어도 늘 마음이 불안했는데 이 은혜를 으찌 갚을꼬? 고마와요. 복 많이 받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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