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여행, 시간의 사이에서 노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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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여행, 시간의 사이에서 노닐다
  • 심형진
  • 승인 2018.06.1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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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대청도

대청도 미아동 해변


대청도는 인천 연안부두에서 쾌속선을 타고 4시간을 달려야 겨우 도착하는 섬이다. 긴 시간의 항해는 운 나쁜 여객에게는 땅을 딛고 사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가를 온몸으로 느끼게 한다. 뱃멀미에 시달린 사람은 두 번 다시 배를 타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지만 인간은 망각의 동물, 고통은 잊히고 좋았던 기억들만 남아 그 결심은 물에 빠진 휴지처럼 풀어진다. 코리아킹호를 타고 대청도로 떠난다. 두 번의 고통에 대한 대가인 듯 잔잔한 물결에 배는 이 이상 안락한 경지가 있을까 쉽게 비단결 위를 구르는 공처럼 미끄러지듯 나아간다. 해가 떠오르며 달궈진 바다에는 해무가 낮게 깔려 가까이에 있는 섬을 신비롭게 만든다.
 
여객선이 도착한 부둣가의 어수선함도 잠시 배에서 내린 여객들이 저마다의 목적지로 떠나고 나면 한낮의 따사로운 햇살조차 느릿하게 느껴지고, 시간마저 정지한 듯 고요와 평화로움이 섬을 감싼다. 하지만 섬을 조금만 다녀보면 그러한 고요와 평화로움 안에서 강렬한 역동성을 느낄 수 있다. 섬이 세월과 함께 빚어낸 풍경은 지구도 살아 숨 쉬는 하나의 생명체라는 가이아 이론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살아있는 현장이다. 격렬한 활동이 화석처럼 굳어버린 이런 곳에 서면 나는 어떤 시간을 살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위대한 자연 앞에 미약한 인간일뿐 아니라 무한한 시간 속에 사는 유한한 존재임을 깨닫는다. 여행이 호연지기를 기르는 일이라면 대청도는 최고의 여행지다. 또한 여행이 치유라면 인간 모두가 유한한 존재라는 동질성을 깨달을 수 있는 대청도는 최고의 여행지다.


바위에 새겨진 연흔 

푸르른 바닷물을 배경으로 우뚝 서 있는 기암절벽은 고장 나 멈춰선 벽시계처럼 지금 몇 시나 되었냐고 묻는다. 밀려왔다 쓸려나가는 바닷물의 흔적은 간조의 차가 큰 서해안 모래밭 어디에나 새겨져 있다. 그러나 미아동 해안에는 여느 곳과 달리 달이 모래밭 위에 새긴 물결무늬가 수직의 암벽에도 새겨져 있다. 언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모래밭 연흔이 바위가 되고 다시 그것이 휘어지고 융기하여 또 다른 모래밭 연흔을 내려다보게 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렀던 것일까? 절벽을 보고 아름답다거나 웅장하다는 생각은 많이 하지만 시간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과장하면 그 쉽지 않은 일이 대청도에서는 발걸음을 뗄 때마다 일어난다. 미아동 해변에 맞닿은 농여해변으로 발길을 옮기면 일명 나이테 바위 또는 고목나무 바위라고 부르는 기암이 나타난다. 나무가 그대로 화석이 되어버린 규화목처럼 거대한 암석은 지층에 쌓인 서로 다른 성분의 퇴적물이 압착되어 켜켜이 쌓인 나무의 나이테처럼 보인다. 나무의 나이테는 그 하나가 일 년이라면 이 고목나무 바위의 나이테 하나에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들어있을까? 눌리고 우그러지고 솟아나는 그 모든 과정을 상상하기는 쉽지만 그 시간을 가늠하기는 정말 어렵다.





지두리 해변 전망대에서 바라보이는 절벽은 대청에선 너무나 흔한 그저 그런 절벽처럼 보이지만,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필요한 곳이다. 수직 절벽에 서로 다른 지층이 켜켜이 쌓여있는 매우 평범한 곳인데, 사실 그 지층이 뒤집혀 즉 맨 위에 있는 지층이 원래는 맨 아래 있는 지층이었다니 그 쌓인 순서를 아는 이가 아니라면 원래 그러리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말을 해 주니 그런가보다 하지만 어떤 힘이 있어 땅을 엿가락 휘듯 휘어 압착을 해 놓았으랴 그저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모래 서말을 먹어야 애기는 자라서 시집을 간다’는 말이 있는 곳이 대청도다. 미아동 해변에는 썰물 때면 모습을 드러내는 모래사장이 있다. 미아동 백사장과 이어져 마치 제방처럼 바다 쪽으로 뻗어 나가있다. 이를 풀등이라고 하는데 그 풀등이 해마다 커지고 있다. 한마디로 자라고 있는 것이다. 매일매일 보면 알 수 없지만 일 년 또는 이 년 후에 본다면 확연히 달라져 있을 수도 있다. 순간순간 변화하는 것은 생명만이 아니라 자연도 마찬가지임을 느끼는 순간이다.


모래에 묻히는 문명의 흔적


이러한 기세로 풀등만이 아니라 해변 옆 절벽에도 모래가 쌓여가고 있다. 모래언덕으로 변하고 있는 그곳에는 모래를 뿜어 올린 바람이 인간들이 만든 쓰레기도 함께 떠밀어 올렸다. 모래에 반쯤 묻혀 있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보니 바람과 자연이 만드는 행사에 인간의 편리도 한몫하고 있어 씁쓰레 하다. 언제가 누군가가 이를 발견하고 시간 여행의 산물이라고 말하리라.


옥죽동 사막과 포구


옥죽동 사구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사막이라는 지명을 갖고 있다. 어디에서 날아올까 중국 아니면 황해 바다 어딘가에서 날아오고 있으리라는 추측만 있을 뿐이다. 사막이 확장되는 것을 막기 위해 심은 소나무가 십여 년 전과 달리 이제는 제법 숲을 이루었다. 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세운 방풍림은 제구실을 잘 하고 있어 사구는 무너져 내리고 있다. 관광을 위해 사람들이 바닷가 모래를 퍼서 나르지만 바람의 골이 막힌 사막은 새로운 바람길을 따라 이동하고 있다. 바람이 막힌 곳의 모래는 무너져 내리고 새로운 바람의 길을 따라 사구는 계속 모습을 바꾸고 있다. 그래서 ‘활동성 사구’라 표현하고 있다. 바닷가 모래는 파도에 의해 연흔이 생기고 사막의 모래는 바람에 의해 연흔이 생긴다. 물결무늬는 같아도 그를 만든 조물주가 다르다.


 대청부채


시간여행의 마무리는 대청도에 서식하고 있는 생물과 식물이다. 이곳에만 자라 대청이란 이름을 갖고 있는 붓꽃의 일종인 대청부채는 매우 오랜 시간의 고립이 만든 작품이다. 마다카스카르나 갈라파고스의 특이종이나 대청부채나 매 한가지 오랜 격리가 만든 새로움이다. 잎이 부채처럼 펼쳐진 모양을 따서 붙인 이름이다. 아직 시절이 일러 꽃은 비록 보지 못했지만 기름기 좔좔 흐르는 잎만 보아도 다행스런 마음이 든다. 그렇지만 꽃을 본 마음만 하겠는가?


실거리나무꽃


이런 아쉬운 마음은 지두리전망대 가는 길에 만난 실거리나무 군락지에서 가셨다. 나무도 처음인데 꽃까지 보았기 때문이다. 가시가 나무 몸통 쪽으로 기울어져 있어 지나가다 스치기만 해도 바지가 걸리기에 실거리라는 이름이 붙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노란 꽃이 매우 예쁘다.


동백나무 군락지와 꽃


매바위 전망대 아래에 있는 동백나무 군락은 이곳이 동백나무의 북방한계선이다. 육지의 북방한계선이 마량포이니 해양성 기후의 영향을 받는 섬의 특성을 알 수 있다. 꽃이 아직도 달려 있어 개화시기가 육지 보다 많이 늦은 것을 알 수 있다.
함께 간 인하대 해양학과 홍재상 명예교수는 해변에서 달랑게 군락지를 발견하고 매우 기뻐하신다. 모래사장을 빨갛게 물들인 달랑게. 인기척에 민감한 그들을 살펴보기 위해 숨죽이고 멈춰서 있는 시간은 또 다른 즐거움이다. 자신을 존재를 드러내지 않아야만 생태계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배움도 덤으로 얻는다. 이곳이 아마도 대한민국에서 제일 큰 집단 서식지로 추정할 수 있다니 대청이 갖고 있는 보물은 얼마나 무궁무진한가!
 
일박이일의 짧은 시간은 대청이 갖고 있는 매력을 탐닉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하다. 어떤 마음을 가지고 오든, 무엇을 즐기러 오든 그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대청이다. 다음날 다시 찾은 농여해변 썰물에 드러난 모래밭에서는 사람들이 삽을 들고 무언가를 잡고 있었다. 흔히 골뱅이라고 부르는 왕구슬우렁이다. 어촌계에 속해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개방된 곳이며 물이 썬 새벽에 더 많이 잡을 수 있다고 알려주기까지 한다. 대청의 인심을 알 수 있다. 다음에 다시 가야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2018년 5월 말 황해섬네트워크의 섬섬도시에서 1박2일로 대청을 다녀오다.


해당화도 모래에 잠겨 벽지의 무늬처럼 꽃만 목을 내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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