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니, 또 쌀 씻으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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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니, 또 쌀 씻으시게?"
  • 김인자
  • 승인 2018.06.12 05: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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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 심계옥엄니 쌀씻기

"내가 이번 굉일에 죄다 골라 놓을꺼니까 너는 아무 걱정할거 읍따."

일요일 저녁, 우리 심계옥엄니가 또 엉뚱한 실수를 하셨다.

토요일과 일요일 공휴일에는 우리 심계옥엄니는 치매센터인 사랑터에 가시지 않는다.
새벽에 눈 뜨시면서 부터 해가 질 때까지 왠종일 이것 저것 참견하고 다니시느라 피곤 하셨나보다. 저녁 잡숫고 방에서 나오지 않으시기에 일찍 주무시는가보다 했더니 엄니가 방이 아니라 세탁실에서 나오신다. 그런데 나를 보자마자 흠짓 놀라시며 뒤로 뭘 숨기신다. 그러더니 다짜고짜 아무 걱정할 거 없다신다.
그리고 죄다 골라 놓으시겠다고? 뭘?

"엄니 뭘 골래? 뭘 걱정하지마?"
"이거 말이야. 껌은 쌀인중 알았는데 이게 껌은 쌀이 아닌가부네." 하시며 심계옥엄니가 뒤로 숨겨놓은 걸 앞으로 내미신다. 쌀 바가지다.
"엄니, 또 쌀 씻으시게?"
"응, 씻어논 쌀이 읍길래. 내가 씻을라고 헌다."
무심히 쌀바가지를 살펴보던 나는 깜짝 놀랐다.
으아~~~이것이 또 모다냐?
허연 것은 현미쌀이 분명한데 이 검은 것의 정체는 무엇인고? 검정쌀인가 하고 자세히 살펴보던 나는 다시 또 심계옥엄니를 쳐다봤다. 그러자 울 심계옥엄니 왜에 하는 얼굴로 나를 보며 해맑게 웃으신다.

"빤질삔질한게 오래돼서 그런가 껌정쌀이 딱딱하네. 뿔라고 푹 담갔다가 씻어야겠다."하시며 쌀 바가지에 수돗물을 트셨다.
"앗, 엄니 잠깐만~~" 우리 심계옥엄니 말릴새도 없이 현미쌀과 검정색 그 무엇인가가 물에 푹 잠겼다. 깜짝 놀라 물을 따라내고 검은 것의 정체를 자세히 살펴보니 검정쌀이 아닌 결명자였다.

"아니, 아까운 물을 왜 그냥 따라버리냐?"
심계옥엄니 쯧쯧쯧 혀를 차며 나를 나무라신다.
"아깝긴 엄니!"
"아구, 깜짝이야. 나 귀 안먹었다. 왜 이리 고함을 지르냐? 귀청 떨어지것네."
"엄니! 쌀 씻어 논거 많다니까 왜 자꾸만 씻어요옷."
"씻어놓은 게 많다고? 어디 많냐? 냉장고 열어보니까 없드만. 당장 저녁 밥 할 것도 없던데?"
"쌀이 없다구? 이렇게 많은데?" 하며 냉장고를 열어 씻어놓은 쌀바가지1ㆍ2ㆍ3ㆍ4를 보여드렸더니
"아니, 아까는 없든데 니가 고새 씻어놨냐? 하시는 심계옥엄니.
"씻어놓긴 내가 언제 씻어놔? 엄니가 죄다 씻어놓으셨으면서."
"내가 은제 쌀을 씻었다고 그르냐? 나는 지금 처음 씻는다. 쌀."

치매센터인 사랑터에 다녀오시면 옷을 갈아입자마자 쌀부터 씻으시는 울 엄니 심계옥여사. 쌀 씻어놓은걸 자꾸 잊어버리시고 또 씻고 또 씻고 하신다. 지금도 엄니가 씻어놓은 쌀바가지가 냉장고에 네 바가지나 있는데 쌀 씻은걸 까묵고 또 씻으신거다.

"이거 검정쌀 아냐 엄니"
"검정쌀이 아냐? 나는 검정쌀인줄 알고 씻은건데 검정쌀이 아니면 그럼 얘는 뭐냐?"
"이건 결명자여 엄니."
"결명자? 결명자? 그게 뭐냐?"
"차 끓여 먹는거."
"차 끓여 먹는거? 차 끓여 먹는거 밥에 넣어먹음 안되냐?"
울 엄니머릿속에서 결명자가 없어졌나보다. 결혼해서 첫 아이 낳을 때까지 김포에 사시던 울엄니가 결명자, 옥수수, 보리, 몸에 좋다는 차는 다 볶아서 가져다 주셨었는데... 이제 우리 심계옥엄니는 한 쪽 눈을 실명하시면서 눈 밝게 해준다는 결명자를 제일 먼저 잃어버리셨나보다.

모두가 잠든 깊은 밤, 나는 웅크리고 앉아 심계옥엄니가 섞어 놓은 현미와 결명자를 각각 골라내고 있다.
내가 요즘 속 시끄러운걸 울 엄니가 눈치채셨나? 이밤에 나에게 도를 닦게 하시네.
아님 당신이 수년 전 뇌경색으로 쓰러지시고 재활치료할 때 팥쥐엄마처럼 내가 흰콩과 검정콩을 섞어 놓고 흰콩은 흰콩대로 검은 콩은 검은 콩대로 골라 놓으라고 혹독하게 훈련시킨 것에 대한 때늦은 복수신가?
우야든지 새벽 두 시에 이러구 앉아 현미쌀과 결명자를 골라내고 있으려니 손가락은 마디마디 아프고 눈알은 툭하고 빠질 것만 같다.

허리도 아프고 눈도 아프고 손꾸락도 아프고 에라 모르겠다 하며 뒤로 벌렁 누웠다. 누워있으니 문득 뇌경색으로 쓰러지시고 힘들게 재활 치료하시던 울엄니 생각이 난다.

뇌경색으로 쓰러지시고 울 심계옥엄니는 언어장애, 신체장애가 와서 꼼짝도 못하고 누워만 계셨다. 그래도 열심히 치료받고 재활운동을 해서 지금은 지팡이를 짚고 잘 걷진 못하시지만 짧은거리는 조금씩 천천히 걸어다니신다.
종합병원서 퇴원해서 요양병원으로 모시라는걸 집으로 모셔와 나랑 살고 계신지 7년이 됐다. 집으로 모시기는 했으나 처음에 울 엄니는 걸어서 문지방 넘는 것도 힘들어하시고 못 넘으셨다. 손 힘도 없으셔서 열어놓은 반찬뚜껑을 닫지도 못하셨다. 지금이야 엄니가 반찬뚜껑도 척척 제 짝을 찾아 꾹꾹 눌러 닫으시지만 7년 전 울엄니는 반찬뚜껑 하나도 제 짝 찾는 것도 어려워하셨고 손 힘이 없어서 눌러 닫는 건 엄두도 못내셨다.
그래도 나는 엄니에게 점심 먹고 나면 열어놓은 반찬 뚜껑을 제짝 찾아 눌러 닫는 연습을 매일 하시게 했다.
세탁해 놓은 양말 제 짝 찾아서 아이들방에 가져다 놓기. 이것도 저녁 드시고 나면 매일 하시게 했다. 이것은 우리 심계옥엄니가 걷기 연습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

"안자고 모하냐?"
화장실에 다녀오시던 심계옥엄니가 나 한번 쳐다보고 섞어놓은 현미랑 결명자 한 번 보고 한마디하신다.
"쌀에 벌레 났냐?"
"벌레 난게 아니구... 엄니가 아까 섞어놓은?" 하고 말하려는데
"그냥 두고 자라. 내가 굉일에 골랠께. 얼릉 자. 맨날 잠 부족함서." 하시며 방에 들어가신다.
잠시 후 주무시는 줄 알았던 엄니가 방안에서 큰소리로 외치신다.
"그냥 두고 얼릉 들어가서 자. 내가 쌀 씻을때 몇 번만 물에 씻으믄 벌레 다 떠내려간다. 그걸 뭐하러 일일이 고르고 있냐?"
아쿠 울엄니 내일 또 쌀 씻으려나보다. 섞어서 또 물에 담그시기 전에 빨리 빨리 골래서 엄니 안 보이는 곳에 치워 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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