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듣고 있는가 분노한 여성의 노래
상태바
너는 듣고 있는가 분노한 여성의 노래
  • 국지혜
  • 승인 2018.08.07 18: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여성칼럼] 국지혜 / 열다북스 대표

 

8월 4일 토요일 광화문에서 불법촬영 편파수사를 규탄하는 네 번째 시위가 열렸다. 지난 5월 혜화역에서부터 시작된 이 시위에 필자 역시 한 사람의 여성이자 페미니스트로서 목소리를 내기 위해 열심히 참여하였다. 이 시위는 워마드발 홍대누드모델 사건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여성들이 불법촬영의 피해자로서 오랫동안 고통 받으면서 당국의 적극적인 대책을 요구했는데도 피부로 느껴지는 변화가 없고, 몰카범 등의 가해자들이 죄질에 비해 가벼운 처벌을 받는 것을 보면서 무력감을 느끼고 있을 때였다. 한 사람의 범죄자는 수백, 수천 명의 피해자를 만들어낼 수 있고, 이런 불법촬영물들은 웹하드와 SNS등을 통해 퍼지면서 수많은 남자들이 보고 즐기며, 불법촬영의 피해자들은 심한 경우 자살에 이르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기도 한다. 웹하드에 올라오는 유출 영상의 제목에 “유작”이라고 뜨면 조회수가 더 많이 확보될 정도로 남자들은 여성들의 죽음을 하찮게 생각하며 피해자의 고통과 죽음조차도 성적으로 소비하는 것이 문화가 되었다. 여자들은 이 문제에 대해 오랫동안 목소리를 높여 왔으며, 이런 유출 영상물들의 온상지였던 소라넷을 폐지하는 데 큰 공을 들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가해자들이 받는 처벌의 정도는 미온하기 짝이 없다. 수많은 여성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며 지하철 역에서 계단을 오르내리거나 공중화장실에서 볼일 보는 일조차 불편하게 만들어 일상생활을 위축시키는 불법촬영문제가 일부 남성들의 문제로 취급될 뿐만 아니라 가해자들은 경찰의 판단에 따라 기소유예되거나 ‘초범이라서’, ‘전도유망한 청년이라서’, ‘반성하고 있어서’라며 집행유예를 받는다. 집행유예 사유 중에는 ‘피해자와 합의했다’는 말이 단골로 등장하는데, 가해자를 처벌하고 싶어 하는 불법촬영 피해자에게 수사 단계에서부터 경찰이 합의를 유도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것을 여성들은 경험으로 알고 있다. (지난 주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불법촬영물을 웹하드에 올리는 업로더가 4억을 벌고 벌금으로 단돈 5만원을 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이 업로더는 스스로가 범죄행위를 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는데 5만원 처분을 받고 자신도 황당했다고 말했고, 여자들은 분개했다.)
 
그런데 지난 5월 워마드에서 일반적인 불법촬영 사건과 성별이 뒤집힌 사건이 일어났다. 한 여성이 미대에서 진행된 크로키 수업 중에 남자 누드모델의 성기를 촬영하여 워마드 사이트에 올린 것이다. 이 사건이 일어나자마자 워마드는 ‘남성혐오사이트’라는 말과 함께 언론에 크게 보도되었고, 곧바로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하였다. 경찰은 수많은 여성 대상 불법촬영 사건들을 대할 때와는 확연히 다른 대처로 여성들을 놀라게 했는데, 사건 발생과 동시에 워마드를 수사 대상으로 삼고 일주일만에 용의자를 검거하여 포토라인에 세웠으며, 해당 여성이 촬영에 사용한 핸드폰을 한강에 던져버렸다고 하자 한강물을 뒤져서라도 증거물을 확보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런 일이 진행되는 동안 여성들이 느낀 박탈감과 분노는 곧장 대규모 시위로 이어졌다. 그동안 왜, 여성들이 피해를 호소할 때 경찰은 ‘잡을 수 없다’는 말만 반복하였는지, 뻔히 범인을 잡아놓고도 피해자에게 합의하라고 종용하면서 가해자를 옹호하고 기소유예 처리를 해왔는지, 한강에 뛰어들 기세로 증거물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는지, 왜 우리는 불법촬영 가해자가 포토라인에 선 모습을 처음으로 봐야했는지, 그렇게 신속하게 범인을 잡을 수 있었는데 왜 아직도 SNS와 웹하드에는 불법촬영물이 넘치며, 지인합성은 하나의 놀이이자 문화로까지 자리 잡았는지 여성들은 모든 것이 궁금하고, 또 분노했다.
 
또한 홍대 사건에서 ‘불법촬영의 피해자’임을 호소하는 그 남성의 사진은 사실 크로키 수업 중에 찍힌 것이 아니며, 해당 남성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휴게공간에서 쉬는 시간임에도 옷을 여미지 않고 성기를 노출하고 있어 주변 여성들을 불편하게 했다는 것, 이에 여성들이 항의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는 증언이 나오면서 여성들의 분노는 더욱 커졌다. 이 사건이 여성들이 수십 년간 당해온 몰카 범죄와 동급으로 이야기되면서 이 남성모델을 ‘피해자’로 명명하는 것이 치욕스럽고 분노스럽다고 말하는 목소리들이 높다. 남성이 일부러 성기를 노출했다면 이또한 중요한 성범죄임에도 이 문제는 자세히 파헤쳐지지 않고 있으며 남자 모델이 성기를 일부러 노출한 것이든 아니든, 그것을 찍어서 공개적인 사이트에 올리고 모욕한 것은 잘못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다면 그동안 왜 수많은 남성들이 몰카를 찍고 공개적인 곳에 올리고 피해 여성들을 능욕하여 여자들이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할 동안에 경찰과 검찰은 그렇게 무능했으며, 언론은 잠잠했는지, 여성들이 구체적인 대책을 요구했음에도 페미니스트 대통령임을 내세운 현 정부는 왜 지지부진하게 시간끌기나 하면서 더 많은 피해자들이 나오도록 방치했는지, 지금 이 순간에도 왜 몰카영상과 불법촬영물이 검색만하면 쏟아지고 있는지 여자들은 그것을 묻는 것이다. 같은 시민인데, 왜 이렇게 대우가 다른 걸까. 여성이 몰카 피해자가 되었을 때는 여성 피해자의 행실이나 옷차림을 문제 삼으면서, 남자가 피해자라고 여겨질 때는 왜 남성의 행실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하는 걸까.
 
이번 4차 시위 구호에는 인천 경찰에 대한 항의의 목소리도 담겼다. 지난 7월 말 인천 경찰이 가좌동에서 일어난 드론 몰카 사건 신고를 접수하고도 묵살했다는 뉴스가 보도되었기 때문이다. 경찰은 드론을 이용한 몰카 사건이 처음이라서 대응에 미숙했다고 발표했지만, 드론이 문제가 아니라 원래 ‘보통 여성이 피해자인 불법촬영 문제’에 보여왔던 미적지근한 태도가 문제라는 것을 여성들은 이미 알고 있다. 몰카 기술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으며 수법도 교묘해지고 있다. 여성들에게는 4차 산업혁명이 고도의 기술로 모르는 새에 불법촬영의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암시하는 것 외에 더 어떤 의미를 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여성들은 이미 공공장소에서 물병, 안경, 볼펜, 나사 모양의 특수한 몰카 장비에 노출될 것을 걱정해야 하는데 이로써 활동이 위축되고 제약되는 것은 물론이다. 범죄자가 드론을 이용하면 여성들은 이제 내 집안에 있어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 시위는 5월부터 시작해 지난 4일에 4차 시위까지 이어졌으며 여성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대책이 마련되기 전까지 매달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혜화역에서 1-3차 시위를 합해 총 10만 명이 참여했고, 광화문으로 옮겨간 4차 집회에 폭염과 집중휴가철이라는 이중의 벽을 넘어서 7만 명의 여성들이 참여했다. 주로 2030 여성들이 주도하고 있지만 회차를 더해갈수록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들이 함께하고 있다. 불법촬영 편파수사 문제는 여성들이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보장받기 위해 외치는 목소리의 시작일 뿐이다. 이제 젊은 여성들은 사회변화를 촉구하며 대규모 시위뿐만 아니라 탈코르셋 운동과 비혼비출산 운동, 그리고 소비파업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이 여성들의 목소리는 피켓 문구로 대신한다. 9월에 열릴 시위 일정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폭염이 가신 가을 하늘 아래 더 많은 여자들이 모여 외칠 것이다. 이 구호들을 보고 마음이 떨린다면, 다음 시위에는 함께 참여하여 뜨거운 자매애를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사진 출처 :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 카페
(불법촬영 편파수사 시위 카페 바로 가기 >> cafe.daum.net/Hongdaenam)

 
 
<너는 듣고 있는가 분노한 여성의 노래>
* 시위에서 불린 <여성의 노래> 중에서
너는 듣고 있는가 분노한 여성의 노래
다시는 노예처럼 살 수 없다 외치는 소리
심장박동 요동쳐 북소리 되어 울릴 때
내일이 열려 밝은 아침이 오리라
노래 듣기 >> youtu.be/4DBZZf9-r8Q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