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강의 평가와 가르칠 수 있는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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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강의 평가와 가르칠 수 있는 용기
  • 이태희
  • 승인 2018.08.16 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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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화 - 이태희 / 인천대 기초교육원 강의교수
 
 
얼마 전 동료 교수들 모임이 있었다. 주요 화제는 강의 평가에 관한 것이었다. 대학별로 약간의 시차가 있지만, 대학에서의 강의평가 실시는 대략 십 수 년이 지나고 있다. 학생들은 학기말이 되면 거의 필수적으로 수강한 강의에 대한 평가에 참여해야 한다. 대부분의 대학이 강의평가와 성적 열람을 연계시켜 놓았기 때문이다. 물론 자신의 성적을 열람하지 않겠다고 생각하면 강의평가를 수행하지 않아도 되지만 그런 학생들은 거의 없다. 교수 사회에서 한동안 강의평가에 대한 저항감이 있었지만 지금은 연착륙한 셈이다.
 
교수들이 강의 평가에 관심을 갖는 가장 큰 이유는, 솔직히 말해, 강의의 질을 어떻게 향상시킬까하는 마음보다는 강의 평가 점수가 얼마 나왔는지, 그것이 어떻게 작동할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물론 강의의 질 향상을 위한 마음이 전혀 없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강의평가 점수가 자신의 임무와 지위에 강력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관심사가 된다. 특히, 정년이 보장된 전임 교수들과 달리 매번 계약을 경신해야 하는 이른바 비정규 교수들 - 강의교수, 전임대우교수, 객원교수, 초빙교수 등 이름도 다양하다 - 의 경우엔 초미의 관심사가 된다.
 
한동안 강의 평가 점수를 참조자료 정도로 여겨왔던 대학들이 최근에 와서 강의 평가 점수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비정규 교수들의 계약 갱신은 물론, 전임교수들의 업적평가에도 반영하고 있다. 일정한 점수를 기준으로 강의 배정에 활용하는 것은 물론, 임용 여부의 자료로 활용하기도 한다. 심지어 모 대학에서는 5.0 만점의 강의 평가에서 4.0 이하의 점수를 받으면 퇴출된다고 한다. 이런 환경 속에서 강의 평가를 잘 받기 위한 ‘묘수’들이 등장한다.
 
어떤 과목의 교수는 강의 시작 10분 전에 강의실에 도착하여,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킨 후 음악을 틀어놓고, 강의실에 들어오는 학생들을 일일이 악수와 환한 미소로 맞이한다고 한다. 강의시간에 5분 늦게 들어와 5분 일찍 나가는 교수가 명교수라는 말은 옛말이다. 강의 평가를 잘 받기 위해서는 다양한 주문도 쏟아져 나왔다. 학생들에게 항상 친절하라, 학생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마라, 과제 많이 내주지 마라, 싫은 소리 하지 마라, 똑같은 질문을 여러 번 받더라고 화내지 말고 웃으면서 답하라 등등. 이 정도면 교수도 거의 감정노동자 수준이다. 더욱 놀라웠던 주문은 “강의 평가 잘 받고 싶으면, 학기말에 피자를 쏘라”는 것이었다. 헐!
 
과거 대학 교수의 ‘권위’가 살아있던(?) 시절에 비추면 격세지감이다. 교수의 말 한마디에 ‘끽’ 소리도 못 내고 숨죽이며 질문 한번하기 힘들었던 시절에 비하면, 요즘 학생들은 참 다르다. 우선 놀라운 것은, 강의마다 과목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필자가 주로 담당하는 글쓰기 과목의 경우, 필수 교양과목이어선지 강의실에서 자는 학생들을 심심찮게 본다. 강의가 졸려서 ‘조는’ 것이 아니라, 아예 팔베개하고 엎드려 ‘자는’ 모습은 예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장면이다. 필자도 처음에는 ‘자는’ 학생들을 깨워 잔소리(?)를 하곤 했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거의 깨우지 않는다. 고등학교 때부터 익힌 버릇이려니 하고 내버려 둔다. 한편으로, 과거와 달리 아르바이트에 시달리는 “졸린 청춘”들이 안쓰럽기도 하다.
 
어디서부터 풀어야할까? 어떤 동료 교수는 요즘 학생들의 풍토에 개탄하기도 한다. 강의의 성패는 강의의 질에 달린 것이지, 학생들을 위한 배려나 비위맞추는 것으로부터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좋은 강의를 해서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10분 먼저 와서 학생들을 배려하는 교수가, 학생들과 교감을 위해 호주머니 털어 피자를 쏘는 교수가 좋은 강의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문득 예의 모임에서 어느 동료가 소개하기도 했던 파커 J. 파머의 [가르칠 수 있는 용기]라는 책이 떠올랐다. 아니 그 책 속 한 구절이 떠올랐다.
 
 

 
 
“가르침의 용기는, 마음이 수용 한도보다 더 수용하도록 요구 당하는 순간에도 마음을 열어 놓는 용기이다.”
 
나는, 출석을 부르자마자 “자는” 학생들 앞에서, 노트북 떡하니 켜 놓고 ‘다른 것’ 보는 학생들 앞에서, 열심히 가르쳤는데 강의평가는 오히려 야박한 학생들 앞에서, 과연 마음을 열고 있는지, 열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천천히 물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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