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 한들한들 피어 있는 그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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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한들한들 피어 있는 그 곳
  • 양진채
  • 승인 2018.08.17 06: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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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단편소설 <아직, 코스모스> / 양진채




‘징하다’는 말이 문뜩 떠올라 사전을 찾아본다.
‘징그럽다’의 전라도 방언이란다.
올 여름에 붙이고 싶은 말, 참말로 징하요잉.
더워도 너무 더웠다. 아직도 진행중이다.

 
<양진채의 소설로 읽는 인천>을 24회까지, 만 2년 연재로 기획하고 있다.
지금까지 읽은 인천 소설을 지역별로 살펴본다.
강화군 <보리숭어>
계양구 <2번 종점>, <콜트스트링의 겨울>
남동구 <포구의 황혼>,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
동구 <부처산 똥8번지>
미추홀구 <플러싱의 숨 쉬는 돌>
부평구 <거기, 다다구미>, <나팔꽃 담장 아래>, <여우재로1번길>
연수구 <협궤열차>, <허니문 카>, <서킷이 열리면>, <천천히 가끔은 넘어져 가면서>
중구 <중국인거리>, <패루 위의 고래>, <너의 도큐먼트>, <중국어 수업>, <춘자>, <중국인 할머니>, <개항장 사람들>

연수구와 중구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 많다. 서정적이고 사라져간 곳, 낡은 곳이 소설무대로 자주 등장하는 건 어쩔 수 없다.
아쉬운 건 서구와 옹진군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 없다는 것이다. 이왕 인천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다루고 있으니 두 지역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찾아 실을 생각이다. 옹진군이 속한 섬을 배경으로 발표된 작품은 있는데, 아무리 뒤져도 서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 없다. 가좌동, 가정동, 석남동, 검단, 청라 등인데 아무래도 다른 지역과 구별되는 특색이 적고, 매립으로 생긴 지역이라 그럴까. 결국 그런 이유를 변명 삼아 몇 년 전에 발표한 내 소설 <아직, 코스모스>를 읽기로 한다.
 
<아직, 코스모스>는 매년 열리는 매립지 ‘국화축제’를 위해 한여름 코스모스 모종을 심는 얘기가 주된 소재이다. 악취 나고 더러운 쓰레기를 매립한 곳에 흙을 덮고, 우아하고 탐스럽고 아름다운 꽃들을 심어 축제를 여는 아이러니를 생각하면서 쓰게 된 소설이다. 거기에는 국화 축제이지만 국화보다 많은 코스모스도 한 몫 한다.
어릴 적 학교 다닐 때, 길가에 코스모스가 참 많았다. 꽃을 따 바람개비놀이도 했던 기억이 있다. 웬일인지 주안7동 주택에 살 때, 우리집 대문 양 옆 기둥 쪽에 코스모스를 심고 싶었다. 길가의 모종을 퍼오기도 하고, 가을에 씨를 받아다가 봄에 심기도 했다. 집에 들어가는 문앞이 코스모스 꽃으로 흔들리면 근사할 거라는 생각을 한듯하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환하게 꽃 핀 대문을 들어선 기억은 없다. 코스모스에 대한 미련이 나도 모르게 남아 있던 것일까.
 
소설 속 나는 갑자기 아저씨의 부름을 받고 허허벌판에 코스모스 심기를 하러 나간다. 코스모스는 어떤 꽃인가.


“예전엔 길가에 널린 게 코스모스였는데 이것도 뭔 귀한 꽃이라고 꽃구경 온다고 심는다요?”
“그래도 그렇지. 놔두면 알아서 싹이 나고 꽃이 피는 걸 이렇게 모종으로 심는다고 난리를 치니 이거야 원. 덕분에 우리 일거리 생겼으니 좋긴 하지만 서두.”



이런 꽃이다. 귀히 기르는 꽃이 아니라 길가에 알아서 씨가 떨어져 싹이 나고 꽃을 피우는 꽃, 가꿔서 피우는 꽃이 아니다. 그런데 지금은 코스모스 모종을 대량으로 심는 작업을 한다. 꽃 축제를 위해서.

 
“이 넓은 데가 전부 코스모스라고 생각해봐요. 장관이 따로 없죠. 지금은 모종을 심으니 감이 안 오겠지만 가을에 축제 열릴 때 한 번 와 봐요. 온통 꽃 천지죠. 뉴스에도 나고 관광버스도 몰려들고, 사람들이 꽃에 허기라도 들린 것 마냥 떼로 몰려와서 발 디딜 틈도 없이 꽃을 보겠다고 난리법석이고. 꽃이란 그런 건가봅니다.”

 
꽃에 허기진 사람들을 위해 꽃에도 질서가 있다.

 
넓은 평원이 조금씩 코스모스 모종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오전에 심었던 코스모스 모종은 자라서 진노랑 꽃을 피우는 황화코스모스였다. 그 밭은 온통 노란색으로 물결쳐야 해서 노란색이 아닌 꽃을 피우면 뽑아내야 한다고 했다. 꽃에 허기진 사람들을 위해 색을 맞춰줘야 했다. 오후에 심는 코스모스는 흰색 분홍색 보라색의 꽃들이 피어나는, 우리들이 흔히 보는 코스모스였다. 그곳에 노란 코스모스가 피면 꽃 피우기도 전에 뽑힐 것이다. 꽃들도 인간의 눈을 즐겁게 하기 위해 제 자리가 필요했다.
 

하루종일 꽃모종을 심고 돌아가는 길에서야 나는 그 허허벌판이 쓰레기매립지라는 것을 안다.
 

“이렇게 넓은 땅이 아직 남아 있는 줄 몰랐네요.”
“좋아 보이냐?”
“탁 트인 게 시원하게 보기 좋잖아요. 아저씬 안 좋아요?”
“이 땅 아래 뭐가 있는 줄 알면 기절할 걸? 우리가 매일 처리하던 냄새나고 더러운 쓰레기가 파묻혀 있는 곳이 여기야. 쓰레기를 매립한 땅이다 그 말씀이지. 겉으로 보기엔 전혀 모르겠지? 꽃이라도 피어봐라. 땅 밑에 수 천 톤의 쓰레기가 깔려 있을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하겠냐? 생각한다고 해도 그게 믿기기나 하겠나.”
아침에 아저씨 차를 타고 올 때 줄지어 지나가던 트럭들이 떠올랐다. 모두 쓰레기를 실은 차량이었다. 땅 밑에 쓰레기가 깔리고 땅 위는 한들한들 흔들리는 질서와 조화가 자란다.

 

거기다 한 술 더 떠서 코스모스 축제인 줄 알았는데 그것마저 아니었다.
 

“아저씨, 코스모스 축제는 언제해요?”
“코스모스 축제?”
아저씨는 무슨 소리냐는 듯이 불콰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우리가 오늘 하루 종일 심은 그 코스모스가 언제 꽃이 펴서 축젠지 뭔지 하냐구요? 저도 꽃이 필 때 보러가려구요.”
그제야 아저씨는 내 말을 알아들었다는 듯이 빙긋이 웃었다.
“얼씨구. 코스모스는 가을에 피지. 근데 그거 코스모스 축제 아냐. 국화축제지. 세상에 오묘한 국화들이 몽땅 모여 향기를 뿜고 자랑을 하지. 코스모스는 곁다리야. 그 넓은 땅에 전부 국화만 심을 수 없으니까 만만한 코스모스 모종을 심어놓은 거지.”
“코스모스 축제가 아니라 국화 축제라구요? 국화 모종은 안 심었잖아요? 심지도 않았는데 무슨 국화축제를 해요.”
나는 맥이 빠지는 기분이었다. 코스모스 축제를 위해 하루 종일 코스모스 모종을 심은 것이 아니라 국화축제를 위해 곁다리 장식으로 꾸밀 코스모스를 심었다니.
“국화야 귀하신 몸이니 꽃망울이 터질 때, 행사 직전에 대량으로 사다가 땅에 묻거나 장식하거나 하지. 아니면 희귀한 국화를 구해 진열하는 것이고. 그건 우리 소관이 아니야. 우린 코스모스 모종만 심으면 되는 거지.”
 


아저씨와 나는 한때 같이 쓰레기집하장에서 일을 했다.

 
인간들만이 쓰레기를 만든다. 그리고 시치미를 떼듯 흙을 덮고, 꽃모종을 심고 축제를 벌인다. 언젠가 아저씨가 말했다. 쓰레기만큼 적나라하게 인간을 드러내 보이는 것도 없다고. 인간은 어둡고 더러운 본성은 쓰레기봉투에 버리고, 이성이 차린 만찬을 매일 즐기고 있는 거라고. 그러니 악취 나는 쓰레기가 매일 넘쳐나는 건 당연한 거라고. 그런 쓰레기를 치우는 우리야말로 본성에 가장 충실한 사람들 아니겠냐고.

 
한여름 뙤약볕에서 모종을 심고 있는 나는, 방세가 밀려 쫓겨날 처지에, 쓰레기집하장에서 일을 하다가 자신이 가진 것과 똑 같은 ‘마트로시카’를 발견한다. 주인집이 짐을 빼겠다고 한 날이었다. 나는 그 러시안 인형 ‘마트로시카’가 내 것처럼 생각된다. 내 것이, 내 흔적이, 내 삶이 쓰레기봉투에 버려졌다고 생각된다. 그날 여자친구를 만났지만 결국 헤어졌다.
우리는 서로를 잘 아는 것 같지만 실상은 하나도 모른다.
허허벌판 코스모스를 피울 땅이 쓰레기로 매립된 곳인지, 국화축제인 줄 알았는데 실상은 코스모스꽃이 더 많다거나, 커피를 쓰다고 한 건지, 짜다고 한 것인지, 밥을 먹다가 왜 눈물을 흘리는 것인지, 왜 마트로시카 인형을 깨버릴 수밖에 없는 것인지, 왜 땀을 흘리며 코스모스 모종을 심고 있는 것인지.
 

카오스의 내가 코스모스를 심는다. 우주를 가리키는 코스모스와의 연관을 찾아보려고 해도 찾을 수 없는 꽃 코스모스를 심는다. 솔잎만큼이나 가늘고 금방이라도 말라버릴 것 같은 여린 잎, 꽃들은 갈대보다 더 쉽게 바람에 흔들린다. 카오스의 내가 반 뼘 길이의 코스모스를 한 뼘 간격으로 줄과 넓이를 맞춰가며 심는 일이 어쩌면 이 세계의 질서를 지켜내는 일은 아닐까, 코스모스 꽃의 여린 잎이 흔들리며 바람의 방향대로 움직이는 일이 조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것은 아닐까 제법 엉뚱한 생각도 들었다.
 

어느 날, 쓰레기봉투 속에서 발견하게 될 내 흔적과 맞닥뜨리지 않기 위해서인지.
혼돈을 뜻하는 카오스와 우주를 뜻하는 코스모스.
소설의 코스모스 심기는 카오스의 나를 흔들리지 않게 뿌리 내리는 일. 어설프게 앉아 저린 다리를 주물러가며 허허벌판을 모종으로 채워나가는 것. 그래서 나는 모종심기를 끝내고 나올 때 종이컵에 모종을 챙겨나는 것.
 
그나저나 밥 든든히 먹은 뒤 하늘은 높고, 코스모스 흔들리는 흙먼지 날리는 길을 걷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나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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