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등 - 송유관공사 - 민영화 부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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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등 - 송유관공사 - 민영화 부작용
  • 류권홍
  • 승인 2018.10.17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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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칼럼] 류권홍 / 원광대 HK+ 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 소장


<불탄 대한송유관공사 저유소, KBS 화면 캡쳐>


지난 7일 오전 고양시에 있는 대한송유관공사 저유소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사고의 원인에 대해 경찰은 인근에서 스리랑카 출신 근로자가 풍등을 날렸고 그 풍등이 저유소 근처에 떨어지면서 화재가 발생했다고 발표하면서 검찰에 영장을 신청했다.

이 사건에는 단순한 화재나 외국인 근로자의 과실 책임 여부를 넘어, 우리 사회의 안전에 대한 인식, 대한송유관공사의 실체와 책임 주체, 사고의 근본 원인을 바라보지 못한 경찰의 무능, 외국인을 바라보는 시각 등 다양한 쟁점들이 녹아들어 있다.

세월호 사고, 제천 화재사고 등 대형 안전사고들이 즐비하게 발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로만 안전을 강조할 뿐 여전히 안전에 대한 인식이 미약함은 물론 제도적 뒷받침까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안전과 생명에 대한 가치는 국가와 사회의 최우선적 보호 대상이 되어야 한다. 비용을 핑계로 뒤로 미루거나 적당히 타협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번 사고의 근본 책임자는 스리랑카 근로자가 아니라 대한송유관공사이다. 풍등 하나에 화재가 발생해서 저장된 휘발유가 모두 타버릴 정도의 시설을 유지한 주체가 대한송유관공사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과실에 의한 것이었으니 다행이지 의도적이고 조직적인 테러집단의 행위가 있다면 전국의 모든 저유소들이 아주 쉽게 화재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또한, 대한송유관공사는 ‘공사’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정부 지분이 약 10% 정도 있다지만 결코 ‘공사’는 아니다. 1990년 공기업으로 설립되었으나, 2001년 김대중 대통령 당시의 민영화정책에 따라 민영화되었고, SK, GS 등 정유기업들이 대주주인 민간회사에 불과하다. 공사라는 명칭을 사용할 정당한 이유가 없다.
듣기 불편하겠지만, 이번 화재사고와 이로 인한 환경 피해의 책임은 민간회사인 대한송유관공사에 있다. 화재에 취약한 시설이고 휘발유라는 중요한 자산을 관리하는 회사라면 그 수준에 맞는 충분한 안전조치를 취했어야 한다. 인력은 물론 해당 시설의 안전유지에 필요한 정도의 장비에 대한 투자가 이루어졌어야 했다. 민간회사이기 때문에 수익이 우선이고 따라서 최소 수준의 안전방지장치만 두었다면 인근 주민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최근 3년 간 대한송유관공사의 수선유지비는 2015년 53억원에서 2016년 45억원, 2017년에는 37억원으로 줄은 반면, 같은 시기 대한송유관공사의 주주들이 배당으로 받아간 돈은 2015년 90억원에서 2016년 135억원으로 늘었고, 지난해도 배당금으로 117억원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런 것이 민영화의 단점일 수도 있다. 즉, 수익만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시설에 대한 민영화의 부작용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외국인을 바라보는 시각, 경찰의 조치도 우려스럽다. 풍등은 스리랑카 근로자가 제작한 것이 아니라 인근 초등학교에서 날린 것이 우연히 날아왔고, 이것을 다시 날렸다는 것이다. 만약 초등학교 학생들이 날린 풍등이 날아갔다면 어떻게 됐을까. 스리랑카 근로자는 저유소 위험에 대한 전문가도 아니고 풍등이 저유소에 화재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은 인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것이 상식적인 판단이다. 과실 그것도 중과실이 인정되기 어려워 보인다. 그런데 사건 초기에 안전에 대한 1차적 책임이 있는 대한송유관공사의 과실과 책임은 따지지 않고 스리랑카 근로자에 대한 수사에 집중했다. 국민들의 시선을 돌려놓는 결과에 이른 것이다. 그래도 국민들은 스리랑카 근로자가 무슨 책임이냐고 따졌다. 국민들이 현명했다.

최근 남북 평화 무드가 진행되고 있으니 북한은 제외해야 한다고 하겠지만 여전히 우리의 중요시설들은 장사정포의 사정거리 안에 있고, 전국에 산재해 있는 저유소 등 위험시설들은 테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렇게 허술한 준비로는 한순간에 국가적 위기에 처할 수 있다.

지금이라도 모든 중요시설의 안전점검을 다시 하면서 국가 차원의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그리고 정부는 안전기준을 강화하고, 안전기준 미준수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런 종류의 안전사고에 대해 법원이 징벌적 배상을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방법도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풍등은 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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