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랑 나랑 동갑네야"
상태바
"할머니랑 나랑 동갑네야"
  • 김인자
  • 승인 2018.10.16 08: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33) 치매센터 가을 나들이


지난 금요일 치매센터인 사랑터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파주에 있는 오두산 통일전망대와 한국근현대박물관으로 가을 소풍을 갔다.
 
울 심계옥엄니가 다니시는 치매안심센터인 주간보호센터 사랑터에서는 봄과 가을에 두 번 치매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모시고 소풍을 간다. 봄 소풍 때는 할머니 할아버지들만 모시고 가고 가을 소풍 때는 치매할머니 할아버지들의 가족들도 함께 가을나들이를 간다.
가족이라고 해봤자 딸들이 오는데 그나마도 가족이 참석을 못하면 자원봉사자가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1일 가족이 되어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케어한다. 몇 번 가족들과 함께 하는 사랑터 가을 소풍에 참여해보니 오시는 치매가족들의 연령대가 대부분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이시다. 그런데 이번에는 남여 대학생들이 각각 한 명씩 할머니 할아버지들 가을 소풍에 함께 했다. 할머니 혹은 할아버지의 손자, 손녀인가 보다 하는 생각에 반갑고 고마웠다.
 
"할머니 소풍 가시는데 함께 가려고 왔어요? 와 너무 예쁘다." 하며 살갑게 말을 거니 남학생이 자신은 손주가 아니란다.
"할머니 손주가 아니예요?"
"예, 저희 이곳에 자원봉사왔어요."
"아, 그렇구나. 사회복지학과 다녀요?"
"아니요.국제 통상학과예요."
사회복지학과도 아니고 일반학과 대학생이 할머니 할아버지들께 봉사를 하러 왔다는게 고맙고 대견했다.
"아, 그렇구나. 다른 곳에 봉사할 곳도 많을텐데 이렇게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봉사하러 와줘서 너무 기쁘고 감사합니다."
대학생이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봉사를 하러 온 것이 너무 대견하고 기특했다.
 
"저희 할머니, 할아버지들 네 분 모두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때 돌아가셨거든요. "
"네 분 모두 다요?"
"예,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친할머니, 친할아버지 이렇게 네 분 이요."
"네 분이 모두 한 해에 돌아가셨어요?"
"예 ?특히 외할아버지는 알츠하이머를 앓다 돌아가셔서 여기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뵈면 저희 할아버지 생각이 많이 나요. 지금처럼 제가 치매에 대해 좀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알았더라면 돌아가신 저희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더 많이 찾아뵙고 사랑해드렸을텐데 하는 후회가 생겨요."
남학생이 조용조용 말을 이어갔다.
 
"봉사할 곳은 누가 정해주나요.?"
"아니요, 저희가 정해요."
"학교 동아리인가요?"
"아니요, 외부동아리예요."
"전국에 있나요?."
"예."
"봉사 시간도 정해져 있나요?"
"한 달에 최소 한 번. 그 이상 많이 해도 좋구요.
오늘도 봉사하는 친구들이 원래는 더 많은데 학교 수업 때문에 오늘 많이 못 왔어요."
"그쵸. 중간고사 기간인데 이렇게 시간 내어 오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예, 다음 주 부터 저희 학교도 중간고사기간이예요."

남학생의 말이 끝나자 어떻게 이런 봉사를 하게 되었냐는 나의 질문에 귀엽게 생긴 여학생이 차분차분히 말을 이어 갔다.
"저희도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친할머니, 친할아버지 모두 돌아가셨거든요.
저희 외할머니도 파킨스병 앓다가 돌아가셨어요.
지금 여기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만나니 살아계실때 좀 더 많이 찾아뵙고 잘해드릴걸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치매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가을 소풍을 가는 날 아침 기온이 많이 떨어질거라는 기상청 일기예보 때문에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나들이가는데 옷을 두텁게 입고 오셨다. 털잠바를 입고 오신 분도 여럿 되셨다.
 
"심계옥어르신 괜찮으세요?"
센터장님이 대절 버스안에서 앞좌석부터 돌며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안위를 물으셨다.
"예, 괜찮아요."
"멀미 안나세요? 어르신들이 옷들을 두껍게 입고 오셔서 멀미를 하시네요."
뒤에 앉으신 할머니 한 분이 멀미를 심하게 하셨다. 검정봉지를 찾는 요양사선생님께 젊은 버스 기사분이
"버스 바닥에 이미 토하신건 아니죠?" 하며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검정봉투를 내주었다.
 
멀미하시는 할머니도 있고 사랑터에서 간식으로 주신 영양갱을 버스안에서 맛있게 드시는 할머니들도 있고 짧지않은 거리를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무탈하게 파주 오두산 통일전망대에 도착했다.
사회복지사선생님이 통일전망대에 비치되어 있는 휠체어를 미리 준비해주셨다. 그렇지않아도 우리 심계옥할머니 걷기 힘드실텐데 버스에 앉아 있어야하나 걱정했는데 젊은 사회복지사 선생님 배려 덕분에 우리 심계옥엄니 통일전망대를 편하게 구경할 수 있었다.
 
통일전망대 견학이 끝나고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점심식사 장소인 산내음 음식점으로 이동했다.
 
"자네 할무니랑 나랑 동갑네야."
앞테이블에 앉으신 할머니가 나를 쳐다보며 말씀하셨다.
울 심계옥할머니랑 동갑네 할머니는 가리는 음식없이 식사도 맛있게 잘 하시고 이야기도 참 재밌게 잘 하셨다.
 
"나는 일본 나고야에서 태어나고 자랐어요. 해방되서 쫒겨나오기 전까지 어린 시절 나는 유복하게 잘 살았지."
"할아버지랑은 언제 만나 결혼하셨어요?"
"열 여섯에 일본서 쫒겨나와 열 일곱에 할아버지 만나 열 여덟에 결혼했지. 아이 넷 낳고 할아버지는 콩 팔러간다고 갔어."
"콩팔러요?"
"응, 콩값이 옛날엔 엄청 비쌌거든."
"할머니, 콩팔러 간다는게 무슨 뜻이에요." 하고 여쭈니 할머니는 대답 대신 나를 유심히 쳐다보며
"할머니랑 나랑 동갑네야.
동갑네라 남달러."
"왜요? 할머니."
"왜냐구? 같은 당에 갈꺼라서."
"하하 같은 당이요?" 같은 옥이 아니고요."
"지옥보다 천당이 좋아요? 할머니?
그러자 무심한 듯 식사만 하시던 심계옥엄니가 고개를 들어 누구에게라고 할 것도 없이 툭 던지는말.
"귀가 가려우면 동갑내가 죽었나보다 그런 말이 있어."
 
점심을 먹고 한국근현대박물관으로 가는길.
여러단체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이 오셨다.
다른 팀에서 오신 할머니 한 분이 지팡이를 짚고 걸으시는 심계옥엄니에게 다가가 귓속말을 하신다.
"저 안에 하나도 볼거 없어요. 계단만 많아가지고. 저 바깥이 더 좋아요."하신다.
 
근현대박물관 안.
계단이 제법 많다.
계단이 많아 다리가 불편하신 할머니들은 보시기가 어렵겠다.
나는 구석구석 볼거리 천진데 울 심계옥엄니 볼게 뭐 있냐고 안 보시려한다.
우리 심계옥엄니뿐 아니라 할머니들 모두가 별로 좋아하지 않으신다. 계단도 많고 어렵게 사셨던 분들이라 그런지 할머니 하부지들이 보고싶어할거 같지만 나는 재밌는데 할머니 하부지들은 정작 볼게 뭐 있냐신다. 예상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끝난 근현대박물관 견학.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안. 할머니,할아버지 들은 모두 고단한 잠속에 빠져드셨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