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와 함께 늙어버린 공원 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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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류와 함께 늙어버린 공원 정자
  • 유동현
  • 승인 2018.10.22 0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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⑭ 연오정


낡은 고교 앨범은 추억 저장소이다. 까까머리와 단발머리를 한 그대가 있고 분식집 문턱을 함께 넘나들던 그리운 친구들도 있다. 3년간의 발자국을 남긴 모교 운동장과 교실의 모습도 아련하다. 빛바랜 사진첩에는 ‘인천’도 있다. 교정에 머무르지 않고 과감히 교문을 나서 사진사 앞에서 포즈를 취했던 그대들 덕분에 그때의 인천을 ‘추억’할 수 있다.
 

 
1888년 응봉산 일대에 조성된 자유공원은 한국 최초의 서구식 공원이다. 처음에는 ‘각국공원’으로 명명되었다가 ‘만국공원’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조계제도가 철폐된 1924년 이후에는 ‘서공원’으로 불렀다. 1957년 맥아더 동상이 건립되면서 ‘자유공원’으로 바뀌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공원 이름이 바뀐 것은 인천 역사 더 나아가 한국 근대사가 갖는 격변과 굴절을 단적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1964년도 인천여상 앨범. 아직 뒤편으로 2층 누각 석정루가 들어서기 전이다.
  1969년도 인천공고 앨범. 

 

자유공원은 추억의 공간이다. 지난 시간을 되새겨 볼 수 있는 건축물들이 곳곳에 있다. 세월이 흘러도 굳건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 시설들은 어쩌다 한번 공원을 찾아도 익숙하고 친근하게 하는 요소다. 50여 년 전 졸업앨범에 담긴 사진 속 건축물은 이제 세월의 무게로 낡았고 그 앞에서 포즈를 취했던 학생들은 그 시간만큼 늙었다.
 
 

1964년도 송도고 앨범. 도크가 조성되기 전이서 연오정에서는 넓은 바다가 한 눈에 들어왔다.

 
1964년도 인천고 앨범. 연오정은 한동안 자유공원의 명소였다.

 
자유공원에는 전통 양식으로 지은 ‘올드’한 건축물이 있다. 산기슭 비탈길에 세워진 육각형 단층 정자 ‘연오정’이 바다를 굽어보고 있다. 이 정자는 언덕 끝 쪽에 세워진 2층 누각 ‘석정루’와 쌍벽을 이룬다. 연오정은 송현동 100번지에 살던 조길 씨가 그의 부친인 독립운동가 조훈 선생이 생존 시 당부한 뜻을 받들어 1960년 8월 350만환의 공사비로 건축했다. 현판 ‘연오정(然吾亭)’은 검여 유희강이 썼다.
 
 

 
1963년도 동산고 앨범. 정자 안에 삼베 모시를 입은 노인들이 바닷바람을 시원하게 즐기고 있다.

  
연오정이 건립되었을 때는 앞을 가로막는 건축물들이 없어서 전망이 아주 좋았다. 바다를 굽어보기 좋은 명당이었다. 바다를 타고 올라온 바람은 거침없이 정자 안을 맴돌았다. 한때 공원 터줏대감들은 이곳에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장구 장단에 맞춰 소리를 하며 풍류를 자주 즐겼다. 요즘도 어르신들은 이 정자 안에서 한가롭게 장기를 두곤 한다. 어쩌면 그 노인들은 50년 전의 그 학생들이지도 모른다.
 
 
유동현 / 전 굿모닝인천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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