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비지구해제 이후 ‘마을만들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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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비지구해제 이후 ‘마을만들기’가 필요하다
  • 윤현위
  • 승인 2018.10.24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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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칼럼] 윤현위 /자유기고가, 지리학박사


주안은 미추홀구에서 중요한 동네이다. 행정동으로 주안은 8동까지 있다. 인천에서 8동까지 분동된 사례는 이전에도 어쩜 이후에도 없을 가능성이 높다. 1970년대에 본격적으로 개발된 주안도 예전엔 분명히 신시가지였다. 인천고등학교도 주안이 확장되면서 이전해 온 결과이다. 주안은 인천이 원도심에서 현재의 모습으로 확장되는 과정 중에 중요한 장면이라고 할 수 있겠다. 구획정리사업으로 조성된 새로운 주거밀집지역에 단독주택지역이 조성되었다. 아파트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이전이라 주로 중산층들이 거주하는 동네였다.
 
 

주안1지구계획도(1966~1973)
 

그러는 사이 이 동네도 나이를 먹었다. 단독주택들은 노후해졌고 주차장이 별로 없어 골목들은 저녁이 되면 차량이 양쪽으로 주차되어 있는 덕분에 겨우 차가 한 대만 지날 수 있다. 바로 맞닿아 있는 구월동에 신시가지가 들어서면서 주안은 인천의 중심이 이동하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봐야했고 문학터널이 뚫리면서 송도의 모습도 가까이 볼 수 있게 되었다. 주안도 이제 개발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2000년이 들어서면서 인천에는 여기저기 재개발을 위한 움직임들이 감지되었다. 우리가 그 동안 주안뉴타운이라고 불렀던 구역이 등장하기 시작한 시기도 이때부터이다. 주안2동과 4동의 일부로 지정된 넓은 지역에는 여러 가지 계획들이 논의되었다.

 

  고속1공구(1968~1978)

 
사실 구상들은 단순하고 명쾌하다. 결과적으로 지역에 대단위 아파트단지가 들어서는 결말이다. 이번에 지구가 지정된 이후에 현재까지는 사업이 진행되지 않았다. 절반 정도는 지구가 해제되었다.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설명하기에는 다소 부족한 감이 있지만 한국의 주택시장은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론 사태 이후에 상당히 얼어 붙었다. 본격적으로 사업이 진행되어야할 시기에 시장은 위축되었고 그 이후에 주택재개발사업은 인천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적으로 더디게 진행되었다.

더군다나 주택재개발사업은 과정이 복잡하다. 한집 한집 이해관계가 걸려있기 때문이다. 집들은 각 가정의 전 재산이나 다름없다. 주안뉴타운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지만 그 안에는 꽤 많은 구역이 갈라져 있다. 구역이 지정되는 과정에서부터 주민들끼리 많은 갈등이 있었다. 오래동안 같은 동네에서 살았던 주민들간에도 의견이 갈렸다. 투기세력이 이 동네로 넘어오기도 했다. 주안4동에 오래된 연립주택 중에 하나인 은하연립은 갑자기 가격이 폭등하기도 했다. 재개발의 바람이 불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었다.

주안4동에는 주안초등학교라는 오래된 학교가 있다. 주안의 시작과 함께한 학교라고 할 수 있다. 이 학교가 올해 철거되었다. 주안2동으로 이전하고 이 자리에는 의료단지가 들어설 계획이다. 지난 몇 년간 주안4동과 주안8동 사이 도로변에 많은 병원들이 들어섰는데 아마도 같은 맥락일 거라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석바위와 구)시민회관까지는 지하철이 지나간다. 그럼에도 주안뉴타운의 상당부분은 정비구역에서 해제되었다.

 
철거 공사중인 주안초등학교
 
 
우리나라의 주택재개발은 공공이 직접하는 경우가 적다. 아주 소수의 경우에만 주거환경개선사업이라는 이름으로 공공이 짓는 소규모의 임대아파트단지가 들어선다. 그러나 대도시에서는 찾아보기가 힘들고 시행되어도 소수이다. 대부분은 민간의 영역에서 진행된다. 이러한 방식을 합동재개발이라고 한다. 주민들이 만든 조합과 건설사가 같이 아파트단지를 만들어가는 방식이다. 1983년에 도입된 이후에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합동재개발로 오래된 동네들을 재개발해왔다.

복잡한 구조임에도 그 동안 주택재개발사업이 진행되었던 이유는 재개발이 성공하면 큰 이익을 거둘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도시화의 속도와 규모가 유지가 전제되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이제 도시화의 동력이 상당히 떨어졌다. 수도권으로는 여전히 인구가 모이지만 예전만 못하다. 여기에서 인천은 다소 예외에 속한다. 다른 도시들이 인구가 줄어드는 와중에 인천은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인천의 주택재개발사업이 활발하지 못했던 이유는 인천의 확장성 때문이다. 남북방향으로 확장된 신도시의 건설은 주택재개발을 주춤거리게 하는 요소로 작용했다. 오래된 주안을 재개발하는 사업보다 논현과 서창에 새로운 아파트단지를 짓는게 쉬운일이었다.

구역이 해제된 주안은 앞으로 어찌될까? 어찌해야할까? 2000년대 초반에 정비구역으로 지정되었다 현재까지 사업이 진행되지 않는 송림동에는 현재 빈집이 매우 많다. 노후도가 심해져서 빈집이 된 경우도 있겠지만 조합원이 외지인인 경우 그냥 방치되는 경우도 상당하다. 정비구역이 지정되면 법적으로 주택을 수선하기 어렵고 현실적으로도 주거환경개선에 대한 의욕이 저하될 수 밖에 없다. 사업이 지연된 지역들이 쇠퇴가 더 빠른 이유 중에 하나이다.

구역이 해제된 주안은 이미 꽤 많은 빌라들이 있다. 단독주택 2~3개를 묶어서 빌라로 개발하는 일은 아파트단지로 재개발하는 일에 비해면 그 절차가 간소하다. 어쩌면 더 많은 빌라들이 만들어질지 모르고 구월3동처럼 전체 주택의 80%이상이 빌라가 될지도 모른다. 한 가지 걱정이 있다. 최근에는 다세대주택에 오피스텔을 혼합해서 지으면 아파트처럼 10층 이상의 공동주택신축이 가능해졌다. 부평시장 주변과 숭의동일대에 높은 주택들이 계속 올라가는건 이 때문이다. 이미 주안4동의 아랫동네에는 이런 건물들이 올라가고 있다. 새로 지은 건물은 주거환경이 쾌적하다. 그러나 동네는 불쾌해질 수 있다.

단지별 관리가 아닌 개별적인 고층건물이 밀집된다면 주안의 미래는 밝지 않다. 기반시설이 개선되지 않은 상황에서 많은 인구가 집중된다면 동네의 주거환경을 보장할 수 없다. 이제는 여기저기서 마을만들기라는 말을 듣기가 어렵지 않다. 마을은 이미 만들어져 있는데 무슨 마을을 만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 마을은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다. 어떻게 보면 마을지키기가 더 적합한 표현일 수도 있겠다.

필자는 단순히 오래된 동네를 무조건 지키자고 주장하고 있지 않다. 오래된 동네가 아파트단지로 혹은 고층 오피스텔로 변신하면 옛 흔적이 사라지는건 둘째치고 주거환경의 악화는 결국 새로 들어온 사람들의 몫이 될 수 밖에 없다. 주거지역은 삶의 터전이다. 평지에 있는 거의 유일한 단독주택지역인 주안이 정비구역이 해제되어도 더 걱정스러운 이유이다.
동구일대 빈집이 증가하는 현상은 남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빈집은 주안 가까이 있는 숭의동에도 얼마든지 있다. 오죽하면 LX(구, 지적공사)에서 빈집조사 선도지역으로 미추홓구를 택했을까. 주안에서도 빈집 확산처럼 주거환경이 심각해질 수도 있다. 새롭게 올라가는 아파트단지는 아파트 가격이 파격적으로 떨어지지 않는한 여전히 아파트 주동의 높이만큼이나 진입장벽이 존재한다. 당신의 가정이 소중한만큼 살아온 집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되겠다.

 

주안4동에 신축 중인 고층오피스텔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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