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르강변에서 쓸쓸한 독립운동가를 기린다
상태바
아무르강변에서 쓸쓸한 독립운동가를 기린다
  • 백명이
  • 승인 2018.12.05 07: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 러시아 하바롭스키를 향해 - 백명이 / 미추홀학무모넷


인천지역 26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인천시민사회단체연대(이하 인천시민연대)는 매년 평화기행을 떠난다. 그 동안 제주도, 필리핀, 오키나와, 백두산, 베트남 등지에 다녀왔다. 활동가들은 평화기행을 통해 쉬고 재충전하며, 선후배 간의 친목은 물론 다른 나라 다른 지역 단체, 활동가들과 평화교류를 추진해왔다. 올해는 1,2차 판문점선언 등 남북평화정착시대를 맞아 한 세기 전 대한독립의 주요 활동무대였던 만주와 연해주를 둘러보며 남북평화의 의미와 역할을 되새겨보기 위해 러시아로 떠났다. 
3박4일로 진행된 러시아 평화기행을 [인천in]이 3회에 걸쳐 연재한다. 첫 번째 이야기는 몽골과 백두산에서 발원하며 만주와 연해주를 적시며 유유히 흐르는 아무르강과 하바롭스크 이야기다. 두 번째는 시베리아횡단열차에서 진행된 만주와 연해주에서 전개된 독립운동 이야기, 세 번째는 러시아 극동항인 블라다보스톡에서 되짚어본 1910년대 신한촌과 우리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다. 





11월 5일, 인천국제공항에 인천시민사회단체연대 활동가와 회원 20명이 모였다. 현수막을 앞세워 단체사진을 찍고 러시아 국적기인 오로라 항공에 탑승했다. 조금 들뜬 마음을 갖고 이륙할 때만 기다렸다. 그렇게 3시간 가까운 시간이 지나고 러시아 영공을 낮게 비행하는 동안 창 밖을 바라보니 바다처럼 넓은 강과 지류가 흐르고 끝없이 넒은 들판이 펼쳐진다. 습지와 길옆에 자작나무 가로수가 풀처럼 보인다. 마을이나 집이 거의 보이지 않고, 벌판이 끝없이 이어지는 모습은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장관이었다.

러시아 하바롭스키공항은 활주로도 추위 때문인지 거북이등처럼 쫙쫙 갈라진 노면이라 놀랐다. 원래 있던 오래된 공항청사와 새로 지은 청사가 나란히 있고 전체적으로 우리나라의 오래된 시골 터미널같은 정감가는 모습이었다. "드디어 러시아 땅이구나" 하고 생각될 쯤 우리나라 12월초에 해당되는 차가운 겨울바람이 느껴졌다. 우리 남부지방엔 단풍이 한창인데 이곳은 겨울이었다. 사람들의 옷차림도 두터운 외투뿐만 아니라 장갑에 털모자까지 쓰고 있는 모습에서 추위를 실감했다. 이곳의 대중교통은 우리나라 옛날 전차같은 트롤리가 있었다.





우리를 마중나온 가이드는 현지 러시아인으로 학원강사라고 했다. 사범대 한국어과를 전공했다는데 썩 유창한 것 같진 않았다. 그래도 기대가 되었다. 러시아 음식은 우리보다는 좀 짜게 먹는것 같다. 기내식도 그렇고 저녁에 먹은 음식도 전체적으로 짠맛이 강했다. 숙소의 침대는 러시아 사람들의 큰 키와 체격에 비해 체격이 작은 나에게도 우리나라 싱글 침대보다도 많이 작아보였다. 침대는 작았어도 객실은 깔끔했다. 다음날을 기약하며 그렇게 하루일정을 마무리했다.

11월 6일, 아침부터 바삐 움직였다. 하루에 하바롭스키를 다 둘러봐야 했기 때문이다. 처음 간 곳은 레닌광장이다. 레닌동상이 있고 광장을 중심으로 주요 관공서가 있었다. 소련의 붕괴로 주요도시에선 레닌의 동상이 쓰러지는 모습을 tv에서 오래전에 본 기억이 있었는데, 아직도 하바롭스키에선 레닌동상이 굳건히 서있어서 기분이 좀 이상했다. 러시아 사람들은 아침 출근시간대인데도 전혀 바쁘거나 뛰는 사람없이 여유가 있어보여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아침풍경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꼼소몰 광장의 우스펜스키성당(성모승천성당)을 보러 갔다. 성당 안에 가기 전에 여성은 머리에 모자를 쓰거나 스카프로 가리고, 남성은 모자를 벗는 예의를 가이드가 알려주었다. 성당 안은 의자가 없고 성화가 가득했다 . 한쪽에는 성물을 파는 작은 상점도 있었다. 의자가 없는 것이 의아해서 가이드에 물어보니까 서서 2시간씩 미사를 본다고 했다. 러시아 정교회는 그리스 동방정교회에서 파생된 교파라고 했다.

꼼소몰광장 앞을 흐르는 강이 아무르강이다. 중국과 경계인 아무르강은 중국에선 흑룡강이라 부른다. 정말로 중국이 강 너머에서 바로 보이고 저 멀리가 북한의 경계인 핫산이란다. 핫산에서 두만강이 보인다는데 가보지 못해 안타깝다. 아무르강 전망대라는 우쵸스 전망대에 올랐다. 지금은 전망대로 잘 조성되었지만, 100여년 전 이 주변는 처형하고 아무르강에 시신이 내던져지던 그런 어두운 장소이기도 했다. 김 알렉산드라 페트로브나 스탄케비치(2009년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의 시신이 버려진 곳도 이곳이란다. 여성독립운동가이자 동양 최초의 공산주의 사상가 였던 김 알렉산드라는 한국 최초의 사회주의 정당이었던 '한인사회당' 중앙위원 이었으며 하바롭스키 소비에트 외무위원으로 활동했다. 나중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총리가 되는 이동휘와 한인 사회당을 창당하기도 했다. 1918년 로마노프 왕조를 부활하려는 백군과 사회주의 혁명을 완성하려는 적군사이에 벌어진 적백 내전 때 체포돼 처형당했다. 죽임을 당하기 직전 조국의 8도를 의미하는 "8보만 걷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내 비록 가보진 못했지만 아버지 고향인 조선8도의 인민들이 새로운 세상에서 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걷고 싶다" 했다. 김 알렉산드라가 일했던 유럽식 하바롭스크 인민위원회 건물이 꼼소몰 광장 부근에 남아있다.

김 알렉산드라의 시신이 아무르강에 버려진 이곳에 우쵸스 전망대가 들어섰고 김 알렉산드라를 추모하는 장소가 됐다. 로자룩셈부르크와 같은 삶을 산 그녀는 죽는 순간까지 당당했다. 한인사회당은 하바롭스키에서 3년 만에 간판을 내렸지만 아시아 최초의 사회주의 정당으로서 러시아 혁명사와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의 당당한 한 역사일 것이다. 그럼에도 올해가 100주년인데도 기념사업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쉽다. 그래서인가 아무르강의 어두운 물빛이 더욱 서럽고 슬퍼진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이름 모를 독립운동가들이 러시아 극동지역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였는데, 그들의 죽음 그리고 무덤조차 제대로 관리되지 못한 모습은 우리 못난 후손을 반성하게 했다.

다음 일정은 자연사박물관과 향토사박물관이다. 자연사박물관은 매머드의 박제와 여러 박제된 동물들로 생생하게 표현되어 전시돼있었고, 향토사박물관은 시베리아 원주민들의 삶의 모습과 도구들이 잘 전시되어있었다.  150년 정도의 짦은 역사지만 소련시절의 생활모습과 현재까지 생활사를 다뤘다. 많은 전시물 중에 눈에 띈 것은 발해 유물인 연꽃모양이 선명하게 새겨진 작은 금속물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 땅은 부여, 옥저를 이어 발해의 땅이기도 했던 곳이었다. 아! 발해, 우리가 잊고 있던 역사 바로 그 발해의 땅이구나 싶어 일순간 뭉클했다. 





다른 일정으로 러시아에서 세번째로 큰 성당과 2차대전 전몰기념탑을 갔는데, 3만명에 이르는 명단을 일일이 다 새겨놓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중에 우리나라 사람의 이름도 있다니, 전쟁의 아픔을 다시금 느끼게 했다. 저녁을 먹기 전 아무르강의 황혼을 보러갔는데 처연하게 아름다워서 더 비통했다. 저녁을 먹은 뒤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기위해 하바롭스키역으로 이동했다. 또 어떤 여행이 될 지 가슴이 설렌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