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산
상태바
정산
  • 유광식
  • 승인 2018.12.14 06: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6) 유광식 / 사진작가
중구 용동, 2018ⓒ유광식


1년여가 어느덧 닳아 간다. 모두가 초조함과 들뜬 분위기속에 시소를 타며 바삐 움직이는 계절이다. 유례없는 미세먼지의 출현이 못내 아쉽지만, 연말이라 그런지 김장얘기와 몇 년간 들리지 않던 캐럴도 귀에 들려오고 화들짝 처리해야 하는 업무에 몸을 떨기도 한다. 모두가 모두에게 감사하는 계절이기도 하거니와 가난한 예술가들의 동면을 준비하는 추임새도 심상치 않아 보이는 12월이다. 남은 한 장의 달력이 마치 마지막 잎새처럼 설레면서도 위태로움이 보인다.

식당에 들어가면 기본적인 주문을 한 이후에 주위를 돌아보며 공통된 물건을 찾는다. 달력과 시계 그리고 TV의 위치다. 작은 이층집의 살림방이었을 공간은 이제 어머니와 딸이 함께 칼국수를 빚어 장사하는 영업소가 되었다. 주문과 동시에 국숫발을 밀고 있는 주인아주머니는 허리 펼 새가 없고, 방을 오가며 반찬을 내오고 다 먹은 식기를 내가는 아주머니의 어머니는 허리가 더 굽었다. 그래도 올해 이만하면 행복하다는 인상인지 두 모녀분은 덤도 주고 웃음도 밀고 모니터링도 하신다. 손님 입장에서는 오래도록 남아 그 맛을 즐기면 좋겠으나, 나는 너무 혹사하면서까지 손님들 입맛을 책임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든다. 남은 달력 한 장이 전하는 말이 참 많다. 두세 번 거쳐 찢어냈을 각도와 뜯고 나서 한 동안 바라봤을 12월의 날짜들. 모두가 애틋하게 여기는 숫자가 빛난다.

오늘, 과거 아무렇지도 않게 들리던 어머니의 단어가 새삼스럽다. ‘젖은 걸레’를 ‘추진 걸레’라 부르는 어머니의 자연스러움이 내게는 문득 어린 시절의 엄마를 추억하게 한다. 연말이라 그런지 더 없이 지난 시간을 돌아보게 되고 가족을 보듬게 되는 시간인 것 같다. 12월이 한 달이지만 한이 없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