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는 철책에 갇혀 섬이 되었고, 바다는 섬에 막혀 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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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는 철책에 갇혀 섬이 되었고, 바다는 섬에 막혀 강이 되었다.
  • 심형진
  • 승인 2018.12.10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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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염하강철책길

열림과 갇힘의 경계를 생각하다.-평화누리길 1코스 염하강철책길

 
1986년 김지하 시인은 시집 『애린』에서 땅 끝에 서서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음을 “새가 되어 날거나/고기 되어서 숨거나/바람이거나 구름이거나 귀신이거나 간에/ 변하지 않고서는 도리가 없는 땅 끝에”라고 노래하였다. 언제부턴가 한반도는 철책에 막혀 변신하지 않고는 나아갈 수 없는 사방이 땅 끝인 섬이 되었다.

한동안 ‘가출을 하려면 다음날 만주 벌판 어느 곳을 지나는 기차 안에서 아침을 맞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농담 아닌 농담을 하였다. 남과 북이 가로막히기 전 반도의 백성들은 삶이 고단하거나, 큰 뜻을 품으면 경의선 기차를 타거나 경원선 기차를 타고 고구려의 옛 땅 만주나 발해의 옛 땅 연해주로 훌쩍 떠나고는 했다. 바다와 철조망으로 가로막힌 좁아터진 반도의 남쪽이 아니라 만주와 발해를 통해 유럽까지 유라시아 대륙이 하나의 터전으로 연결되는 반도인의 삶의 기질이 우리네 피에 흐르고 있었다.



(덕포진과 덕진진 사이로 염하 손돌목 좁은 수로가 지나고 있다.)


한강은 서울을 지나 김포에서 바닷물과 섞이고 다시 북에서 발원한 임진강, 예성강과 합수되어 서해로 흐른다. 세 강의 물이 서해와 만나는 그곳을 갑비고차가 막아선다. 갑비고차는 강화도를 이르는 고구려 지명인데, 두 개의 곶이란 뜻이다. 연미정을 기점으로 북쪽 해안을 따라 황해도 해주와 마주한 물길과 김포를 따라 흐르는 또 하나의 물길로 갈리게 하는 곳이라는 뜻이 그대로 지명이 된 것이다.





갑비고차 앞바다이거나 김포 앞바다로 불렸던 이 물길을 염하라고 한다. 중국의 북쪽에서는 큰 물줄기를 하라고 부르고 남쪽 지방에서는 강이라고 하는데 이 물길은 특이하게도 한국 대부분 지역에서 부르는 강을 붙이지 않고 하를 붙였다. 그것이 못내 아쉬웠는지 일부는 염하강이라고 부른다.
경기도는 이곳 해안을 따라 평화누리길을 조성해 놓았는데 그 길의 별칭이 또한 염하강철책길이다.

염하, 짠물이 흐르는 강이라는 뜻의 이름이 붙은 것은 그리 오래지 않다. 구한말 고종의 아버지 대원군이 섭정을 펴든 때, 천주교를 탄압하고 천주교도를 박해한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한강으로 진출한 프랑스 해군에 의해 작성된 해도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강화도는 단군과 관련한 유적이 있는 남한의 유일한 곳이다. ‘단군이 이 땅에 나라를 세우고 난 후, 한강 입구에 자리한 강화도를 주목했다. 만약 다른 나라가 이 땅을 침략한다면 그들은 한강으로 들어올 것이고, 그를 막기 위해 한강 입구의 섬인 강화도에 산성을 쌓아야 한다고 생각하였고, 그 뜻을 알아차린 세 아들이 삼랑성을 쌓았다.’(『옛날 옛적에 인천은』에서 발췌)는 이야기처럼 근대 조선에 쳐들어온 프랑스에 의해 최초로 ‘짠물의 강Rivere Salee’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이 해도를 참조한 일본이 그를 '염하'라고 번역하였다.

평화누리길은 염원이 담긴 이름이다. 평화를 바라는 마음에서 붙은 이름의 길은 대명포구에서 시작하여 고양을 거쳐 임진각에서 동으로 임진강을 따라 철원 김화까지 경기도의 경계를, 남과 북으로 갈라진 한반도 남쪽의 북단을 따라 걷는 길이다. 세계에서 가장 위험하다는 한반도 그 중에서도 DMZ를 따라 걷는 길의 이름으로 더 이상 좋은 것을 찾을 수는 없으리라.

평화누리길의 제1코스를 이곳으로 정하고 염하강철책길이라고 붙인 이의 역사의식은 정말 놀랍다. 영국의 역사가 에드워드 카는 과거의 사실을 현재를 바라보는 역사가의 인식을 가지고 새로운 담론을 만들어 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점에서 이 길은 과거의 사실인 병인양요에 의해 탄생한 ‘염하’를 명확히 인식하면서 현재의 분단 현실에서 어떻게 평화를 누릴 것인가를 끊임없이 묻고 있다.



(덕포진 포대)


초지진과 덕포진을 마주한 덕포진 등의 관방유적과 몽고군의 침입에 의해 고려 왕실이 강화로 천도할 때 뱃사공이었던 손돌의 묘 그리고 그 끝에 한강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방어선 격인 문수산성 등은 끊임없이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되새기게 한다. 거기에 더해 해변으로 처진 철책은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분단의 아픔을 직시하게 한다. 과거는 과거대로 현재는 현재대로 전쟁의 아픔을 느끼게 하는 길, 그 길을 새기기에 염하강철책길 보다 더 나은 이름이 어디 있으랴. 그렇지만 우리가 걷는 한 걸음 한 걸음은 모두 평화를 염원하는 길이니, 나의 실천이 나의 실천을 가능하게 하는 역사적 관점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분명하게 만드는 그 이름이 바로 평화누리길이다. 그 이름에 걸맞게 평화누리길 초입에는 폐선이 된 해군 함정을 정박시켜 놓은 함상공원이 있다. 탱크와 각종 무기가 아직도 한반도가 전쟁 중임을 웅변하고 있다.





걷는 내내 왼쪽 철책 너머 염하에는 시베리아에서 날아온 겨울 철새 흰빰검둥오리, 청둥오리와 황오리가 파문을 일으키며 유유히 떠가기도 하고, 머리를 물에 박았다 꺼냈다를 반복한다. 길 오른 쪽에는 마을과 길, 사람 모두에게서 가장 멀리 떨어진 논 한가운데 큰기러기떼가 모여 있다. 수없이 많이 무리를 짓고 있음에도 자동차나 자전거를 탄 사람에 놀라 하늘로 박차 오르는 무리는 장관을 이루지만, 한 번 비행에 쇠잔해질 기력을 어떻게 보충할까를 생각하니 그들의 비행이 애처롭다. 결국에는 내 발걸음 소리에 놀라 철책을 넘어 바다로 날아갔다 다시 날아와 먼 논에 앉는 큰기러기 떼를 보고야 말았다. 오리 떼와 달리 곡식을 먹는 습성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 날아올라야 하는 기러기들의 처지를 보니, 요 몇 년, 남의 손에 한반도의 평화가 위협받을 수도 있다는 가슴앓이를 겪은 우리 국민이 생각난다.
 
남북 철도가 연결되어 서울-신의주라는 푯말을 달고 기차가 떠났다는 뉴스를 들은 날 평화누리길 1코스인 염하강철책길을 걸었다. 똑같은 철책을 따라 걸어도 군인의 길과 시민의 길은 차이가 있다. 무슨 목적을 갖고 걷느냐에 따라 결과와 의미가 달라진다. 미래를 향한 발걸음이냐, 과거를 지키기 위한 발걸음이냐 평화누리길의 의미는 거기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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