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들한테 엄청 잘해주고... 비싼 물건 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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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들한테 엄청 잘해주고... 비싼 물건 팔고
  • 김인자
  • 승인 2019.02.11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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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 창고대매출


올려주고 모아준대서 샀지~
딱히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 설 지나고 연휴 마지막 날, 오만군데 안 아픈 곳이 없어 침대랑 딱 붙어 누워있다가 카톡 메시지창을 열었다.

"샘, 바쁘?"
"아니, 왜요?"
"나 무지 우울. 기분 좋아지게 해주세요."
"울 샘이 기분 좋아지는거라?할미들 얘기? 아 그래서 생각난건데 나 무지 비싼 매트 공짜로 하나 얻었어요."
"누구한테요?"
"울 시어머니한테요. 이번 설명절에 시댁갔는데 우리 시어머니 '창고 대방출' 하셨잖아요. 바리바리 싸주셔서 휴지는 차에 실을 곳이 없어서 결국 못 가지고 왔어요."
"창고 대방출이라니 무슨 말이예요?"
"울 어머니가 고급매트, 극세사 이불, 흑삼, 산삼주, 오이 수분젤, 계란, 올인원, 그 외에 그릇세트, 전기주전자, 중국식칼, 인삼주, 소고기, 우족세트, 한과세트 등등 한 5~6백 쓰신 거 같은데요?"
"5~6백을요? 누구한테요?"
"잘 생긴 엉아들한테요~"
"잘 생긴 엉아들?"
"왜 빈 건물 한 켠 얻어서 할무니들한테 이거 저거 선심 쓰듯 공짜로 나눠주고 잘해주고 할무니들 마음 얻어서 비싼 매트 팔고 그러는 사람들."
"아~요즘도 그런 사람들 있구나. 울 엄니도 예전에 휴지에 락스에 비누, 슈퍼타이 같은거 엄청 많이 얻어 오셨는데. 나중에 보면 공짜가 아니라 비싼 물건 한 두개씩은 꼭 사시고."
"예, 맞아요. 입담 좋고 재밌고 할머니들한테 엄청 잘해주고 나중에 비싼 물건 팔고."

"샘 시어머니도 많이 사셨어요?"
"예, 작은 엄마가 공짜 계란 주는데 있다고 따라 가셨다가 낚이셨죠. 큰 매트 두 개를 한 개에 98만원 씩 주고 사셨는데 원 플러스 원처럼 큰 매트 한 개 사면 작은 매트 한 개를 덤으로 줬나봐요. 저희 집도 하나 가져 가라셔서 작은 딸 침대에 깔아주려고 작은 매트 한 개 받아왔어요. 안방에 극세사 이불도 깔아져 있길래 "어머니 이불 새로 사셨어요? 좋으네요?" 하니까 좋으냐? 하나 주랴?하시는 거예요. 45만원짜리 극세사 이불도 하나 주셔서 매트랑 차에 실었죠. 일찍 시댁에 가니까 동서들보다 많이 챙겨주시더라구요. 동서들은 자잘한거 주시고 계란도 세 판씩 묶은거 9판을 사셨더라구요.한 판에 천 원씩 사셨다면서 저희 형제들 3판씩 주셨어요."
"햐, 시어머니께서 명절에 자식들 내려오면 주려고 많이 사서 쟁여 놓으셨군요."
"예, 산삼주라나? 그것도 5만원 주고 사셔서 저희 신랑주라고 주셨어요."
"산삼주요?"
"예 8월 이후에 숙성시켜서 먹으라고 주시던데요."
"그것도 거기서 사신 거예요?"
"예, 거기서 사셨대요. 또 흑삼이라나? 그것도 다섯 뿌리나 사시고."
"흑삼이 뭐예요?"
"홍삼은 말려서 다린거고 10번 말린건 흑삼이래요.5뿌리에 168만원 주고 사셨는데  그 자리에서 바로 갈아서 5통 분말로 만들어 줬대요. 신랑주라고 흑삼도 두 통 주셨어요."
"5뿌리면 한 뿌리에 한 통씩이네요."
"예, 그렇죠.우리 시어머니 아침마다 한 숟가락씩 퍼서 드시던데요.
아침에 일어나서 마루에 나오니까 시어머니가 서신 채로 흑삼, 강황가루를 순서대로 한 숟갈씩 떠서 잡숫다가 저랑 눈이 딱 마주쳤어요. 시어머니가 멋적게 웃으시며 하시는 말씀이 "내가 아파서 병원에 있는거 보단 낫제?" 하시길래 "예, 그럼요, 어머니 잘 잡숫고 건강만 하심 되셔요."하고 말해드렸어요."
"시어무니가 참 귀여우시네요."

"우리 시어머니 가장 압권이 뭔지 아세요?"
"압권이요?"
"예, 우리 시어머니가 올인원 두 개를 사신거예요."
"올인원이요? 시어머니가 올인원을요?"
"예, 모아주고 올려준다고 해서 사셨대요."
"모아주고 올려준다고요? 하하 시어무니도 천상 여자시군요. 시어머니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74세 되셨어요. 알록달록해가지고 그 올인원 저는 그냥 줘도 못 입겠더만 우리 시어머니는 그걸 한 개에 58만원이나 주고 사셨대요. 시어머니가 우리 큰 딸보고 "하나 입으련?" 하니까 " 아냐, 할머니. 할머니 입으세요." 하면서 기겁을 하던데요. 울 딸이 하하"
"시어머니께서 많이 사셨네요. 그리고 또 뭘 사셨대요?"
"오이 모양으로 된 수분젤인데 만 원에 5개 주고 그것도 사셨대요. 내가 너한테만 준다믄서 저한테 두 통을 주셔서 한 통은 우리 친정엄마 갖다드리니까 엄청 좋아하시던데요."
"품질은 어때요?"
"촉촉하니 아주 좋던데요."
"만 원에 다섯 통이면 거저네요."
"예, 다른데서 엄청 비싸게 이문 남기고 이런 거는 싸게 팔고 계란도 한 판에 천 원씩이라고 세 판 씩 묶어서 팔아서 우리 시어머니 싸다고 9판이나 사서 저희 형제들 3판씩 나눠주셨어요."
"그게 부모 맘이죠."
"예, 시어머니가 너무 즐거워하시면서 그동안 사서 모아두신걸 이번 설명절에 저희들한테 다 나눠주셨어요. 신랑하고 시동생들은 한숨 쉬면서 천장만 바라보고 있고요."

"그랬겠네요. 5~6백이 작은 돈은 아니니까요."
"그래서 제가 그랬죠. 너희가 어머니한테 물건 사시라고 돈 한 푼 준 것도 아니고 당신이 벌어서 사고 싶은거 죄 사셔서 자식들한테 다 나눠주신건데 뭐라 할 거 없다고 못을 박았죠."
"시어머니가 통이 크시군요."
"예, 저희 시어머니가 아파트에서 오래 청소일을 하셨어요. 세 분이서 일을 하셨는데 이번에 한 명이 구조조정을 당하셨나봐요."
"아, 그럼 시어머니가?"
"예, 나이순으로 짤렸다고 늙는 것도 억울한데 구조조정까지 당했다고 시어머니가 펄펄 뛰셨어요. 늙어도 얼마든지 일할 수 있다는걸 보여주겠다고 구조조정 당하고 바로 요양보호사학원에 등록하셨대요."
"와, 시어머니가 요양보호사학원엘요?"
"예, 당신이 요양보호사한테 보호받으실 나이에 요양보호사가 되시겠다고 학원에 등록하셨어요."
"와, 시어머니 정말 멋지시네요."
"예, 명절에도 시댁에 가니까 밥상에 요양보호사 책이 펼쳐져 있더라구요.
큰딸이  와 ~우리 할머니 공부하세요? 멋지네." 하니까 으쓱해 하시더라구요.
지금도 뭐 하시냐고 전화드렸더니 공부하고 있다하고 좋아하시더라구요.

평생 아파트 청소일 하시다가 갑자기 퇴직하시고 집에 계시니 많이 답답하셨나봐요. 그런데 요양보호사 학원은 아침 9시부터 5시까지 공부하니까 공부하는 것도 좋지만 아침에 일어나서 어디 갈 때가 있는게 좋으시대요. 퇴직하고 나서는 아침밥 먹고 경로당가서 쩜 십 미니화투 치는게 일이었는데 그것도 며칠 하니까 재미없더래요.그러다가 공짜계란 준다고 작은 엄마 쫒아갔다가 물건 파는 사람들한테 코 꿴거죠. 그 덕분에 퇴직금까지 다 날리셨고요. 우리 시어머니는 혼자 사시니까 창고에 물건 사서 쟁여두셨지만 작은 엄마는 작은 아버지가 살아계셔서 집에는 못 가지고 들어가시고 작은아들 집에 숨겨 놓고 있다고 하시더라구요."
"햐, 그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기에 할머니들 쌈지돈까지 다 털어 물건을 사게 만들까요?"

"저도 시댁에 갔다가 시어머니가 집에 안 계셔서 시어머니 찾으러 갔다가 한 시간 쯤 지켜봤는데 와 진짜 그 사람들 말 잘해요. 할머니들이 안 좋아할 수가 없겠더라고요.잘 생겼지. 말 잘하지. 빈건물 하나 빌려서 할무니들한테 잘해주고 물건 팔고. 우리 시어머니 담당했던 사람도 첨엔 대리였는데 차장으로 승진했다잖아요.  할머니들한테 물건을 얼마나 많이 팔았으면.
우리 시어머니도 그러시지만 물건 사신 할머니들 물건 판 사람들 조금도 원망하지 않으세요. 우리 시어머니도 퇴직금까지 다 가져다가 비싼 물건 사셨지만 그 사람들 원망 절대 안하세요."
"왜요?"
"할머니들한테 그 사람들은 그저 물건만 파는 장삿꾼이 아니거든요. 어느 때는 남자처럼 어느 때는 아들처럼 또 어떤 때는 친구처럼 대해주니까 할머니들한텐 멀리 사는 자식들보다 낫다고 생각하시죠."
"아, 샘말 들으니까 괜히 눈물나네요."
"우리 시어머니는 그 매트 사서 쓰고 부터는 눈 떨리는게 없어지셨대요. 눈떨림이 보통 마그네슘이 부족해서 생기는 거잖아요. 그런데 우리 시어머니는 그 98만원짜리 매트때문에 눈떨림이 싹 나았대요. 그 사람들 말대로 하루  60분씩 누워있었더니 보름이 지나니까 눈떨리는게 싹 없어졌다고 신통하다고 아주 좋아하세요."

"그러시구나. 어쨋든 할머니들 한테 잘하고 행복하게 해준다니 고맙네요. 이왕 할머니들이 좋아하시니 할머니들한테 파는 물건이라도 나쁘지않고 품질이라도 좋은 거였음 좋겠네요."
"예, 시동생도 남편도 아무 말도 못하고 천장만 바라보고 한숨들 쉬지만 전 시어머니가 좋아하시니 그거로 좋다고 생각해요.
퇴직금까지 다 썼다고 우리 시어머니 요양보호사 자격증 따서 돈 또 버실거래요.
시골에 사는 독거할머니들 세 집만 세 시간 씩 돌보면 한 달에 200만원은 족히 번다고 3년만 일하신대요.
당신이 비싼 물건 사서 사기당했다는 생각 절대 안하시고 효과있다고 사신 물건 잘 쓰시고 자식들한테도 차에 실을 수 없을 정도로 바리바리 싸주시고 또 요양사가 되시겠다는 새 목표가 생기셔서 열심히 공부하시니 자식으로서 저는 참 좋아요."

'어찌 그럴 수가'와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의 차이다.
'할 수 없다'와 '할 수 있다'도 마음먹기 나름이고.
요양받으실 나이에 요양시켜주는 일을 하시겠다고 74세 나이에 요양보호사 시험을 준비하시는 우리 지정순 할머니처럼 세상만사 마음먹기 나름이다.

자체적으로 나쁜 상황은 없다. 생각으로 나쁜 상황을 만들고 생각으로 좋은 상황을 만들 뿐. 우리 지정순 할머니를 비롯하여 열심히 사시는 온세상에 젊은 할머니들 으라차차 힘내시라... 그리고 우리 심계옥 엄니를 비롯하여 온 세상에 나이 많으신 할머니들도 모두 모두 힘내시고 오래오래 강건하시길 두 손 모으는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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