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김치 담그기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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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김치 담그기 도전
  • 최병관
  • 승인 2019.04.2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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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 최병관 / 인천노인종합문화회관 소통의 글쓰기반 회원



퇴행성 무릎 관절로 거동이 불편한 아내는 다리 수술로 얼마 전 1년 내내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그동안 아내는 10년 넘게 치료를 하고 있었는데 1차는 약물 치료였고 2차는 파열된 연골을 제거하는 내시경 시술 이었다. 이번이 세 번째인 골절 수술이다. 이미 부러진 뼈를 접합하는 게 아니고 종아리뼈를 잘라서 체형을 바로잡아 고정시키는 수술이다, 무릎에 가해지는 하중을 분산시켜 통증을 완화하는 방법이라 치료 기간이 길다.

한쪽 다리에 6개월 씩 1년여의 시간이 걸리는 긴 병원 생활이라 아내와 나는 제대로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하지만 아픈 몸을 잘 치료해서 삶의 질을 높이려면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솔직히 아내한테 말은 못했지만 내심 걱정이 앞섰다. 사실 나는 아내와 40년 가까이 살면서 집안일은 전혀 손을 댄 적이 없다. 어느 정도냐면 이사를 십 수 번 했지만 같이 집을 구하러 다녀본 적이 없다. 한 번은 이사 하는 날 집을 몰라서 전화를 하고 집 근처에 가 다시 전화를 해서 마중 나온 아내를 따라 집을 찾아 간 적도 있다. 회사를 출근하는 일 외에는 아내한테 얹혀사는 거나 다르지 않았다.

그러던 내가 1년여를 아내 없이 혼자 숙식을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스스로 기막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에게도 의지할 곳이 없어 딱한 처지가 된 나는 어떻게 해야겠다는 계획도 없이 그저 어떻게 되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뿐이었다. 아내가 입원을 한 뒤 처음 며칠은 챙겨 두고 간 반찬에 사골 국 까지 끓여놓고 갔으니 별 문제가 없었다. 집안 구석구석 깨끗이 청소까지 해 놓고 갔기 때문에 딱히 불편 한 것 같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게 웬일, 채 1주일도 안 돼서 늘어나는 빨래와 어수선한 실내 공기가 산란스러운 느낌을 들게 하였다. 나는 공복을 채우기 위해 매번 끼니를 생각하게 되었고 쌓이는 설거지 거리와 반갑지 않은 집 먼지들이 씩씩거리며 노려보는 것 같았다.

아내 없는 빈자리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때 나에게 분명한 깨달음이 왔다. 내가 변해야 산다는 것, 어차피 내가 하지 않으면 누가 할 것인가? 답이 없지 않은가 기왕에 당한일 그래 한 번 해보자. 모르는 것이 있으면 무조건 아내에게 묻기 시작했다. 밥은 어떻게 짓고 설거지는 어떻게 하고, 세제는 무엇을 쓰고, 세탁기는 어떻게 돌리고…… 하나에서 열 까지 묻고 되묻고 알 때까지 물었다. 그 때 가르쳐 주는 아내도 힘들었겠지만 배우는 나도 이를 악물어야 했다. 될 때 까지 해 보는 거야. 이쯤 되고 보니 어떤 오기 같은 것이 나를 돌격대로 내 몰았다.
혹독한 훈련을 거치면서 차츰 주어진 생활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주말이면 집에 들르는 아내를 위해 청소도 했고 반찬 만드는 일도 정성껏 했다. 그 때 마다 아내는 “아이고, 내가 있을 때 보다 집이 더 깨끗해 졌어요. 반찬은 왜 이렇게 맛있고, 나 없이 혼자 살아도 문제 없겠어요.” 칭찬인지 핀잔인지는 몰라도 내 귀에 거슬리지는 않았다.

나름 바쁘게 살다보니 어느덧 계절도 두 번이나 바뀌어 늦가을이 되고 단풍도 끝물이 되어가고 있었다. 아내는 남은 오른쪽 다리 수술을 마치고 요양 중이었다. 나도 평소와 다르지 않게 출퇴근하며 밥 짓고 빨래하고 다람쥐 쳇바퀴 돌듯 변함없는 일상을 살고 있었다. 하지만 확실히 달라진 건 있었다. 간병에 살림살이까지 하다 보니 예전 같으면 무심히 스쳐갔을 일들도 눈에 들어왔다.





아내 병문안을 갈 때 나는 병원 식단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하루는 병원 식단이 너무 부실하다는 생각이 들어 아내의 입맛에 맞는 것이 뭐 없을까? 하고 궁리까지 하게 되었다. 동네 마트에 볼일이 생겨 들렸을 때다. 이리저리 주변을 살펴보고 있는데 마침 밭에서 막 뽑아 올린 듯 싱싱한 무단이 선뜻 눈에 들어오는 것 아닌가. 평소 물김치를 좋아하던 아내 생각에 아! 바로 저거다 싶어 무조건 세 단을 사서 배달을 부탁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먼저 전화부터 걸어 물김치 담는 것부터 물어가며 받아 적었다.

먼저 무와 무청을 깨끗이 씻어놓고, 찹쌀 한 줌을 넣어 멀겋게 물을 끓이고 무채를 썰고 무청도 숭숭 썰어 뒤섞어 김치 통 두 개에 나누어 담았다. 그리고 사과와 배 두 개씩 양파 네 개를 잘라 양파 망 두 개에 나누어 담아 무채 깊숙이 묻었다. 그 위에 소금 간을 좀 짜게 해서 식혀둔 찹쌀 물을 김치 통에 적당히 붓고 쪽파 몇 대씩을 올려 뚜껑을 닫으니 물김치 담그기가 끝났다.

김치를 거실 한쪽에서 4일 동안 숙성 시킨 뒤 꺼내 맛을 보니 아! 탄성이 나올 정도로 맛이 있었다. 직접 내 손으로 담근 솜씨인데 처음 시도하는 맛 치고는 괜찮았다. 다음 날 퇴근시간에 맞춰 곧장 집으로 돌아온 나는 병실에 같이 계신 분들을 감안해 넉넉히 담은 김치 통을 들고 서둘러 아내한테 갔다. 마침 식사시간을 한참 놓친 때라 냉장고에 넣어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돌아왔다. 대충 주변 정리를 하고 막 잠자리에 들려는데 아내한테서 전화가 왔다.

아내는 내가 돌아 간 뒤 처음에는 별것 아니겠지 싶었는데 자꾸만 치켜드는 맛에 대한 궁금증을 떨칠 수가 없었다고 한다. 김치를 꺼내다 아줌마들과 함께 먹었는데 어찌나 맛있던지 자꾸 먹다보니 조금 남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남은 것이 있으면 내일 더 갖다 달라는 것 아닌가. 뜻밖에 생각지도 않은 칭찬을 듣게 된 나는 기분이 좋아졌다. 살다보니 이런 날도 다 있구나 싶어 피식피식 웃음이 나왔다. 행복이란 이런 거였구나! 싶기도 하고 한동안 사라지지 않는 아내의 흐뭇한 얼굴표정 때문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이렇게 해서 나의 물김치 담그기 도전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됐다. 같은 병실에서 함께 고생하던 한 아주머니는 지금도 가끔 아내한테 전화를 걸어 자기가 물김치를 담그면 그때 그 맛이 안 난다고 비법을 전수 해 달라고 성화란다. 그때 아내와 같은 병실에서 그 물김치 맛을 보았던 아줌마들은 기대도 않았던 남정네가 우려낸 맛이라서 후한 점수를 주었던 것은 아닐까? 그러해도 나의 반쪽인 오유순씨! 아무쪼록 아프지 말고 오래오래 내 곁에 있어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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