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일, 나쁜 일, 필요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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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일, 나쁜 일, 필요한 일.
  • 이민지
  • 승인 2019.06.24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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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칼럼] 이민지 / NGO 활동가


지난 4월 강원도 고성에서 발생한 산불 피해지역의 이재민들을 위한 구호품 중에 논란이 된 물품이 있다. 바로 ‘헌 옷’ 이다. 누군가 인터넷에 ‘헌 옷을 보내자’라는 글을 올렸고, SNS 등을 통해 확산되면서 피해지역에 막대한 양의 헌 옷이 보내졌다.

당황한 해당 자치단체에서는 헌 옷을 보내지 말아달라는 요청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헌 옷 관련 문의로 인해 정작 필요한 구호 물품 접수 전화를 받지 못하거나 헌 옷의 수요처를 찾지 못하고 창고로 보관해야 하는 문제가 생긴 것이다. 그런데 이후 사람들의 반응이 흥미롭다. “돕고자 보낸 것인데 보내지 말라고 한 것은 너무한 것 아니냐” 라던가 “배가 불렀다, 도와주지 말자” 라는 비난 투의 의견까지 오간다.
 
필자는 한국의 국제개발 NGO의 봉사단원으로 캄보디아에 파견되어 2년 여의 시간을 보냈었다. (개발에는 다양한 분야가 있고, 그곳에서 꽤 많은 일들을 했지만, NGO 활동은 생소할지 모르니 가난한 나라를 돕는다고 말하는 편이 쉬울 것 같다.) 현장에서 가장 흔하게 겪었던 일이 바로 이 ‘처치 곤란한’ 구호품, 또는 후원물품이었다. 물론 굉장히 필요한 물품이 있기도 하다. 그런데 거의 대부분의 후원물품들은 받는 이의 필요에서 시작된 것이 아닌, 주는 이의 섣부른 판단으로 결정된다.
 
헌 옷은 그중에서도 일등을 다툴 만큼 많은 사람들이 보내온다. 쉽게 처분할 수 있는 물품이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사이즈와 용도, 옷의 상태이다. 사이즈가 맞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여름밖에 없는 나라에 두꺼운 외투와 니트를 보내오는 일도 다반사고 이물질이 묻고 지퍼가 잠기지 않는 등의 손상된 옷들도 많다.

 


헌 옷 뿐만 아니라 책, 중고 학용품, 신발도 단골 물품이다. 하지만 누군가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막상 전달하기는 쉽지 않다. 예를 들어 학교에 기부하려면 모든 학생들에게 돌아갈 만큼의 수량이 있어야 하고, 아무리 열악한 곳이어도 너무 헌 물품은 받지 않으려 한다. 학교가 어렵다면 개별 가구별로 전달하는 방법은 어떨까? 당연히 그 일을 해낼 인력과 시간이 현실적으로 부족하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사람들이 좋은 마음으로 행한 ‘선의’가 점차 불편하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개발현장에서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아프리카의 어린이들을 말라리아 모기로부터 지켜주자는 좋은 취지로 시작되어 세계 각국에서 지원된 모기장은 아프리카 모기장 제조업자들의 폐업을 야기하며, 저개발국가에 기부한 옷들은 국가 산업발전의 가장 기본적인 경공업의 육성을 어렵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또한, 세계 각국에서 밀려들어온 도서 기증으로 인해 아프리카 대부분 국가의 출판업 성장은 정체되어 있다. 다시 말해, 상대방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선의는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는 일이다.

어쩌면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자 했던 많은 행동들이 지극히 이기적인 관점에서 시작된 것은 아닌지 돌이켜보았으면 한다. 버리려 했던 물건을 어려운 이웃들에게 처분해놓고 ‘좋은 일’을 했다며 스스로 위안을 삼지 않았는지 말이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얼마 전 충격적인 기사를 보았다. 우리가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쓰고 있던 텀블러나 에코백 등이 오히려 환경을 파괴하는 주범이 된다는 것이다. 텀블러와 에코백을 오래 사용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들 물건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자원이 낭비되는 결과가 나타난다.
 
이 글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헌 물건이 필요 없으니 이웃들에게 내미는 도움의 손길을 중단하자거나, 환경보호를 위한 노력이 환경을 파괴하고 있으니 일회용품을 쓰는 편이 낫겠다는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한 관심과 행동은 계속되어야 한다. 다만, 그 방법이 올바른지, 진정 무엇을 위한 것인지 한번쯤 고민해 보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성숙한 ‘선행’이 이뤄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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