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를 품은 채 죽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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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를 품은 채 죽고 싶지 않다
  • 지영일
  • 승인 2019.07.0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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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칼럼] 지영일 / 가톨릭환경연대 대외협력위원장


존엄사는 ‘인간으로서의 품위와 가치를 지키면서 죽을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풀이한다. 누구나 생의 마지막 순간에 더 이상 피폐하지 않고 평화롭게, 사랑하는 이들 곁에서 최대한 자연스럽게 삶을 마무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생명에 대해 최선을 다한 후에 품위와 가치를 지닌 종말의 모습을 꿈꾸지만 실상은 그렇게 쉽지 않을 수 있음이다. 나는 어떻게 삶의 순간을 마무리하게 될까? 그 순간에 나의 모습은, 주변의 상황은 어떠할까?
저마다 희망하는 존엄사, 그러니까 삶의 마지막 순간 모습은 다를 것이다.

필자도 관련한 희망사항은 있다. 지금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쓰레기 더미 속에서 죽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내 몸 속 어딘가에 쓰레기 또는 플라스틱 조각을 품은 채 죽음을 맞고 싶지는 않다는 점은 분명하다. 곧 쓰레기처럼 죽고 싶지 않음이다. 이것이 가당치 않은 상상일까?

주로 오징어를 잡아먹는 고래의 뱃속에서 29㎏에 이르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나왔다. 비닐봉투를 비롯해 로프, 그물 조각 등이 위장과 창자를 가득 막고 있었다. 고래가 불의의 죽음을 맞은 이유였다. 녹색 바다거북이의 뱃속에도 플라스틱 쓰레기와 고무밴드, 풍선 조각이 가득했다. 내장을 채우고 목구멍까지 차오른 플라스틱 쓰레기가 유기체의 소멸을 초월해 살아있었다. 세계적인 멸종 위기종으로 거대한 날개를 펼쳐 아름다움으로 하늘을 나는 새 알바트로스는 사라졌으나 죽음의 자리에 플라스틱 병뚜껑, 일회용 플라스틱 라이터, 비닐조각과 끈들을 남겼다. 해변에 널린 썩지 않는 쓰레기를 먹이로 착각했기 때문이다.

국내 연안에서 잡은 ‘토실토실한’ 아귀의 뱃속에는 50㎝ 크기, 500㎖ 용량의 페트병이 들어있었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에 따르면 경남 거제와 마산 일대의 양식장과 근해에서 굴, 담치, 게, 겟지렁이를 잡아 조사해보니 이중 95%의 개체에서 미세플라스틱이 발견되었다. 우리가 늘 섭취하는 소금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하루 평균 10g의 소금을 섭취한다고 보면 1인당 매년 2,000개의 미세플라스틱도 함께 섭취할 가능성이 있다고 그린피스는 경고한다.


<미세플라스틱은 우리가 늘 섭취하는 소금에서도 발견된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봐야 할 미세플라스틱>


쓰레기와 더불어 살다가 쓰레기를 뱃속 가득 채우고 스러진 생명체들의 고통과 마지막 모습에는 어떠한 존엄도 허락되지 않았다. 그러기에 가치 있지도, 자연스럽지도 못했다. 깊은 애도를 표할 밖에. 우리 인간의 목숨보다 질기고 훨씬 더 긴 시간을 살아남을 그 플라스틱이 지구 생명체에 대한 대반격의 그림자를 드리운 지금이다.

일회용 비닐봉투며 크고 작은 페트병, 다양한 포장재 같은 플라스틱 쓰레기를 우리 곁에서 얼마나 멀리 떼어놓을 수 있을까. 내 잠자리와 마주한 식탁, 거실은 언제까지 플라스틱으로부터 청정할까? 값이 싸서, 다양한 용도로 쓰기 좋아서, 튼튼하고 오래 가서 여기저기 많이 썼다. 가정과 사무실, 가게, 건설현장, 산업계에서 시도 때도 없이 플라스틱을 애용했고 놀라운 가성비는 과학기술이 낳은 축복으로 여겨졌다. 보물단지로 생각했지만 정작 알고 보니 애물단지다.

해양생물, 새들에게 들이닥친 비운이 우리는 비켜 갈 것이라고 확신하는가? 땅이며 바다, 흙과 물, 온갖 유기체가 운명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순환하는 생명의 세계가 바로 지구다. 조만간 어떠한 전환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뻔히 알면서도 돌이킬 수 없는 길 위에 선 우리 자신을 마주할 것이다. 유기체로서의 본질을 훼손당하거나 침해당하지 않고 내 죽음의 자리에 또 다른 죽음을 부를 그 무엇도 남기고 싶지 않다. 부디 나의 죽음에서 플라스틱쓰레기를 물리쳐다오. 당장은 이것이 내가 희망하는 존엄사의 한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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