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음과 믹싱, 주안의 작업실에서
상태바
녹음과 믹싱, 주안의 작업실에서
  • 이권형
  • 승인 2019.07.04 07: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3) [서울, 변두리] 팀별 음원 제작 과정
 

지역에서 음악을 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2018년 7월, 인천의 세 싱어송라이터 Pa.je 이권형 박영환이 함께 컴필레이션 음반 [인천의 포크]을 제작했고, 이어  2019년 연작 [서울, 변두리]를 발매합니다. [인천in]은 이에 매주 1차례씩 8회에 걸쳐 지역 음악과 음악인들의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음반 제작 프로젝트의 취지와 내용을 소개하며, 인천과 서울, 그 변두리 지역을 오가며 활동한 세 팀(클라우즈 블록, 단식광대, 물과음)과 함께 음반 제작 과정과 프로듀서 인터뷰, 아티스트들의 대담 등을 기록하고 그 의미들을 찾아봅니다.


- 시작하면서
 
이번 3회차 기사는 음원을 제작하는 과정을 담았다. 녹음과 믹싱을 맡은 프로듀서는 주안에 있는 서준호 한 사람이다. 애초에 프로듀서를 한사람이 맡기로 합의하고 시작하지는 않았으나 통일감 있는 음반이 나왔으면 하는 의도로 모든 팀에게 서준호를 추천했다.
 
프로듀서는 1명 이었으나 팀마다 지리적인 활동 공간, 일상의 생활 환경 등이 천차만별이었으므로 작업은 기한을 정해두고 각 팀별로 진행됐다. 주안에 거주하는 클라우즈 블록은 작업실이 매우 가까웠고, 김성훈은 쌍문에서 주안까지 총 네 번을 왕래하며 작업했다. 기획자로서 각 팀의 작업 방식에 딱히 관여하려고 하지 않았다. 의견 차이가 있어도 그대로 뒀다. 그러므로 이번 지면은 팀별 음원 작업기를 부탁하여 취합한 형식으로 엮었다.
 
설명이 필요하면 괄호 안에 별표를 하고 각주를 달았고, 팀별로 함께 첨부한 사진에는 구체적인 날짜를 찾아 적었다. 그 외 오탈자, 비문을 제외하고 수정하지 않았다. 고로, 아래는 각 팀의 서술을 거의 그대로 인용한 내용으로 본래 기사에 쓰지 않는 존칭 등의 표현들도 그대로 살렸다.

 
- 클라우즈 블록
 
녹음에 앞서 함께 작업하게 될 준스노우(*엔지니어 서준호)님에 대한 신뢰가 상당히 높았다. 준스노우님이 엔지니어로 참여한 이권형님의 정규앨범 <교회가 있는 풍경>을 들으면서 머릿속에 있는 이미지들을 사운드로 만들어 낼 수 있을 것만 같은 묘한 믿음이 생겼었다. 기대감에 부푼 나는 어느 정도 준비가 되어있고 순조롭게 끝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녹음을 시작하고 나서 완벽하게 준비되지 못한 나를 발견했다.

준스노우님과 함께 자연스러운 연결에 대한 코드 진행에 대해 의논하고 해외 포크 음악들을 들어보면서 첫 번째 곡인 ‘주안’의 방향성을 잡았다. 녹음은 하지 못했다. 이후 싱어송라이터 복다진님과 편곡 작업을 했다. 이 전 작업에서는 트랙 수를 최소화한 단출한 사운드를 원했다. 하지만 그건 혼자서 작업을 할 때의 이야기이고 지금은 서로 의견을 개진하고 곡에 대해 나만큼 애정을 가진 두 분이 있으니 이번 기회에 새로운 사운드를 고민해보거나 시도하지 않았던 것들을 해보기로 했다.

곡에 맞는 보컬 톤을 받아내기 위해 두 번의 녹음이 있었다. 편곡에서 감정들을 세심하게 담아내었고 준스노우님의 디렉팅을 받아 보컬은 감정을 최대한 억제하며 녹음을 했고 첫 번째 녹음을 상당히 만족스럽게 마무리했다. 이 만족감은 이후 녹음할 곡들을 자신 있게 작업할 수 있는 양분이 되었다.

 

2019년 3월 20일, 새로운 사운드를 찾기 위해 유리 그릇에 과도를 긁으며 소리를 만들어내고 있는 준스노우
 

‘무당벌레’는 쉴 새 없이 달리는 기타 리프가 세련돼 보이지만 어딘가 어두운 노래였다. 여태 만든 노래들이 대부분 단조라서 무던해졌는지도 모른다. 가져온 데모를 같이 듣고 난 후 준스노우님이 어떻게 만들게 된 곡인지 물었고 설명하는 와중에 무언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곡 분위기와는 다르게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아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어레인지(*편곡)를 하고 집으로 가 새롭게 녹음을 해왔다.

두 번째 녹음본을 들으면서 준스노우님은 홈레코딩이 심리적으로 편하다면 그게 더 좋은 소스를 만들어낼 수 있을 거 같으니 홈레코딩을 제안하셨다. 노이즈와 사운드적인 문제들은 준스노우님이 그 자리에서 바로 해결해주셨다. 나는 기타와 보컬을 아주 오랜 시간 집에서 녹음을 완료하고 복다진님과 편곡을 하였다. 곡의 후반에는 희망찬 승리가 있는 미래를 그리고 싶고, 곡의 초반부터는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애잔한 희망이 담겼으면 좋겠다는 허무맹랑한 의견에도 불구하고 복다진님이 문장을 마치 그대로 옮긴 듯한 피아노 선율을 녹음해주셨다.


 

 2019년 3월 22일, 음악을 들으며 편곡 아이디어를 생각하고 있는 싱어송라이터 복다진.
 

마지막 곡인 ‘청소’는 이전에 녹음한 두 곡이 훌륭한 예행연습이 된 것 같았다. 편안하게 복잡한 마음들을 그대로 사운드에 녹여냈다. 반복이 많은 곡이라 귀로 듣는 재미와 마음으로 듣는 감상을 생각하며 오디오 소스들을 찾기도 하고 직접 녹음하여 세심하게 배치하였다. ‘청소’의 담담한 피아노 연주도 복다진님이 도와주었다.
이전과는 새로운 도전과 시도들이었지만 이전과는 크게 다르지 않다는 피드백도 기분이 좋을 것 같다. 앞으로 어떤 시도와 실험을 하든 그 속에 있는 클라우즈 블록은 어디 가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해준 뜻깊은 작업이었다.

 
- 단식광대
 
컴필레이션 앨범 [서울, 변두리]의 대략적인 발매 일정이 정해진 후 엔지니어 서준호씨를 소개받았다. 주말을 이용해 그의 녹음실에 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녹음 일정을 정했다.

 
 2019년 3월 17일, 서울에서 인천 주안으로 가는 길.

 
원래 우리가 정한 녹음 시간은 주 1회(토요일 혹은 일요일) 4번. 한달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녹음 하기로 한 <길고양이>, <바다 같아>, <끝> 3곡 모두 편곡이 완성되어 있었고 자주 공연했던 곡이라 언제든지 쉽게 연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3월 17일 녹음 첫날에 <길고양이>, <바다 같아>, <끝>의 기타 파트를 다 녹음하였고 ‘길고양이’와 ‘끝’의 키보드 파트는 세션 연주자 유지현이 연주하여 녹음을 마쳤다.

 
  
 2019년 3월 17일, 녹음 첫째날, [서울, 변두리] 관련 회의도 있어 클라우즈 블록 씨와 이권형 씨까지 모두 모여 붐볐던 준스노우(서준호) 씨의 작업실.
 

이렇게 대부분의 연주파트 녹음을 마친 후 다음 주에 ‘바다 같아’의 키보드 파트와 모든 곡의 보컬 파트를 녹음하기로 했는데 갑자기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보컬리스트 구자랑이 후두염에 걸린 것이다. 목이 다 나을 때까지 대략 1달을 쉬어야 했다.

4월 27, 다시 녹음을 시작해 ‘바다 같아’의 키보드 파트 녹음과 ‘끝’과 ‘길고양이’ 보컬 녹음을 마치고 ‘바다 같아’ 보컬 녹음을 시작했는데 목소리가 상당히 건조하게 들렸다. ‘바다 같아’의 곡 특성상 하나의 음을 길게 유지해야 했기 때문에 더욱 건조하게 들리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다음 주에 마이크 위치를 바꾸기도 하고 마디마디를 짧게 끊어가며 몇 개의 음만 노래하는 식으로 다시 녹음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는데 마음에 들지 않았다.

 

2019년 4월 27일, 보컬 녹음 현장.
 

결국, 시간을 내어 합주실에 가서 합주를 하며 보컬 파트를 다시 편곡하여 최대한 자연스럽게 소리를 낼 수 있도록 바꾸었고 그렇게 녹음을 끝마칠 수 있었다.

 
- 물과음
 

▲ 2019년 3월 2일, 1차 녹음
 

2016년까지 ‘어쿠스틱듀오 오늘내일’이라는 이름으로 EP를 내고 홍대 인근 클럽에서 활동을 이어가다 여러 가지 사정상 활동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막상 혼자가 되니 홀로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 쉬이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러던 중 아이러니하게도 기존과는 다른 곡들이 하나 둘 내 안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결국 ‘물과음’이라는 솔로 활동을 시작하게 된 것은 바로 그 노래들에 대한 책임의식 때문이었다.

그렇게 노래들이 차곡차곡 모였을 때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어 SNS상에 무작정 솔로 EP 발매 날짜를 올렸다. 그때 해당 게시물을 보고 안면이 있던 싱어송라이터 이권형님이 내게 [서울, 변두리] 컴필레이션 참여를 제안하였다. 평소 그가 기획하고 진행한 ‘강제음악회’(*한남동 테이크아웃드로잉, 서대문 옥바라지 골목 등 서울의 젠트리피케이션 현장에서 진행한 공연/기획) 등 지향점과 가치관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에 그 결정이 어렵지 않았다.
 
‘물과음’이라는 이름을 의식하고 만든 곡이 5곡이 있었고, 그중에 3곡을 선별하여 녹음 작업을 하기로 하였다. 사실 머릿속에 구체적인 편곡들이 있지 않았기에 다소 두렵고 막연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물과 같이 어떠한 형태에 구속받지 않고 흐르는 대로 가보자는 마음 또한 한편에 있었다. 그렇기에 누구와 함께 레코딩 작업을 하느냐가 나에게는 그 바탕을 결정하는 중요한 일이었다.


 
 
2019년 3월 29일, 2차 녹음.
 

그때 이권형님을 통해 인천 주안을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는 믹싱 엔지니어 서준호 (A.K.A 준스노우)님을 소개받게 되었다. 앞서 믹싱 엔지니어라고 했지만, 함께 작업할 당시에는 좋은 동료 조언자이자, 프로듀서, 기타 세션까지 멀티로 도움을 주었다. 무엇보다 그와 작업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지점은 작업하는 내내 그의 목표는 노래의 장점을 극대화하여 끌어내는 것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3월 초부터 4월 말까지 이어진 레코딩 기간 내내 서준호님은 나의 막연한 언어를 구체적인 세계로 구축하는 일종의 샤먼과도 같은 놀라운 역할을 하였다.
 
수록곡 <불과 글>을 작업할 때 요청했던 레퍼런스는 다소 주술적이고 민속적인 음악들이었다. 결국은 삭제했지만 원래는 아프리카 토속 음악을 중간에 삽입하기도 했다. 그러나 곡의 이야기 전개에 맞춰 도입부에는 불꽃이 타들어가는 소리, 후반부에는 지하철 플랫폼의 사운드를 넣어 문명의 시원과 종착에 대한 흔적을 최대한 담아 보려 했다.
 
<적끈>을 작업할 때 즈음 서준호님과 엠비언트 음악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해당 컴필레이션이 기존 [인천의 포크] 연작이라 ‘포크’라는 틀을 의식하지 않을 수는 없었는데, 전혀 다르게 해석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해서 나의 요구는 기괴한 댄스뮤직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고 조금은 엠비언트 느낌을 살리고 싶었다.
 
<저무는 빛>은 최대한 어두운 방 안에서 연주하고 노래하는 느낌을 그대로 담고 싶었다. 실제 레코딩 때도 메트로놈 없이 박자를 의식하지 않고 녹음을 했다. 자세히 들어보면 나의 기타 연주가 틀린 부분도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최대한 자연스러움을 살리고 싶었다. 그래서 간주도 일반적인 악기 솔로 없이 집에서 티브이 소리를 녹음해 채워 넣었다. 고요한 방안, 벽을 타고 흐르는 옆집 티브이 소리 같은 느낌을 살려달라고 서준호님께 부탁하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