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표현과 어려운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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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표현과 어려운 표현
  • 이권형
  • 승인 2019.08.26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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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칼럼] 이권형 / 음악가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 개봉 이후, 한 영화 평론가의 포털사이트 영화 한 줄 평이 화제가 됐다. 주로 논란이 된 대목은 “명징하게 직조해낸”, ‘명징’과 ‘직조’라는 어휘 선택에 대해 말이 많았다.

“상승과 하강으로 명징하게 직조해낸 신랄하면서 처연한 계급 우화.” 이 한 문장을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대중을 상대로 글로 먹고사는 평론가는 저런 말 쓰면 안되죠.”, “수능 국어 1등급 출신인데 명징 모르겠네요.(…) 책 사고 읽는게 취미인데도 명징은 정말 모르겠어요.” 등등 평론가로서 굳이 대중과 괴리된 딱딱하고 어려운 단어를 선택했어야만 했냐는 얘기가 대부분이었다. 여러분은 이 논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곡을 만들면서 가사를 쓰거나 지금처럼 칼럼 따위와 같이 대중과 호흡하는 글쓰기를 할 일이 많고, 그만큼 평소 논란이 된 쟁점에 대해 고민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 같은 표현을 해도 사소한 표현의 차이에 따라 전달되는 의미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이다. 어떻게 표현해야 쉽고, 또 어떻게 표현해야 확실하고 정확하게 전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할 수 있는가. 쉽고 정확한 표현은 없을 것인가.
 
개인적으로 처음 ‘한줄평 논란’을 접하고 당혹스러웠다. 논란이 된 표현들을 자주 쓰는 편이었기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표현을 어렵게 한다는 얘길 듣곤 했다. 당연히 그런 얘길 듣는 게 좋은 건 아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할 때 내 그런 표현들이 도움 되진 않았다고 생각한다. 알게 모르게 소통의 벽이 존재한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

평소에 ‘명징’, ‘처연’ 등 논란이 된 어휘들을 포함한 소위 ‘어려운 단어’를 자주 썼던 건 그게 전하고자 바를 전하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만, 가끔 일상적인 소통에 불편을 겪었을 뿐이고, 특별히 문제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러나 함께 음악을 만들 동료들을 찾는다거나, 돈이 필요해서 일자리를 구한다거나, 함께 여행 계획을 짤 때와 같은 상황에 직면해서는 문제가 되기도 한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
점점 하고자 하는 바를 위해 표현에 대한 고집을 내려놓게 됐다. 동료를 설득해 함께 활동하기 편했고, 직장에서 기획안 작성하기도 수월했다. ‘이해하기 좋은 언어’를 구사하게 된 것이고, 장점이 많은 변화였다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종종 생각한다 ‘이해하기 좋은 언어’에 익숙해지는 게 과연 좋다고만 할 수 있을까.
 
일전에 싱어송라이터 ‘강백수’의 <타임머신>이라는 곡이 가사에 포함된 ‘딴따라’, ‘오뎅’ 등의 표현이 ‘순화돼야 할 비표준어’라는 이유로 방송 부적격 판정을 받은 일이 있었다. 강백수는 당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 단어들은 몰라서 쓴 것이 아니고 대체할 수 없는 단어라고 판단해서 쓴 거다. 오뎅과 어묵은 들었을 때 우리 머릿속에 그려지는 그림이 다르다. 딴따라와 뮤지션도 마찬가지다. 트레이닝복을 입다 보면 늘어나서 츄리닝이 되고 슬리퍼를 오래 신으면 쓰레빠가 되는 거다. 심의 자체가 기준이 없다. 명확한 규정이 있다면 그에 맞춰 창작하는데 어떤 잣대로 판단했는지 알 수조차 없으니 답답하다.”
 
‘딴따라’라고 표현할 때만 그려지는 그림이 있다. ‘오뎅’이라는 표현을 검열해서 배제되는 어떤 향수 어린 느낌이 있다. 물론, ‘이해하기 좋은 언어’로 소통하려는 노력은 누군가를 설득하고 함께 일을 진행할 때 기본적인 배려와 존중의 태도이기도 하다. 그리고 자신만의 언어로 소통했을 때만이 전달되는 의미들도 분명히 있다. 어떤 방식으로 소통할지 판단하는 건 각자의 몫이다. 다만, 기억하자 자신만의 표현방식은 개인에게 ‘걸림돌’이 아니다. 깨어있는 개인의 힘으로 내일의 자신을 만들어 나갈 ‘디딤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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