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구 인력거상의 철거를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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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구 인력거상의 철거를 생각하며
  • 고재봉
  • 승인 2019.09.06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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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칼럼] 고재봉 / 자유기고가




요즘은 지역들마다 그곳의 명물들을 내세워 테마파크 만들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서울 위주의 제왕적인 지역주의에 비한다면야, 각기 가진 고유한 지역색을 드러내는 일은 얼마든지 장려할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실상 유명세를 떨치는 몇몇 장소에 가보면 실망할 때가 참 많다. 가령 전주의 한옥마을을 처음 가보았을 적에도 참 아름답게 잘 꾸몄다는 ‘관광객’으로서의 설렘을 숨길 수가 없었다. 하지만 찬찬히 둘러보면 이런 종류의 테마파크가 서로 엇비슷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매혹적으로만 보이던 장소가 식상하기 짝이 없다는 생각에 실망감이 왈칵 들었던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사람의 마음이 어쩔 수 없이 ‘원본’, 혹은 소위 ‘오리지널’이라는 것에 대한 유치할 정도의 향념(向念)에 끌리는지라, 우리는 모조품에 가까운 것을 대할 때면 그 경멸 또한 숨길 수 없기 때문이다.
 
원본과 닮으면 닮을수록 오히려 사람의 마음을 속였다는 분심(忿心)만 더욱 커질 뿐이니 모조품의 숙명이란 것이 거개가 그렇다. 한옥마을을 두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미안하다만, 거리에 즐비한 한옥들이 실은 한옥을 본떠 만든 신식 건물들이며, 그곳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빌리는 한복들도 정체불명의 ‘유사 한복’인지라 도무지 지역색이라는 것을 느낄 만한 요소가 전혀 없었다. 그런데 새벽녘 언덕에 올라 한옥마을을 한눈에 조감해보니, 진짜 한옥과 전주는 한옥마을 깊숙한 곳에 따로 있었다. 나이 든 건물이 뿜어내는 운치를 관광객들에게는 쉽게 허락할 수 없다는 듯이 나지막한 지붕의 한옥들이 저희들끼리 옹기종기 몰려있는 모습을 보며 나는 비로소 전주에 온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전주에 비한다면야, 인천은 딱히 유명한 관광명소랄 것이 별반 생각나지 않으니 오히려 인천사람인 내가 전주를 힐난하듯이 글을 쓰는 것이 공정한지는 자문해보아야겠다. 그런데 인천에도 이런 지역색으로 사람들이 붐비는 곳이 있기는 하다. 최근 ‘인력거상’ 철거로 세간의 입에 오르내린 중구청 근처 개항장 거리가 그곳이다. ‘개항’을 테마로 한 이곳이 얼마 전 눈요깃거리로 만든 ‘인력거상’ 때문에 비판을 받다가 결국 중구청이 이를 철거한 모양이다. 일본 영사관자리에 서 있는 인력거꾼의 모습이 일제의 수탈에 대한 기억을 오히려 도드라지게 하여 불쾌감을 자아낸다는 것이 철거의 속사정인 듯하다.
 
물론 이 조형물 철거가 유독 인구에 회자된 데에는 요즘 불거진 한일간의 갈등이 크게 한 몫 했으리라 본다. 동상의 자리에 ‘평화의 소녀상’을 만들자는 의견이 나왔다는 사실이 이를 잘 방증해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은 오히려 언 발에 오줌 누기식의 미봉책이 아닐지 싶다. 왜냐하면 개항장 거리라는 곳이 지닌 역사성 자체에 대한 성찰이 없다면 이 거리는 영원히 철거의 운명을 맞는 동상의 처지마냥 한낱 ‘모조품 거리’로 전락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개항’이라는 말은 신식 문물이 들어와 근대화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쇄국을 기본적인 대외정책으로 삼았던 동아시아 국가들에게는 서구의 침략을 의미하기도 한다. 까닭에 개항이라는 말에는 주체적인 성격보다는, 우리가 강압에 못 이겨 나라의 문을 열어야만 했다는 얼마간의 굴욕과 수치가 담겨있는 셈이다.
 
비단 개항장 거리가 이런 역사적 맥락만 갖는 것은 아니다. 중구청 일대에 옛건물들이 제법 잘 보존이 되어 있어서 향수를 불러일으키거나 혹은 시간 여행을 하는 것만 같은 이채로운 감각을 환기시키는 것은 이 지역이 갖는 또 다른 특수성 때문이기도 하다. 바로 구도심들이 늘 끌어안고 있는 난개발과 저개발이 그 한 요소인 점도 우리는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말하자면 화려한 개항장 거리가 있는가 하면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장소의 이면에는 삶의 질곡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 태반이다. 즉 개항장 거리 일대에는 우리에게 있어서 수치와 삶의 험난함이 배어있다고 보아야한다.
 
그런데 그러한 수치를 손쉽게 상품으로 만들어 팔려 한 것이 이번 인력거상과 같은 사태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나는 개항장 거리에서 생업에 종사하시는 분들을 비난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 거리를 삶의 터전으로 잘 가꾸는 분들을 이미 충분히 많이 뵈었으며, 어떻든 열심으로 하시는 사업이 삶의 윤택과 이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다만 그 거리를 조성하는 중구청이나 인천시는 조금 더 예민한 자각으로 정책에 다가가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가령 중구청 일대의 일식 건물들은 기실 일식 건물이 아니라, 외관을 따라 만든 모조 건물들이다. 덕분에 제법 오래된 건물들이 새로 꾸민 모조품 덕에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할 우려가 있다. 마치 전주 한옥마을 안에 숨겨져 있는 진짜 한옥처럼 말이다.
 
덧붙여 첨언을 하자면, 내가 ‘수치’라는 말을 쓴 데에는 도덕성과 결부된 점이 있다는 것을 밝히고 싶다. 자신에게 묻어 있는 수치를 제대로 직시하고, 그것을 오히려 소중히 여겨 반성의 거울로 삼아야 우리는 비로소 도덕을 운위할 자격이 생긴다고 생각한다. 수치를 불러일으킨다고 하여 그 장소를 함부로 없애거나 가리려 한다면 우리는 반성의 기회조차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물론 이번 ‘인력거상’은 수치를 상품으로 만들어서 전시하고 판매하려 하였던 당국의 잘못이 크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철거를 한 자리에 평화의 소녀상을 세우겠다는 발상은 마치 그 장소가 죄 입은 더러운 장소라도 되는 것처럼, 가리고 덮으려고 하는 것만 같아 영 개운치 못한 생각이 든다. ‘평화의 소녀상’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가리고 덮으려는 발상을 경계하고 싶어서라는 말을 굳이 사족으로 붙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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