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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영원
  • 승인 2019.09.16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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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 화 - 서영원 작전초교 교사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조카가 있다.
학교에 잘 적응하고 있나싶어 4월 즈음에 나눈 대화이다.

나: “수지(가명)야, 학교 가는거 어때? 좋아?”
수지: “어...좋을 때도 있고 안 좋기도 해.”
나: “어떤 게 좋고, 어떨 때 안 좋아?”
수지: “친구들 만나는 건 좋은데, 선생님이 못 놀게 할 때는 안 좋아.”
나: “선생님이 못 놀게 하셔? 왜?”
수지: “맨날 놀라고만 하면 자꾸 치우고 앉으라고 해.”

오해하지 마시라. 수지는 선생님이 착하고 친절해서 좋다고 한다. 그리고 내가 들어봐도 수지 담임 선생님은 애들에게 참 잘해주시는 좋은 분 같았다.
수지말의 세부 내용을 풀어보면 이렇게 된다.

쉬는 시간이 되면 활달하고 적극적인 수지는 바로 친구들을 모아서 뭐할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그러다가 뭔가 결정이 되면 그걸 하려고 둘러앉아서 놀거리들을 빼는 순간 쉬는 시간이 끝나버린다. 그러면 선생님이 치우고 그만 자리에 앉으라고 한다는 거다. 그래서 그게 불만이라는 것이다.

안 그래도 이것저것 궁금한 거 많고 하고 싶은 거 많아서 느리디 느린-어른들의 입장에서 볼 때- 1학년 애들에게 10분의 쉬는 시간은 얼마나 짧은 시간이겠는가. 1학년 담임도 해봤던 내가 그런 1학년 애들의 고충을 그제야 알았다는 것이 여간 부끄러운 일이었다.
 
반년 전의 대화가 불현 듯 떠오르게 된 계기가 있다.
인천의 일부 초등학교에서 쉬는 시간을 5분만 준다는 것을 들은 것이다. 이유는 더 기가 막히다. 애들이 쉬는 시간에 장난쳐서 다치니까 학생 안전을 위해서 그런다는 것이다.
신박한 논리다.

조금만 더 애들 안전을 위했다가는 학생들 의자에 잠금장치도 할 기세다. 화장실 간다는 학생이 생기면 교사가 잠금장치를 풀어줘서 그 애만 화장실에 다녀오는 그런 끔찍한 장치 말이다.
가끔 학교 공사나 학교운영상 불가피한 특별한 사정으로 인해 학생들을 빨리 하교시켜야 할 필요가 있어서 임시적으로 쉬는 시간을 단축해서 운영하는 경우는 보았다. 하지만, 이렇게 학생의 안전을 위한다는 빌미로 쉬는 시간을 5분으로 줄여서 전체 학사일정을 운영한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었다. 저학년 애들에게는 10분이란 시간마저도 너무 짧은데 그걸 절반으로 줄여버린 것이다. 비단 저학년뿐만이 아니다. 10분은 1학년이든 6학년이든 애들이 쉴 수 있는 아주 최소한의 시간을 제공해주는 것이지 아주 여유로운 시간을 준 것이 아니다.

그러고 보니 불쑥 떠오르는 비슷한 기억이 하나 더 있다.
작년에 일부 학교가 점심시간에 애들의 학교 운동장 사용을 금지시켰다는 이야기이다. 이유는 역시 애들의 안전을 위한다는 것이다. 점심시간에 애들이 운동장에서 놀다가 다치거나 싸우는 경우가 많아서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란다.
애들을 학교 안에 가둬두고는 무조건 책상 앞에만 앉아 있다가 집으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애들이 학교에서 지겨워 죽겠든 뭐든 신경 쓰지 않겠다는 태도이다. 비극도 이런 비극이 없으며 시대를 역행해도 이렇게 역행할 수가 없다.

서울대 소비트렌드 분석센터가 2018년 대한민국 소비트렌드 중 하나로 선정한 것이 ‘소확행’이다. 주택 구입, 취업 등 크지만 성취가 불확실한 행복을 쫓기보다는, 일상의 작지만 성취하기 쉬운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는 삶의 경향, 또는 그러한 행복을 뜻하는 말 ‘소확행’.

불확실한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를 포기하는 대신 작지만 확실한 현재의 행복을 추구한다는 소확행의 삶의 자세는 점점 더 확대되어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이라는 말까지 탄생시켰다. 무조건적으로 미래를 위해 달려가는 경주마가 되는 대신 현재를 살면서 일과 내 삶의 균형을 맞춰서 살 수 있는 일을 선택하는 삶의 중요성을 뜻하는 말 ‘워라밸’.

어른들은 그렇게 현재의 삶을 질을 중요시하는 분위기로 변하고 있는데 학교 현장에서는 반대로 아이들에게 현재의 삶의 질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태도로 취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몰라서 그렇지 그런 학교들이 많아서일까? 요즘 ‘스라밸’(Study and Life Balance) 이라는 말도 떠오르고 있다고 한다. ‘공부와 삶의 균형’이라는 뜻으로 어린이와 청소년에게도 공부와 휴식의 균형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런 말이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는 것 자체가 요즘 학생들이 얼마나 찌들어있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한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주변에서는 중간놀이 시간 등을 확보해서 ‘스라밸’이 학교에서 조금이라도 실천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초등학교들도 많이 늘어나고 있다.
바라는 게 있다면 이런 학교들이 늘어나는 추세가 훨씬 빨라지면 좋겠다. 그래야 애들 시간 뺏어서 어른이 편해지려고 하는 학교들이 애들의 현재를 존중해주는 학교들의 숫자에 압도적으로 눌려서 사라져버릴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렇게 되어 가까운 미래에 작년에 그리고 얼마 전에 들었던 학교들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면
‘에이~, 아무리 그래도 그런 학교가 있었을 라구요. 말도 안 돼요.’ 라고 반응하는 시대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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