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 속에 행복이, 행복 속에 불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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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 속에 행복이, 행복 속에 불행이
  • 최원영
  • 승인 2019.09.16 08: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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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마음이 빚어내는 행복과 불행


 



풍경 #121. 행복을 구하는 질문

누구나 행복을 원합니다. 그런데 그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 이유를 어느 책에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책에 따르면, 원래 인간은 행복했었다고 해요. 그런데 행복해하는 인간들을 시기한 악마가 인간에게서 행복을 빼앗아 인간의 눈으로는 도저히 찾지 못할 곳에 숨겨두었다고 합니다. 악마는 행복을 어디에 숨겨두었을까요?

악마가 여기저기에 숨겨두었지만 똑똑한 인간들은 여지없이 그것을 찾아내곤 했습니다. 그래서 악마가 마지막으로 감춘 곳은 바로 인간의 ‘마음’속에 숨겨두었다는 거예요. 그때부터 인간은 행복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행복을 늘 마음 밖에서만 찾으려고 했으니까요.
 
행복이 마음속에 있다고 하는 것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점이 있습니다. 우리의 눈으로는 마음 속을 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행복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알게 되면 조금은 더 행복을 찾기가 수월하리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많은 철학자들이 행복을 규명해왔습니다. 철학자들마다 주장하는 바는 다를지라도 행복을 '즐거움'이라고 규정하는 데는 일치하는 것 같습니다.
 
하버드대학교 교수를 역임한 탈 벤 샤하르 교수에 따르면, 행복은 즐거움과 삶의 의미를 동시에 만족시킬 때 드는 감정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즐거움’은 현재 느끼는 긍정적인 감정을 말합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즐겁다면, 또는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으로부터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면 여러분은 행복의 절반을 가진 셈입니다.
‘삶의 의미’는 ‘현재’가 아니라 ‘미래’를 의미합니다. 즉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계속 하거나 또는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을 계속 만나며 관계를 지속했을 때 미래의 자신이 성장하고 발전한다면 삶의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컨대 술이나 마약에서 즐거움을 느낀다면, 그 순간은 즐거울지 몰라도, 그것이 계속되었을 때 미래의 자신은 삶이 통째로 파괴되고 말겠지요. 그렇다면 술이나 마약에의 즐거움은 행복이 아니라 불행의 씨앗이 되고 맙니다.

탈 벤 샤하르 교수가 가르쳐준 지혜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선택할 때 큰 도움이 됩니다. 공부를 예로 들어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대체로 공부보다는 놀고 싶은 것이 자연스러울 겁니다. 그러나 시험을 대비해 공부를 해야 한다면 ‘생각’을 바꾸면 되겠지요. 어차피 해야 할 공부라면 ‘즐겁게’ 해보자고 마음먹어 보는 겁니다. 이런 태도가 습관이 되면 자연히 성적은 오르게 되지 않을까요. 이것이 ‘삶의 의미’, 즉 자신의 미래의 밝은 모습입니다.
 
이제 행복을 찾기 위한 간단한 물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해야 할 일이 앞두고 있거나 누군가를 만나기로 했다면 먼저 아래의 두 가지 질문을 떠올려보면 어떨까요.
하나는 ‘나는 이 일을 즐겁게 할 수 있을까?’ 또는 ‘나는 저 사람과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이고, 다른 하나는 ‘이 일을 계속한다면 나의 멋진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까?’ 또는 ‘이 사람과 계속 교류한다면 내가 더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을까?’
 
 

풍경 #122. 
 
노자는 “화(禍)에는 복(福)이 붙어 있고 복(福)에는 화(禍)가 엎드려 있다”고 했습니다. 이는 불행 속에 행복이 붙어 있고, 행복 속에 불행이 숨어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행복과 불행은 따로 떼어놓을 수 있는 것이 아니란 말이 됩니다. 더 심하게 표현하면 행복이 곧 불행이고, 불행이 곧 행복이란 것입니다.
 
논리적으로 모순투성이 같은 이 말은 진리입니다. 사실 우리의 지나온 삶을 되짚어 보면 실수투성이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고, 엄청난 모욕을 당하면서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불행이라고 생각한 것이 훗날 보면 행복의 근원이 되어주기도 했고, 행복에 겨워 기고만장하다가 벼랑 끝에서 떨어지는 불행을 맛보기도 했을 겁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경험들이 차곡차곡 쌓여 우리의 삶을 건강하게 지탱해주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행복과 불행은 한 몸이라는 노자의 지적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행복할 때는 더 겸손하게 살고, 불행을 겪을 때는 그 불행에 짓눌려 스스로를 절망의 늪으로 떠미는 것이 아니라 불행 중에서도 배울 점을 스스로 찾아내는 용기입니다. 어쩌면 그것이 불행의 늪에서 벗어나 행복의 문을 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지도 모릅니다.
 
하버드의대의 조지 베일런트 교수는 대학생 268명의 삶을 30년 동안 추적조사를 했습니다. 그가 궁금해 한 것은 ‘행복한 삶에 일정한 공식이 있을까’라는 것이었습니다. 1937년도에 시작된 연구는 1967년에야 끝이 났습니다. 그는 이렇게 결론지었습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이고, 행복은 곧 사랑이다.”
 
행복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고 살아가면 세상이 만들어놓은 기준에 자신이 얼마나 부합하는지에 따라 행복하다거나 불행하다고 착각하기 쉽습니다. 예컨대 돈이 많으면 행복할 것이라거나 저 사람과 결혼하면 행복할 것이라는 환상에 빠진다는 겁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돈이 많거나 적거나, 또는 그 사람과의 결혼여부가 행복과 불행을 결정하지 않습니다. 물론 그 당시는 짧은 기쁨만큼은 느끼겠지요.
 
심리학자 데이비드 마이어스는 행복에 대한 오랫동안의 연구를 한 결과, 극도의 빈곤으로 기본적인 의식주가 충족되지 않는 경우를 제외하면, 물질적인 부와 행복 사이에는 거의 상관관계가 없다고 결론지었습니다. 그 한 예로 그는 지난 50여 년 동안 많은 국가가 부유해졌지만 정작 행복수준은 오히려 줄어들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이 지적은 앞에서 말씀드린 악마가 행복을 인간의 마음속에 숨겨두었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합니다. 내 마음이 어떠하냐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결정되는 것이니까요. 누군가에게는 초콜릿 하나가 행복하게 만들어주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겐 그것이 전혀 기쁨을 주지 못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결국 나 자신이 행복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런 기분으로 초콜릿 하나에도 감사와 애정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이 불행하다고 스스로 느끼고 있는 순간에는 그 어떤 초콜릿도 기쁨으로 다가오지 못합니다. 이 말은 초콜릿이라는 어떤 ‘대상’이 행복과 불행을 결정짓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 행복과 불행을 결정짓는다는 것입니다.
 
무언가를 하기 전에 가만히 생각해보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지금 나는 행복한가?’
만약 그렇다면 어떤 일을 하거나 어떤 사람을 만나도 여러분은 즐거운 시간이 될 겁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어떤 일을 하거나 어떤 사람을 만나더라도 더 조심하고 더 신중히 대하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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