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양로원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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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양로원 친구들
  • 김선
  • 승인 2019.11.04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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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유당'과 고전읽기 도전하기
[2] 이방인 - ③심판의 의미

〔인천in〕이 송도국제도시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서유당’과 함께 어렵게만 느껴지던 동·서양의 고전 읽기에 도전합니다. ‘서유당’의 고전읽기모임인 ‘하이델베르크모임’은 Jacob 김선(춤추는 철학자), 김현(사회복지사), 최윤지(도서편집자), 서정혜(의류디자이너), 소순길(목사)’ 등이 원서와 함께 번역본을 읽어 내려가며 삶의 경험을 나누고 있습니다.

 
두 번째 고전읽기- 알베르 카뮈(김화영 역), 이방인 L’Etranger, 민음사.
글: Jacob 김 선
 
 
J’ai eu un moment l’impression ridicule qu’ils étaient là pour me juger.
나는 한순간 그들이 나를 심판하기 위해서 거기에 와 있다는 어처구니없는 인상을 받았다.

 
 
  땅거미가 내려 밤이 유리창 위에 짙어 갈 때 문지기는 스위치를 돌려 불빛이 방안에 쏟아지게 한다. 빛은 분명 뫼르소를 힘들게 하는 무엇인 것 같다. 빛은 뫼르소를 변하게 하는 무엇인 것 같다. 무엇인지 모른 채 그대로 받아내고 있어 보는 내가 불안하다. 그런 그에게 문지기가 저녁식사를 권했지만 뿌리치니 밀크 커피를 뫼르소에게 건낸다. 커피를 마시니 담배가 피우고 싶어졌는데 엄마 시신 앞에서 피워도 되는지 잠시 망설이다 문지기와 함께 담배를 피운다.

  여전히 뫼르소에게 엄마의 죽음은 객관적이다. 그래서 담백하다. 그런데 망설임을 포착할 수 있는 대목은 주관적이나 담배 연기처럼 쉬이 사라진다. 다시 건조하다. 그 건조함을 배가 시키기라도 한 듯 문지기는 엄마의 친구 분들이 밤샘을 하러 오신다고 말하며 필요한 일들을 하고 뫼르소와 마주보고 앉는다.
  이런 상황은 지루하고 졸립다. 그러니 뫼르소는 당연히 졸게 된다.

  그러다 뫼르소는 무언가 스치는 소리에 잠이 깬다. 방안의 흰빛이 눈부셨지만 모든 것들이 선명하게 보게 된다. 엄마 친구들이 소리없이 뫼르소를 바라보며 앉아 있는 것이다. 뫼르소에게 비친 친구분들의 모습이 유난히도 선명하게 각인된다. 앞치마를 밀어내는 볼록한 배, 주름살투성인 얼굴, 광채 없는 눈빛, 이가 빠진 쪼골쪼골한 입술을 하고 있는 친구 분들이 고개를 꾸벅거리고 앉아 있다.

  슬픔을 공유하기 위해 앉아 있는 그들의 모습이 왠지 지칠대로 지쳐 아무 생기가 없는 호들러F.Hodler(1853~1918)의 <삶에 지친 자들>을 떠오르게 한다.

 

 

 

 

 

 

 

 

 

Ferdinand Hodler, Die Lebensmüden 1892 

 

 


  수도자 같은 이들이 주름 가득, 근심 가득한 얼굴로 앉아 있다. 다섯 사람 중 네 사람은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있는데 가운데 한 사람은 그럴 힘조차 없어 축 늘어져 있다. 지침이 무엇인지 온 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엄마 친구분들도 긴 삶의 여정 속에서 여러 사연을 주름 속으로 은폐하다보니 지칠대로 지쳤을 것 같다. 양로원은 몸이 지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공간인데 그곳에서의 죽음은 그들을 또 한번 지치게 하는 사건일 수 있겠다.

  그런 분들이 졸고 있다 방금 깨어난 뫼르소에게 묘한 인상을 주게 된다. 그들이 자기를 심판하기 위해서 거기에 와 앉아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섬뜩했을 것이다. 심판하기 위해서는 심판받을 무엇인가가 필요하다. 뫼르소는 엄마 친구 분들의 모습을 선명하게 묘사하면서 그 끝에서 심판의 인상을 받았다는 것은 자기 안에 심판 받을 뭔가를 불분명하게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어쩌면 엄마의 죽음에 뒤따른 또 다른 죽음의 대상자를 찾아 온 심판자일 수도 있겠다.
  인생의 법칙 중 하나인 ‘콘트라파소(contrapasso)'는 지상에서 자신이 행한 악한 행동을 지옥에서 다시 그대로 자신이 당한다는 뜻이다. 심판자가 필요한 이유를 대변하는 개념이다. 뫼로소 자신이 모르는 심판받을 내용을 심판자는 알고 노려보고 있는 것이리라.

   단테 알리기에리Dante Alighieri(1265~1321)의 <신곡> 지옥편의 주제이기도 한 ’콘트라파소‘를 지금 자신의 앞에 광채 없이 앉아 있는 엄마의 친구 분들이 집행하려고 하는 것이라면 엄마의 죽음은 이제는 뫼르소에게 주관적 사건이 될 여지가 있다. 담담하게 서술할 수 없는 자신의 문제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뫼르소는 엄마의 죽음을 어떤 자세로 임하는지 좀 더 지켜보자.

 

 

 


 <구스타프 도레. 신곡, 지옥편, 제28곡>

 


똑똑히 보았고, 아직도 눈에 선한데,
머리 없는 한 몸뚱이가, 걸어가는
슬픈 망자의 무리에 뒤섞여,
잘린 머리의 머리칼을 움켜쥐고,
제등처럼 손에 들고 나아갔다.
그것이 우리를 보며 말하길 '오, 보라!'.

- 지옥편, 제28곡, 118~123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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