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꺼이 내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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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꺼이 내 편
  • 이정숙
  • 승인 2019.11.06 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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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랑말랑 애덜이야기]
제78화 샘물반 아이들(8) - 이정숙 / 구산초교 교사

 

초등학교 이학년쯤 되면 학교생활도 만만하고 초등시절이 안정되는 예쁜 시절이라고 한다. 그런 아이들의 이야기들을 듣다보면 웃음이 절로 난다. 기발하기도 하고, 때로는 난처해진 샘물을 변호해 주기도 한다.
 
점심시간이다. 식당 공간이 여의치 않은 학교는 교실에서 배식을 하게 된다. 식판도 겨우 드는 아이들이 배식당번을 꾸려 배식을 하려면 교실은 종종 전쟁터가 되고는 한다.
 
현지: 선생님, 저 이거 안 먹겠다는 데 성윤이가 많이 줘요.
샘물: 그래그래 많이 먹으라고 한건가보지. 좀 덜어줄게. 국물만 먹지 말고 자, 건더기도 잘 받아야지!
 
이때, 한쪽에서 준이가 샐러드를 배식을 하는 순간, 이를 받지 않으려고 영인이가 식판을 피해 버리는 바람에 샐러드가 땅바닥에 촥 떨어졌다. 배식을 위해 포도를 다섯 알씩 잘라 놓느라 샘물이 미처 보지도 못하는 순간에 아이들은 줄줄이 떨어진 밥과 샐러드를 밟으며 이미 교실 바닥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보다 못한 아이들이 샘물에게 알린다.
 
아이들1: 선생님, 동민이가 엎었어요.
아이2 : 아냐 성율이 잘못이야.
진희: 아냐 주는데 피하니까 그렇잖아.
성율: (운다)
동민: (얼음!)
 
그 와중에 식판에 밥 넣는 데로 국물이 묻었다고 상현이가 이른다.
 
상현: 국물이 밥으로 넘어왔어요. 으~ 이거 어떻게 먹어요. 안 먹을래요.
 
잘 들지도 않는 가위를 가지고 포도를 자르면서 싸우는 아이들을 진정시키고, 우는 아이, 불만 있는 아이들을 달래느라 샘물은 이미 폭발직전에 있었다. ‘왜 포도는 잘라서 주지. 통째로 주면 어떻게 아이들에게 주란 말야’ 하며 괜스리 듣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투덜거린다. 그 와중에 밥을 다 먹어가는 성웅이는 눈치 없이 화장실 갔다 와도 되냐고 한다 그러자 옆 짝꿍인 서연이가 “물먹고 와도 돼요?”하고 묻는다. 간식으로 나온 포도와 우유를 안 먹겠다며 우유를 던져놓고는 밥 빨리 먹고 나가 놀아도 되냐고 미수가 또 묻는다. 일일이 대꾸할 기운도 없어진 샘물이 털썩 자리에 앉아버렸다. 표정이 심상치 않은지 아이들은 저들끼리 배식을 하면서 밥을 더 주네 마네, 김치를 받네 마네 하며 여전히 옥신각신이다. 샘물은 엉망이 된 바닥을 더 이상 방치 할 수 없어, 휴지를 들고 교실 바닥에 부채살처럼 펼쳐진 샐러드와 찐덕한 밥이 밟히지 않도록 배식으로 늘어선 아이들 사이를 다니며 닦아냈다. 그러자 눈치 빠르게 샘물이 하는 일들을 봤다가 도움을 주곤 했던 인하와 서호가 휴지를 잽싸게 가지고 와서 샘물이 바닥을 정리하는 걸 돕는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휴지 좀 가져다 줄래?’하면 두리번 거리며 ‘저요? 뭐가요? 어디에 있어요?’ 하며 한참을 설명해야 하지만 인하와 서호는 빨리 찾아서 야무지게 다가온다. 그리고 휴지만 건네는 게 아니라 상황을 보고 샘물과 같이 닦기도 한다. 그러자 중환이가 밀대와 스프레이를 들고 짜잔 나타난다. 몇몇의 아이들이 몰려든다.
 
중환: 이걸루 닦는 거야.
현서: 줘봐 내가 할게.
마리: 나도 한번 할래.
용이: 공평하게 해야지.
지율: 그래 한번씩 해.
 
사건은 어느새 놀이가 된다. 귀여운 녀석들! 언제나 전쟁통이지만 그래도 서로 서로 도와주려는 마음들이 있어 샘물은 폭발했던 마음이 어느새 쑤욱 달아나고 말랑해 진다. 든든한 내편들이다!

편식이 심한 아이들은 채소를 안 먹겠다고 심통도 부리고 고기나 튀김 등이 나오면 서로 많이 먹겠다고 싸움이 나기도 한다. 샘물은 “남기지 않고 골고루 먹어야지!” 하고 늘 잔소리를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여빈이는 잘 먹지도 않으면서 간혹 남은 달달한 간식은 자기가 먹겠다며 다툰다. “채소를 많이 먹어야지. 반찬도 남기지 말고. 그래야 키도 크고 건강해지지” 하는 말을 또 하게 된다. 좋아하는 음식이 나올 때, 불만 없이 공평하게 정리 하기란 불가능할 때가 있다. 양보라는 카드는 언제나 착하고 정의로운 친구의 몫이 되기도 한다. 언제나처럼 상추쌈이 하나 가득 남아 샘물이 또 과장 연기를 한다.
 
샘물: 와~ 이 상추 쌈 고기랑 싸서 먹니까 아주 맛있는데? 옆에 비타민채소랑 먹으니까 더 맛있어. 한 장씩이라도 가져가 보면 어때?
현경: 저는 싫어요. 써요.
아이들: 나두 나두
 
샘물은 ‘오늘도 역시’ 하며 한숨을 쉬는데 일락이가 한소리 한다.
 
일락: 왜~ 이렇게 맛있는 데? 정말 고기가 엄청 엄청 맛있어져.
은채: 정말?
용이: 거짓말이야.
가은: 일락이는 거짓말 안 해.
중환: 나도 먹었는데 갑자기 튼튼해진 거 같애.
아이들: 정말? 반신반의 하면서 갑자기 너도 한 장씩 가져가 본다. 경쟁이 붙어 두 장씩 세장씩 획득한 아이들은 자랑스럽게 가져간다.
샘물: (조금씩 비어가는 상추 그릇을 보며) 어머나 이러다 모자르겠는데? 천천히 꼭꼭 씹어서 많이 머거어~
 
샘물은 내편이 되어 준 일락이를 보며 빙긋 웃어준다. 일락이는 그저 눈을 똥그랗게 뜨고 멀뚱히 쳐보기만 한다. 눈을 찡긋해주자 수줍게 웃으며 저만치 가버린다.
 
샘물은 요즘 화장실로 몰려다니며 카톡으로 ‘절교’를 보내고 ‘왕따’ 라는 말을 서슴지 않게 하는 6학년 모습을 방불케 하는 몇몇 여자 아이들 때문에 신경이 날카롭다. 쉬는 시간도 단속하고 카톡도 못하게 하고 수업시간에 늦게 오거나 점심시간에 몰려다니는 아이들을 일일이 감시하고 통제하느라 형사가 된 기분이 된다. 부모님들까지 찾아오고 울고불고 매일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자 샘물이 아이들에게 여러 번 다짐을 했었나보다. 어느 날 장원이가 “이거 어디다가 붙여 놓을까요?” 하며 장난감 통에 넣어둔 이면지에 뭔가를 잔뜩 써 가지고선 샘물에게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샘물은 평소 말도 없고 말을 건네면 웃거나 빤히 쳐다보기만 했던 장원이가 무얼 주나 싶어 읽어 보았다.
 
‘교실규칙 - 1. 떠들지 않기, 2. 뛰지 않기, 3. 친구가 실(싫)어하는 말 쓰지 않기, 4. 선생님 하신 말 잘 듣기, 5. 수업시간에 연필깍지 않기, 공뜅기지 않기 약속해요!’
 
장원이는 샘물이 심각해지는 게 아이들이 말을 잘 듣지 않아서라고 생각했나보다. 그래서 평소 샘물과 만든 규칙과 샘물이 곤란해 한 장면을 떠올리며 나름대로 자기네들이 말을 잘 듣기 위해 지켜야할 일들을 적어 놓은 것이었다. 장원이는 또래 친구들 보다 조금 어리고 늦된 친구다. 학습활동도 늘 뒤져서 제시간에 끝내는 법이 없다. 종이가 그 손에 들어가면 순식간에 걸레 같은 모습이 된다. 종이를 접을 때에도 끝과 끝이 잘 만나도록 반을 접지 못해 늘 삐뚤빼뚤이다. 가위질을 잘 못해 오린 모양들이 쥐뜯어 먹은 톱니모양이 되기 일쑤다. 하지만 늘 해맑게 잘 웃고 친구들에게 양보도 잘하는 사랑스런 친구다. 그런 장원이가 이렇게 정리를 해왔다. 표정이 좋지 못한 샘물을 도와주려는 장원이의 마음이 훅 하고 다가왔다. 장원이 덕에 샘물은 미소가 절로 나왔다. 마음이 말랑말랑해 졌다.
 
샘물은 가끔 그림책을 읽어준다. 오늘은 ‘프레드릭’을 읽어주며 주인공처럼 흉내를 내 보았다. 그림책은 그저 이야기만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림으로 정말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래서 그림도 자세히 보게 해 준다. 아이들은 세밀한 것까지 찾아낸다. 그림에 있는 표정의 변화도 어김없이 찾아낸다.
 
샘물: 자, 프레드릭 처럼 눈을 감고, 햇볕을 쪼여요. 따뜻해지지요?
아이들: 네.(눈을 감는다)
동민: 아뇨, 난 추운데요. (날씨가 무척 더운 날인데....)
샘물: 그으래? 어쩌지?
진하: 아니요 저는 따뜻해져요.
샘물: 어쩜, 그렇구나!
아이들: 나도, 나도.
 
매 순간마다 지나치게(?) 정직하거나 반항적인 친구들 덕분에 샘물은 영혼 없는 대답들로부터 좀 더 진정성을 확인하게 된다. 습관적인 ‘예’는 반항적인 ‘아니요’를 뚫고 좀 더 단단해진 ‘예’가 되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샘물은 반항적인 동민이의 반응에 귀 기울인다. 또 그 대답을 넘어서는 진하를 기다린다. 그리고 언제나 샘물 마음을 이해해 주려는 아이들 마음에 기대본다. 샘물편이 기꺼이 되어주려는 아이들 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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