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향을 찾는 바닷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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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향을 찾는 바닷물
  • 조수현
  • 승인 2019.11.07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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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나의 시 마을]
본향을 찾는 바닷물 - 조수현

1970년대 말 굴업분교
 
본향을 찾는 바닷물
                                 - 조수현



문갑도 앞바다에서 태풍으로 행정선이 뒤집혀 두 사람이 실종되었다.
두 사람은 문갑도 교장선생님과 본청 과장님이시다. 그 행정선은 굴업도에 들어갈 때 내가 타고 다니는 배다.
 
해양경찰 아저씨가 우리 학교 운동장에 올라와 서성거린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두 사람은 매트리스형 구명대를 좌•우로 붙잡고 공포와 졸음을 이겨내며 바닷물에 떠 다녔다고 한다.
 
“바닷물 줄기는 12시간이면 제자리로 옵니다. 그러면 문갑도에서 기다려야지요” “지리적으로 찾기 쉬운 위치라서…” 짧은 문답이 오가는 사이 찾았다고 한다.
 
과장님은 학교 다닐 때 수영 선수여서 살아났는데 교장선생님은 혼이 나가 육 개월 후 사망하였다. 과장님은 몇 년 후 본청 청장님이 되었고 정년까지 강건하였다.
 
서해 바다 작은 섬 굴업도 일천 구백 팔십년 어느 봄날, 그 후로도 시퍼렇게 출렁인다.
 



70년대 말 굴업도 섬마을 분교로 부부 교사가 발령이 났다. 학교 분실은 개인 소유여서 개교 이년 만에 주인에게 돌아가고 마을 주민들이 교실 한 동을 합심으로 짓게 된다. 연세 많은신 어르신들이 축도하고 마을에서 밥과 술을 준비하고 섬마을 선생님도 동네 닭 한 마리를 사서 치룬 낙성식은 결코 초라하지 않았고 이 섬마을에서 송진냄새, 흙냄새를 맡으며 부부교사의 마음은 넉넉했다.

하지만 바다는 잠잠하기만 한 것이 아니어서 뭍으로 수학 여행길에 오른 학생들이 제 때에 맞춰 돌아오지 못하기도 하고 위 시에서 보는 바와 같이 갑자기 바람이 불어 행정선이 뒤집혀 사고가 나기도 한다. 몸을 크게 상하지 않았는데 얼마나 놀랐으면 교장 선생님은 혼이 나가 죽음에 이르렀을까?
 
물결이 사나운 바다에서 구명대 하나에 의지해 사투를 넘나드는 사람의 형상이 그려지니 그동안 떠올리던 별이 총총한 바다,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섬마을 선생님의 이미지보다, 파도가 시퍼렇게 출렁이는 무서운 낙도가 떠오른다. ‘날씨 변화만큼 굴곡이 심한 삶이 상존하는 곳이 섬마을’이구나! 라는 생각도 갖게 된다.
 
하지만 섬마을 선생님은 직접 학교 분실을 지은 그 곳에서, 그곳의 일들을 노래로 짓거나 시로도 지으셨다. 밤바다만큼이나 거칠고 황량한 곳이지만 “공부방이 따로 있고 자취방도 따로 있고 무엇보다 학교 변소간이 서•너개 있어서 다행이었다”고 술회하시는 선생님은 작은 섬마을의 호젓한 풍경을 잘 그려내신다. 겨울, 이른 아침에 네 똥 내 똥이 꽁꽁 얼어 층층이 탑을 쌓은 변소간을 나오다 변을 보고 허리띠를 매만지며 산에서 내려오는 마을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였다니 이 얼마나 외딴 섬자락의 정경인가.
 
아이들이 뭍으로 처음 수학여행 길에 올랐을 때의 일, 형의 친구들이 섬으로 놀러왔을 때 동네분이 가져온 구렁이 이야기, 그 구렁이가 어머니 제삿날 잠을 자던 그 분의 다리를 감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구불구불 서늘하게 전해 주시는 섬마을 선생님……
 
일천 구백 팔십년, 그 후로도 시퍼렇게 출렁이는 서해 바다 작은 섬이지만 선생님은 이제 그 시절을 부드러운 바닷물로 바라보신다. 바닷물은 언제나 제자리로 돌아오므로…….
 
시인 정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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