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십자가 황경한'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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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십자가 황경한'을 아시나요?
  • 이창희 시민기자
  • 승인 2019.11.13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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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희의 한국 산수풍물]
- 추자도 성지

       추자도 '나바론 절벽'이 아름다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추자면에 속한 섬. 상추자도와 하추자도 2개 섬이 있으며, 두 섬 사이는 다리로 연결하였다. 상추자도의 면적은 1.3 ㎢, 하추자도의 면적은 4.15 ㎢이며, 면사무소는 상추자도에, 관내 하나뿐인 중학교는 하추자도에 위치한다. 추자면 인구의 거의 대부분이 이 두 섬에 거주한다. 인구는 1991년 4,708명에서 2016년 1,906명으로 59.5% 감소했다
 
부속 유인도서로 횡간도와 추포도가 있다. 두 섬의 거주민을 다 합쳐도 20명 남짓인 작은 섬으로 가파른 지형탓에 주민들이 모노레일을 이용해 섬을 오르내린다. 인구감소로 추포교습소는 1983년, 횡간분교는 1991년 폐교되어 추자초등학교로 통합되었다. 둘 중에선 태양광 발전소가 있는 횡간도가 그나마 좀 구색을 갖추었다. 추포도에는 현재 단 1가구만이 거주하며, 낚시꾼들을 대상으로 한 민박업으로 생계를 유지한다고 한다.
  
고려시대에는 후풍도로 불렸으며, 제주도와 전라도를 잇는 뱃길의 중간 기착지 역할을 하였다. 고려 말 목호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 제주도로 향했던 최영도 풍랑을 피하기 위해 추자도에 잠시 기착하였고, 이 때 추자도 주민들에게 선진 어업기술을 전수해주었다. 주민들은 사당을 세워 최영 장군의 은덕을 기렸으며 그 사당은 현재까지도 남아있다 (제주도 기념물 제11호).
 
구한말에는 전라남도 영암군, 완도군 등에 귀속되기도 하였으나 1914년 제주도에 편입된 이후 2019년 현재까지 쭉 제주도 소속이다. 그러나 거리상 제주도보다는 전라도에 더 가깝기 때문에 전라도 문화권으로 분류되며 방언 역시 서남 방언이 널리 사용되고 있다. 지형도 유일하게 제주지역 중에서는 현무암 지형이 아니기도 하다.
 
선박편의 경우 기상 여건 때문에 결항이 잦은 편이라고 한다. 그래서 추자도 주민들은 풍랑주의보에 상관없이 운항이 가능하고, 보다 많은 승객과 화물을 한번에 운반할 수 있는 대형여객선 투입을 계속 요구해 왔다. 추자도로 들어가는 선박편은 제주-상추자-해남 우수영 항로의 퀸스타2호(450톤급), 제주-하추자(신양항)-완도 항로로 운항하는 한일고속의 레드펄호(3천톤급)가 각각 일 1회씩 운항한다.
 
퀸스타2호는 제주항에서 1시간, 우수영항에서는 1시간 30분이 소요되며, 추자도로 가장 빠르게 갈수있는 선박이다. 레드펄호는 2015년 3월 22일에 선령 만료로 완전히 퇴역한 한일카훼리3호(600톤급)를 대체하는 대형 선박으로 2015년 6월 19일부터 운항을 시작해 추자도 지역의 최대 현안을 해결하는 듯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은 2015년 6월 23일에 신양항에서 중간 승.하선하고 완도로 출발하던 레드펄호가 암초에 좌초되는 사고가 일어나 운항이 중단되었다. 현재는 다시 운항중이다.
 
상추자도와, 하추자도를 도는 버스가 있다. 추자항과 신양항을 종점으로 1시간마다 탈 수 있으며, 특별한 경우가 없을 시에는 정시에 추자항에서 출발한다. 요금은 어린이 400원, 청소년 600원, 성인 1000원이며, 버스카드 사용시 50원이 할인된다. 제주도의 버스처럼 버스내에서 와이파이를 사용가능하다.
 


추자도는 과거 서해바다에 형성되었던 조기 어장이 남하하여 현재는 추자도 인근에 어장이 형성된다. 굴비로 유명한 영광군도 현재는 추자도 인근에서 조기를 잡아 굴비를 만들고 있는 실정. 추자도참굴비를 섬 특산물로 밀고 있으며, 2008년부터 매년 7월에 참굴비대축제를 열고 있다.
 
추자도 출신의 유명인으로는 축구선수 지동원이 유명하다. 그 외에 축구선수 이정협의 부친이 추자도 태생이어서 2015년 AFC 아시안컵 당시에는 추자도 곳곳에 이정협의 선전을 기원하는 현수막이 내걸렸다고 한다.
 
기상특보가 2015년 12월 28일부터 제주도 본섬과는 별도로 운영된다. 추자도는 특이하게 황씨와 오씨끼리 결혼을 하지 않는 풍습이 있다. 배경이 좀 복잡한데, 황사영 백서 사건 당시 황사영의 아내 정 마리아는 제주도로, 2살배기 아들 황경한은 추자도로 유배를 갔다.
 
황경한은 역적의 아들임에도 아직 2살이었기 때문에 사형에 처하지 않는 대신 평생 노비로 살도록 하였는데, 하나 남은 혈육을 평생 노비로 살게 할 수 없어서 호송관원을 매수하여 황경한은 유배 도중 죽어서 수장한 것으로 처리하고, 대신 포구의 바위에 두고 갔다.
 
마침 포구 근처의 오씨 성을 쓰는 어부가 황경한을 거두어 길렀으며, 황경한은 평범한 어부로 살다가 생을 마쳤고 오늘날까지 그 후손들이 추자도에 살고 있다. 어부 오씨와 황경한이 사실상 친부자 사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그 집안끼리도 결혼하지 않는 것이다.
 
황경한과 남겨질 때 입던 배냇저고리의 동정에 이름과 생년월일이 적혀있어 이 사연이 알려졌지만, 그 배냇저고리는 1965년 황경한의 집이 화재로 타버리는 바람에 소실되었다고 한다.
 
종교시설로는 가톨릭 성당 1개소, 개신교 교회 4개소가 있는데, 교회는 4곳 모두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교단 소속이다. 즉 추자도 주민이 개신교 신앙생활을 한다면 100% 예장통합 신자라는 뜻이다.

추자도의 아름다운 풍광을 꼽는다면, 하추자도의 눈물의 십자가와 상추자도의 나바론 절벽을 꼽을 수 있다.
 
그리고 구글 지도의 스트리트 뷰는 제주특별자치도에서 비양도와 함께 유일하게 서비스하지 않는 지역이다. 그러나 비양도는 자동차가 워낙 협소해져서 갈 수 없는 유인도로 분류된다.
 

 

 


시민기자 이창희 lee9024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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