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락방에 아기 재우고, 텅 빈 객석 보며 홀로 연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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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에 아기 재우고, 텅 빈 객석 보며 홀로 연습해
  • 이병기
  • 승인 2009.12.22 18: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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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극장 돌체 박상숙 대표의 '뚝심'

작은극장 돌체에 걸려있는 마임 공연 사진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마임이스트. 이전까지 영화와 CF, 연극에서 활동했던 박상숙(51)씨가 미래의 남편 최규호(52)씨의 마임 공연에 끌렸던 것이 운명의 시작이었다. 그이는 일주일 동안 매일 최규호씨의 공연장을 찾아갔고, 이를 눈여겨보던 최씨와 인연을 맺어 1979년 인천의 돌체소극장 창립에 함께했다.

"연극은 한 편을 만들기 위해 대본도 있어야 하고 복잡한 면이 있어요. 그러나 마임은 자신의 시각으로 사물이나 형상을 본다는 점, 주변사람이 아닌 관객에게 객관적으로 평가받는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죠. 지금도 그렇지만 마임의 가장 큰 장점은 자신의 철학과 문학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몸짓으로 관객과 교류하면 어느새 박수 소리가 울려퍼지죠."

박상숙씨는 최씨가 군 복무를 마친 1983년, 정식으로 돌체소극장을 재개관하고 1년 뒤 그와 결혼식을 치렀다. 그들이 소극장을 인수할 당시는 돌체소극장 초대 공동대표였던 유용호씨가 "3개월만 버티면 천재다"고 말할 정도로 열악한 형편이었다. 그러나 벌써 30주년을 맞아 인천의 대표적인 소극장으로 인정받고 있다.

"초기엔 현실적인 문제로 너무 힘들었어요. 결혼해서 사글세방에 살다가 그도 형편이 안 돼 소극장 다락방으로 들어갔죠. 거기서 딸아이를 낳고…. 돌이켜보면 다시 그 상황이 돼도 할 것 같아요. 아이는 재워놓고 극장에 내려와 텅 빈 객석을 바라보며 관객이 있다고 생각하고 혼자 연습하곤 했으니까요. 아마 박상숙 류의 연기 파워가 그때 생겨나지 않았나 해요."

이런 그이의 뜨거운 열정은 오히려 주변 사람들에게 시기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아이까지 낳은 여자가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사람들은 수근거렸다. 심지어는 "마약을 하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들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뒤에서 하는 얘기도 나중에 들었죠. 사람 사이에 소통의 문제로 많이 힘들었어요. 한때는 연극협회와 화합을 못하고 십 수년간 돌체만으로 이끌어야 했던 시절도 있었죠. '이 다락방에서 10년 만에 탈출하지 못하면 그이나 나나 능력이 없는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내가 딛고 있는 세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감성, 공감대 형성이 예술가의 역량이라고 생각했죠."

시립극단 참여 제의 거절, 마임 교육으로 제자들 육성


박상숙 작은극장 돌체 대표그러던 차에 인천시에서 시립극단 참여 제의가 들어왔다. 어려운 형편에 매달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돈은 분명 큰 유혹이었다. 그러나 박씨는 "아직 우리는 완성되지 않았어. 시립극단은 안정적이지만 창조적이지 않아"라는 생각에 돌체소극장을 고집했다. 9년째 되던 해 한국마임페스티벌이 전국적으로 알려지고 최규호씨가 '뜨기' 시작했다.

"당시 서울랜드 거리페스티벌도 우리 팀에서 했어요. 제자들도 들어오고, 집도 새로 장만했죠. 여유가 있을 때 재테크를 했다면 지금 형편이 더 낳았을 텐데, 우린 투자라 생각하고 단원들을 교육했습니다. 부산과 대구 등 지방에서 유학도 오고, 한 10년간 하다 보니 마임에 대한 국가 정책도 서서히 변해갔지요."

마임이 조명과 음악 속에서 줄거리가 있는 공연이라면, 클라운마임은 빨간 코를 붙이거나 다양한 소도구를 이용해 야외에서도 즐길 수 있다는 차이점을 보인다. 어릿광대 모습의 클라운마임이스트를 보면 희극적이고 풍자적인 요소들이 관객들의 입가에 절로 웃음을 짓게 한다.

"최 선생(최규호씨)과 함께 출발하면서 무대에 서기보다는 연출이나 기획, 재정적 책임 부분에 더 신경을 썼어요. 그이가 잘 몰랐거든요. 내가 전체적인 커리큘럼을 만드는 것처럼 보였을지도 모르지만, 나에게 클라운마임은 지키고 싶었던 장르였어요."

아직도 박씨는 '잊혀지지 않고, 끝까지 향기가 남아 있는' 클래식한 공연을 해 보는 것이 소원이다. 1년에 1~2편은 공연을 해야 몸이 굳어지지 않기 때문에 해마다 꼭 공연을 펼친다. 공연 분야에서 영원히 남을 수 있는 작품을 하는 것이 그이의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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