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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지법 문유석 부장판사, 컬럼 통해 세월호 유가족을 위로하다

저서 <판사유감>을 통해 '판사'의 윤리를 성찰한 인천 법조인

14-08-26 01:28ㅣ 이희환 기자 (lhh40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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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인터넷판 캡쳐 화면

문유석 인천지방법원 부장판사가 <중앙일보>에 기고한 시론 '딸 잃은 아비가 스스로 죽게 할 순 없다'가 SNS상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세월호 참사 132일째, 고 김유민 양의 아버지 김영오 씨가 단식을 시작한 지 43일째 되는 8월 25일 SNS상에는 온통 김영오 씨에 대한 논란으로 뜨거웠다. 지난 23일 공개된 김유민 양 외삼촌의 "기저귀 한 번 갈아준 적 없지 않느냐."는 글이 퍼지면서 김영오 씨가 단식 투쟁을 할 자격이 있냐는 주장이 제기됐고, 그의 이력을 들춰 단식을 조롱하고 폄훼하는 글들이 SNS상에 광범위하게 유포됐다.

이런 상황에서 24일 공개돼 네티즌들 사이에서 빠르게 확산된 문유석 판사의 글은 잔잔한 반향을 일으켰다.  문 판사는 자신의 딸 아이가 4살 때 열 경기를 앓았던 경험으로부터 글을 시작했다. 자식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신앙을 가져보지도 않으면서 절대자를 찾았던 경험을 떠올리며, '
단장(斷腸)의 슬픔'이라는 말의 유래가 된 불교 우화도 소개한다. 

이어 문 판사는 자식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그때의 공포스런 기억을 "유민이 아버지의 움푹 파여 뼈만 남은 다리와 나뭇가지처럼 앙상한 팔 사진을 보며 다시 떠올렸다"고 토로한다. "딸아이가 시퍼런 물속에 잠겨 가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아비의 심정은 차마 상상할 수조차 없다."며 김영오 씨의 고통에 깊은 공감을 표명한다.

그런데 작금 우리사회는 어떠한가? 문 판사는 "
넉 달 전 우리 모두는 한마음이었다. 아이를 잃은 부모의 마음이었다. 그때 무슨 여야의 구분이 있었을까. 모두가 같이 울었고 같이 분노했다. 그런데 지금 누구는 스스로 죽어가고 있고, 누구는 그 옆에 와서 빨리 죽어버리라고 저주하고 있다. 왜 우리는 여기까지 왔을까."라고 우리사회에 침중하게 물었다. 

이어 문 판사는
 “대립 당사자의 분쟁을 매일 보는 판사로서 어느 한쪽만 옳은 경우는 아직 보지 못했다”면서 “이 지경까지 온 데에는 모두의 책임이 있다. 공격이 공격을 부르고, 불신이 불신을 낳다 보면 가족도 이웃도 원수가 된다”며 작금의 우리사회의 분열상을 비판했다.

“원칙을 생명으로 하는 법도 꼭 필요한 경우에는 예외를 인정한다”면서 “재판에서 분쟁을 해결하는 실마리는 상호 비난을 자제하고 본질적인 문제로 돌아가는 것”이라면서 “넉 달 전 우리 모두는 한마음으로 이런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원인을 밝히자고 동의했다. 그런데 한낱 원인을 밝히는 ‘방법’에 대한 세세한 의견 차이 때문에 한 아비가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다”고 안타까워 했다. 

문 판사는 작금의 세월호 특별법을 둘러싼 갈등국면에 대해서도 해법을 제시했다. “넉 달 전 모두가 공유했던 마음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분명히 서로 대화할 여지가 있을 것”이라며 “모든 비본질적인 논쟁은 치우고, 한 가지 질문에 집중하자”고 제안했다.

문 판사는 “딸아이를 그렇게 잃은 아비가 스스로 죽어가는 것을 무심히 같이 지켜보기만 한 후 이 사회는 더 이상 ‘사회’로서 존립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컬럼을 마무리했다.

세월호 특별법과 관련해 진상조사위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둘러싸고 새누리당이 법체계를 흔들 수 있다며 특별검사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현직 부장판사인 문 판사가 
“‘원칙’을 훼손할 수 없다는 이야기도 나온다."며 그러나 “원칙을 생명으로 하는 법도 꼭 필요한 경우에는 예외를 인정한다”고 밝힌 것은 정부 여당의 입장 변호를 우회적으로 촉구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글을 접한 많은 네티즌들이은 문 판사의 생각에 공감을 표했다. 현직 부장판사로서 감성적으로 김영오 씨의 글에 공감과 함께 해법을 제시한 것에 대해 네티즌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문유석 판사의 저서 <판사유감> *21세기북스 제공

인천지방법원 부장판사로 재직하고 있는 문 판사는 얼마 전 <판사유감>(21세기북스)를 출간하기도 했다. '현직 부장판사가 말하는 법과 사람 그리고 정의'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저자 문유석 판사 법관 게시판과 언론 등을 통해 지난 10여 년간 국민과 법정 가운데서 균형 있는 시각으로 써온 글들을 엮은 책이다. 
문유석 판사는 이 책에서 판사 일을 하면서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오판으로 남의 인생을 망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남에게 폐 안 끼치고 살겠다는 자신감이 얼마나 헛된 망상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다고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갈수록 재판을 하는 것이 두렵기만 합니다. 한 인간으로서는 자신의 부족함을 잘 알기에 감히 100퍼센트 확신할 수 있는 일은 어느 하나 없는데도, 맡은 소명은 주어진 증거의 테두리 내에서 판단하여 입증이 되었다고 판단하면 피하여 가지 말고 명확히 정의를 선언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무죄를 치열하게 주장하는 사건이라고 하여 재판 결과 유죄를 인정하면서 적당히 형량을 낮추어 타협할 수는 없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두렵습니다. 오판으로 누군가의 삶을 지옥으로 만드는 죄는 무간지옥에서 영원히 속죄할 수밖에 없는 것이겠지요. 늘 용서를 구하는 마음으로 법정에 임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_ ‘사람 목숨의 값’ 중에서 (90쪽)


법정에 대한 불신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는 이 때 현직 판사의 이와 같은 고백은 우리 국민들에게 신선하게 다가온다. 그의 책 제목이 ‘판사유감’은 판사로서 재판을 하며 느낀 것들이 있다, 판사에게도 어쩔 수 없이 인간으로서 느껴지는 감정이 있다는 의미의 ‘判事有感’인 동시에 우리 사회의 국민들이 판사에 대하여 느끼는 아쉬움과 불만을 잘 알기에 이를 고민하고 반성한다는 뜻에서, 즉 판사에 대한 유감의 의미을 담은 ‘判事遺憾’이라는 두 가지의 의미를 담고 있다. 스스로의 성찰적 경험으로 '판사'라는 제도의 윤리를 성찰하는 책이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알고자 4달 넘게 광화문과 청와대 앞을 헤매고 있는 유가족들의 고통과 40일을 넘겨가면서까지 단식을 하면서 제대로 된 특별법을 호소하고 있는 유가족들에게 문 판사의 컬럼 '딸 잃은 아비가 스스로 죽게 할 순 없다'는 참으로 많은 위로가 되는 글이다. 이런 판사가 인천지방법원에 근무하고 있다니 참으로 반갑다. 



문유석 판사 시론 '딸 잃은 아비가 스스로 죽게 할 순 없다' 전문

[시론] 딸 잃은 아비가 스스로 죽게 할 순 없다
[중앙일보] 입력 2014.08.23 00:16 / 수정 2014.08.25 08:58
문유석
인천지방법원 부장판사
딸아이가 네 살 때다. 열이 오르는데 해열제를 먹여도 내리지 않았다. 처음엔 그저 감기인 줄만 알았다. 그러다 아이 눈에 초점이 없어지고 말을 시켜도 알아듣지 못했다. 덜컥 겁이 나서 아이를 들쳐 업고 병원 응급실로 달려갔다. 체온은 어느새 40도를 넘나들고 있었다. 의사 선생은 흔한 열 경기라고 했지만 그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이는 큰 눈망울에 총기를 잃고 인형처럼 멍한 상태로 있었다. 귀에 대고 소리를 질러도 반응이 없고, 몸을 꼬집고 때려도 아무 반응 없이 입맛만 다셨다. 아내 앞에서 겉으론 침착한 척 하고 있었지만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왔다. 태어나서 이보다 무서운 순간은 없었다. 병원의 처치 방법도 물찜질뿐이었다. 애 온몸을 닦고 또 닦았다. 신앙을 가져본 적이 없는 주제에 누구일지 모를 절대자에게 하염없이 기원했다. 제발 살려만 주십사고. 

 열이 내리고도 한참을 반응 없이 자던 딸애는 갑자기 거짓말처럼 눈을 깜박이며 엄마, 아빠를 찾았다. 아이가 태어난 순간보다 더 기뻤다. 호두껍데기 속 엄지공주의 세계 같은 혼자만의 세계에서 걸어 나와 엄마, 아빠에게 돌아와 준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오며 떠올린 이야기가 있다. 인도의 한 왕이 숲으로 사냥을 갔다가 예쁜 아기 사슴을 발견하고는 활을 쏴 명중시켰다. 그런데 활을 맞지도 않은 어미 사슴이 죽은 아기 사슴 옆에서 슬피 울다가 갑자기 쓰러져 죽었다. 이상하게 생각한 왕이 어미 사슴의 배를 갈라보니 창자가 조각조각 잘라져 있었다. 왕은 모녀 사슴을 고이 묻어주고 다시는 사냥을 하지 않았다. 단장(斷腸)의 슬픔이라는 말의 유래가 된 불교 우화다. 어릴 때 읽은 이야기다. 이 이야기의 뜻도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은 하나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그 날에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이때 기억을 유민이 아버지의 움푹 파여 뼈만 남은 다리와 나뭇가지처럼 앙상한 팔 사진을 보며 다시 떠올렸다. 딸아이가 시퍼런 물속에 잠겨 가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아비의 심정은 차마 상상할 수조차 없다. 우리 조국의 수도 한가운데서 그 아비가 하루하루 죽음을 향하여 가고 있는 것을 온 국민이 지켜보아 왔다. 넉 달 전 우리 모두는 한마음이었다. 아이를 잃은 부모의 마음이었다. 그때 무슨 여야의 구분이 있었을까. 모두가 같이 울었고 같이 분노했다. 그런데 지금 누구는 스스로 죽어가고 있고, 누구는 그 옆에 와서 빨리 죽어버리라고 저주하고 있다. 왜 우리는 여기까지 왔을까. 대립 당사자의 분쟁을 매일 보는 판사로서 어느 한쪽만 옳은 경우는 아직 보지 못했다. 이 지경까지 온 데에는 모두의 책임이 있다. 공격이 공격을 부르고, 불신이 불신을 낳다 보면 가족도 이웃도 원수가 된다.

 재판에서 분쟁을 해결하는 실마리는 상호 비난을 자제하고 본질적인 문제로 돌아가는 것이다. 넉 달 전 우리 모두는 한마음으로 이런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원인을 밝히자고 동의했다. 그런데 한낱 원인을 밝히는 ‘방법’에 대한 세세한 의견 차이 때문에 한 아비가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다. ‘원칙’을 훼손할 수 없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러나 같은 것을 같게, 다른 것을 다르게 하는 것이 정의다. 원칙을 생명으로 하는 법도 꼭 필요한 경우에는 예외를 인정한다.

 광주지방법원은 이 사건 재판을 앞두고 이례적으로 전문가를 불러 심각한 충격 상태에 있는 유족들의 심리 상태를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도록 사전 교육을 받았다. 대법원은 긴급히 규칙을 개정하여 광주 재판을 안산지원에 생중계했다. 광주의 재판부는 생존 학생들의 증언을 듣기 위해 안산으로 찾아갔다. 담당 검사들은 학생들이 두려워하지 않도록 미리 학교를 찾아가 언니, 오빠처럼 친밀하게 절차를 설명해 주었다. 재판 후 유족 측 변호사는 학생들을 대신해 감사의 글을 SNS에 올렸다. 이런 노력의 이유는 이 사건이 ‘예외적인’ 사건이기 때문이다. 눈앞에서 자기 아이들이 산 채로 숨져 가는 것을 집단적으로 장시간 지켜봐야 했던 사건이다. 어느 나라의 법률가든 이런 경우 혹시나 모를 후속 비극의 방지를 최우선적 목표로 보고 예외적인 절차적 배려를 할 것이다.

 물론 예외적인 배려는 절차에 국한된 것이고, 결론은 원칙에서 벗어날 수 없다. 법관의 사명은 그 어떤 피고인에게도 자신을 방어할 권리를 보장해 주는 것이다. 국민과 함께 공분하는 것을 경계하고, 엄정하게 증거로 입증되는 사실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그 결과 국민의 분노가 법원을 불태운다 해도 말이다. 분노가 결론의 엄정함을 좌우한다면 이는 문명국가로서의 이 나라의 침몰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넉 달 전 모두가 공유했던 마음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분명히 서로 대화할 여지가 있을 것이다. 모든 비본질적인 논쟁은 치우고, 한 가지 질문에 집중하자. 딸아이를 그렇게 잃은 아비가 스스로 죽어가는 것을 무심히 같이 지켜보기만 한 후 이 사회는 더 이상 ‘사회’로서 존립할 수 있을까. 

문유석 인천지방법원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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