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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로 평화시장이 활성화되기를"

[문화지대사람들] 숭의평화시장 창작공간 민후남 대표를 만나다

15-12-31 13:26ㅣ 전슬기 기자 (suphia87@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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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남구를 대표하기도 했을 만큼 번영했던 숭의동 평화시장은 이제 예전의 모습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인구 감소, 소비 생활의 변화를 겪으면서 평화시장을 찾는 사람들도 크게 줄어들었다. 이러한 숭의동 평화시장을 살리기 위해서 문화예술공간이 들어섰다. 지난 8월 23일, 창작공간 개소식이 열렸고 치열한 입주 경쟁률을 뚫고 선정된 6개 팀이 들어섰다. 세밑, 평화시장 입주와 함께 올 하반기를 그 누구보다 '시장과 문화'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활동해 왔을 이들의 올 한해와 새해 계획이 궁금해졌다.

숭의평화시장 창작공간 대표이면서 꽃차 공간 '마실'을 운영하는 민후남 대표를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민 대표는 감기에 좋다는 생강나무차를 끓여주었다. 기자는 평소 기관지가 안 좋아서 편도선이 자주 붓곤 했고 최근에도 아주 약하게나마 따끔거리던 상황이었다. 생강나무차 같은 따뜻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Q : 어떻게 입주를 하게 되었나.
A : 남구에서 젊은 청년 작가 입주 모집을 했다. 근데 나는 나이가 많지 않나, 인터뷰를 할 때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 아름답게 늙는다는 것, 열정을 가지고 살면 그것이 바로 젊음이다. 젊은 할머니로서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Q : 입주 단체들은 어떻게 되는가?
A : 여기에 전부 단체들이 입주를 했다. 술 빚는 마을이 들어왔고, 나머지는 그림을 그리는 작가들이다. 필리핀 커뮤니티도 있다. 모두 조합을 이루어서 평화시장을 활성시키려고 한다. 평화시장이 옛날에는 큰 시장이었지만 지금은 많이 기능을 상실한 상태다. 이 곳 건물들은 구에서 다 리모델링을 했다. 입주 목적이 평화시장 활성화다.

Q : 그동안 진행과정은?
A : 활성화하려고 들어왔지만 힘들었던 부분이 있었다. 시장 활성화라면 일반적으로 상권이 활성화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상권이 활성화되려면 시장이 움직임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3월에 공고를 하고 선정이 된 후 8월에 오픈을 했는데, 건물만 리모델링을 한 상태였지 갖추어진 건 10월이었다. 상인들도 그렇고, 구에서도 말이 많아서 말씀을 드렸다. 우리는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로 시장을 활성화시키고, 그 가치로 인해서 시장이 움직임이 보이면 여기 구경도 오고, 또 그러다보면 거기 무언가 하고 있다 보니 매매도 되지 않겠냐고 말씀을 드렸다. 그러니 조금씩 움직임이 보이더라. 지난 6일 진행한 등(랜턴) 축제는 작가들이 직접 나서서 등을 달고, 전기를 달고 했던 거다. 그러면서 시장이 하나가 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상인회에서 활발한 느낌이 들어서 좋다고 했다.

Q : 상인들의 반응들은?
A : 처음에는 안 좋게 말씀을 하셨다. 왜 시끄럽게 하냐고. 운영본부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영화를 보여준다. 문화원에서 영화를 볼 수 있는 작업을 했고, 그러면서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 곳에서 영화를 본다는 것 자체가 어렵다. 시장에 젊은 사람들이 다닌 적이 없었다. 얼마 전 여기에서 태어나서 결혼한 분이 오셨는데, 여기서 평생을 살았는데도 생각하고 싶지가 않았더라고 했다. 생각만 하면 암울하다고. 근데 어느 날 여기를 지나가다가, 밝은 빛이 보이더라고 하더라. 세일즈맨인데, 영업하려고 온 것이 아니라 놀라서 들어온 거라고 했다. 변화가 보이진 않았는데 움직임이 환해보이더라고 했다. 이런 것이 우리가 의도한 것이다. 제대로 시작한 건 두 달 밖에 안 됐다. 구에서도 그렇고 뭔가 빨리 내놓길 바라는데, 우리들은 서서히 움직이기를 원한다. 시장 간판 도색 작업, 간판대 지원금을 얻었는데, 새해가 되면 시작할 예정이다. 

Q : 창작공간의 시작은 어떠했는가?
A : 우리가 모인 것이 아니라 구청에서 선정한 것이다. 지원자가 어마어마했다. 개인이 입주한 건 나 혼자 뿐이다. 의도한 건 없었다. 각자 할 일을 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구에서는 나름대로 프로그램을 짰더라. 작가들과 모든 프로그램을 하고, 이번에 일을 같이 해 봤더니 팀워크가 좋았다. 그러다보니 대표가 필요했고, 나이순으로 대표가 된 거다.

Q : 처음에 들어온다고 했을 때 상인들의 반응은?
A : 싸늘했다. 여기 와서 뭐하겠냐고. 그러면서도 지켜보시더라. 우리 평화시장 내 교육원에도 수강생이 많다. 일요일날 쉬고 오면 여기에 손자국이 엄청나게 있다. 처음에는 무엇인가 했다. 나중에 그러시더라. 일요일에 아무도 없으니까, 손자국으로 찍어보시면서 이건 무엇인가, 저건 무엇인가 그러셨다고. 장사하시는 분들을 만나면 반가워하신다. 평생 못 보시던 분들이 여기에 우르르 왔다가 우르르 간다고.





민 대표의 공간 '마실'에 진열되어 있는 차들과 차기들.


Q : 암암리에 오시는 분들도 계시지 않나.
A : 그렇다. 수강생들도 많이 늘었다. 수강생들이 많이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여기에 구경 오는 분들이 많다.

Q : 지리적 요건이 썩 좋지만은 않은데, 극복을 했다고 봐야 하나?
A : 극복까진 아니지만 무언가를 할 자신이 생겼다. 처음에는 무엇을 해야 하나 이야기를 했다. 행사를 한 번 하고 나니까 반응도 그렇고, 우리도 상인회 소속인 것 같았다. 이전엔 이방인 같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Q : 기존에 계셨던 분들이 있었기 때문인가.
A : 그렇다. 여기 작가들은 또한 다들 어리다. 활동들을 열심히 하고 있으며, 경쟁률을 뚫고 들어온 것이기 때문에 스펙이 꽤 높다. 열심히 하려는 작가들만 뽑았다.

Q : 평화시장 창작공간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다른 일들을 많이 하셨을 것 같다.
A : 아직 두 달밖에 안 됐다. 이제는 어디 나가면 평화시장 마실이라고 밝한다. 택시를 타고 ‘평화시장 가주세요’ 그러면, 평화시장이 어딘지도 모르는 택시기사님도 계셨다. 일부러 ‘이렇게 가주세요’ 부탁하면 그제서야 ‘여기가 평화시장이에요?’하신다. 지금 축구전용경기장 주변만 남아있고 나머진 다 개발이 됐다. 인사동도 허름한 건물이지만 이제는 서울에서 없으면 안 될 곳이지 않나. 남구는 인프라가 너무 없다. 재개발을 하지 않고 여기를 살려보자는 것이다. 이게 마음에 와 닿았다.

Q : 이 곳에 대한 열정도 있을 것 같다.
A : 여기 최대 만기가 3년이다. 60까지 하고 그만두면 되겠지 하고 왔다. 그런데 일을 너무 열심히 할 것 같은 거다. 여기서 20~30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청년이라고 해도 되지 않나. 여기 와서 자신감도 생겼고, 이렇게 내 일을 하던 거와 다른 작가들, 팀과 다른 일을 기획해서 만들어내는 것에 대해 의욕이 생겼다. 출퇴근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닌데, 늦어지면 마음이 급해지는 거다. 그러면 택시 타고 온다. 뭔가 목적을 두고 온 건 아닌데, 내 일이 생긴 거다. 평화시장에 무언가를 해 줘야 하는 것 같은 기분.

Q : 작가들은 어떤가.
A : 작가들도 많이 바뀌었다. 자기들 것만 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하나라고 생각한다. 옆 사람들 것도 도와준다.

Q : 여기 출신이라서 지원한 것인가(민 대표는 숭의동이 고향이라고 했다).
A : 출신인 것도 있고, 숭의 평화시장이라는 타이틀에 대해 자부심이 있었다. 숭의동에서 평생 살았다. 주안으로 이사 가서 6~7년 남짓 살았는데, 숭의동에 대해 좋은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오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Q : 결과적으로는 고향에서 하는 것인가.
A : 고향에서 모든 것을 하고 싶다.

Q : 다른 단체들에 비교하자면 여기만의 특징은?
A : 다른 곳은 예술가들이 입주하면 벽화를 그리지 않나. 우리도 페인팅 작가들이다. 건물 자체가 어둡다. 건물 안만 페인팅을 했는데, 개인 건물이라 밖은 페인팅이 안 된다. 페인팅을 하긴 하지만 벽화를 그리지는 않을 것이다. 간판도 없다 보니까 간판 만들어드리고, 의자 만들어드리고, 생선 말리는 가판대를 만들어 드리려고 한다. 상인들에게 실질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만들어드릴 것이다.

Q : 상인들을 설득하는 게 우선이었지 않나.
A : 설득하지는 않았다. 우리가 먼저 다가갔다. 여기 계시는 분들은 여기 사시는 분들이다, 무조건 반갑게 인사해라고 했다.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그러다 보니 마음을 여시더라.

Q : 공간을 뺏긴다고 생각했을 것 같기도 하다.
A : 뺏긴다기보다는 두고 보신 거다. 여기 상권을 방해하는 것은 아니냐고 반발을 하셨다. 근데 그게 아니었던 거다. 여기 와서 무언가를 배우고 가다가 뭐 하나 사 가고 그러니까.

Q : 대외적으로 같이 하는 단체는 있는가?
A : 아직은 없다. 평화시장만을 위해서 하고 있었는데, 내년에는 비영리단체법인을 만들 생각이다. 지금은 평화시장 일원으로 들어와 있는 상태다.

Q : 이 곳의 목표는?
A : 우각로 작가들, 목공예마을 작가들과 합쳐서, 남구에는 없는 문화예술촌을 만들어보려고 한다.

Q : 구체적인 계획은?
A : 비어있는 공간들이 있고, 작가들이나 공방하시는 분들이 물으러 온다. 하나둘씩 채워지다 보면 예술촌이 되는 거다. 크게 움직일 힘은 없지만, 움직이면서 서서히 변화를 바라는 거다.

Q : 그것을 기점으로 평화시장도 바뀌어가는 것인가?
A : 그렇다. 이 곳에 중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호텔이 또 들어온다고 하니까, 관광촌이 될 수도 있지 않겠나. 여러 가지 기획된 것은 많다.

Q : 단체별 각 설명을 부탁드린다.
A : 맥 아티스트라고, 페인팅을 하는 여자 한 명 남자 두 명 작가가 있다. 개인적으로 활동을 하다가, 행사를 하면 같이 모인다. 각자 개인전도 많이 한다. 콧수염이라고, 서울과 일산이 주거지인 작가들이 있는데 쇼핑백에 그림을 그린다. 포토존도 만들고, 그걸 쓰고 사진도 찍는데 일본에서도 꽤 반향을 얻었다고 한다. 필리핀 커뮤니티도 있는데, 여기에 모여서 음식도 만들어먹는 장소다. 필리핀에 관심이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온다. 술 빚는 마을이라고, 전통주를 빚는 곳인데 올해 전국대회에서 3등 입상도 하시고 술 연구를 열심히 하신다. 여기는 꽃차 교육원이고, 행사가 있을 때 차 시음을 하게 해드린다. 단체적으로 운영본부도 있다.



'술 빚는 마을 작업실'

필리핀 커뮤니티


Q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A : 10월에 들어왔으니까 이제 시작이다. 우리가 들어오면서 떨어져있던 우각로, 목공예마을이 하나가 됐다. 일면식도 없었지만, 이제는 행사를 하면 와 주고 또 도와주러 간다. 할 수 있는 역할을 해 준다. 세 곳이 뭉치면 엄청난 시너지가 날 거다. 유명한 작가들이고 장르가 다양하다. 없는 것이 없다. 여기가 예술촌으로 발전되면, 인천에서 관광 투어를 할 수 있게 되지 않겠나.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숭의평화시장에 대한 민 대표의 열정과 마음을 여실히 느꼈다. 특히 숭의평화시장 부근이 고향이었음에도 생각만 하면 암울했었다던 그 세일즈맨의 이야기를 전해줄 때, 앞으로도 그 세일즈맨과 같은 사람들이 더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봤다. 경상도 출신인 기자 역시 그 세일즈맨처럼, 고향을 생각하면 편하지 않은 마음이 있다. 그 곳에서도 민 대표처럼 그 곳을 살리기 위한 노력이 있길 바랐다.

민 대표의 말처럼 창작공간은 이제 시작이다. 앞으로 창작공간이 어떤 활동을 하게 될지, 많은 기대를 품게 했던 인터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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