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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션으로서 인천 출신임을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2015년 인디 음악계에서 가장 활발했던 록 밴드 R4-19 인터뷰

16-01-03 07:32ㅣ 배영수 기자 (gigg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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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6인조 록 밴드 알포나인틴(R4-19). 사진 좌로부터 임근효(베이스), 강태민(키보드), 최재학(드럼), 정용성(기타), 김명식(보컬, 리더), 김범태(기타)
 
4.19 혁명을 의미하는 이름의 6인조 록 밴드 ‘알포나인틴(R4-19)’의 무대를 기자가 처음 봤던 것은 지난 2014년 송도 트라이볼에서 열린 ‘낭만인천-음악에 빠지다’ 공연을 통해서였다. 신포동의 음악 클럽인 ‘버텀라인’과 ‘글래스톤베리’, ‘흐르는물’ 세 곳이 3주간에 걸쳐 다양한 음악 장르에서 활동하는 숨은 뮤지션들이 인천을 찾아 공연하는 축제였는데, 특히 ‘글래스톤베리’ 측에서 섭외한 뮤지션들이 모두 인천 출신이어서 상당히 주목했던 기억이 있다.
 
당시 출연한 팀들은 현재 ‘인디 음악계의 메카’로 불리는 홍대에서도 공연을 많이 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올해 앨범 발매까지 했던 블랙 메디신과 알포나인틴은 인천을 벗어나 올해 인디 음악계에서도 소위 가장 ‘핫’한 밴드로서 손색없는 활약을 펼쳤다. 한 마디로 이 두 밴드가 ‘인천의 음악적 자랑’이 된 셈. 특히 알포나인틴의 경우 여러 인천 밴드들 중에서도 인천서 가장 많은 수의 공연을 진행해오며 인천 시민들과 함께 했고, 공연으로 얻은 수익을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쓰기도 하는 등 여러 모로 화제가 됐었다.
 
물론, 지난해 내놓은 음반 [HERO] 역시 주목을 끌었다. 음반이 발매된 지난해 4월 포털 사이트 [네이버]는 ‘이달의 추천 음악’으로 이들의 음반을 소개하기도 하면서 “세계 헤비메탈 시장에 내놓아도 전혀 부끄럽지 않을 완성도”라는 극찬을 하기도 했다. 2015년의 해가 지기 직전이었던 지난 30일, 기자는 밴드 알포나인틴과 우연히 연락이 닿을 수 있었고, 그렇게 나눈 여러 이야기들을 <인천in>에 풀어보기로 했다. 놀라웠던 건 멤버들 모두가 ‘음악을 하지 않을 때는 본업이 따로 있는 사람들’이었다는 것. 때문에 당시 저녁에 진행된 인터뷰는 퇴근을 미처 하지 못한 멤버들이 있었던 관계로 당일 '다행스럽게' ‘칼퇴근’을 했던 김명식(보컬, 리더), 김범태(기타) 두 명과 진행할 수 있었다.
 

- 어떤 밴드들에게나 다 있는 것이겠지만, 결성 스토리를 간략히 알려 달라.

김명식 : 사실 최근에 합류한 강태민(키보드)을 제외하면 20여 년 전부터 각각 서로 존재를 알면서 밴드를 하고 있었다. 난 고등학교 때 최재학(드럼)과 같이 활동했고, 김범태(기타)는 임근효(베이스)와 함께 고등학교 스쿨 밴드에서, 그리고 정용성(기타)는 다른 팀에 있었다. 그러다가 20대 초중반에 군입대 관계로 음악 생활을 중단했다가, 서른 넘어서 이 다섯 명이 다시 만났다. 그게 아마 한 4~5년여 전일 건데, 음악이 너무 하고 싶으니까 “우리 1년에 한번 정도, 예전에 갖고 있던 연주력 펼쳐서 한번 해 보자”는 얘기로 뭉쳤던 거다. 당시엔 가볍게 하자 한 거다.
 

- 가볍게 하자 한 것 치고 일이 많이 커졌네? (웃음)

김명식 : 그렇긴 하다.(웃음) 당시 팀 이름도 우리가 다시 모인 걸 기념하자는 의미로 ‘애니버셔리(Anniversary)’라고 지었었다. 당시엔 우리 창작곡이 없었고 해외 유명 밴드들 곡 커버해서 연주하는 게 전부였는데, 재미있게 활동하다 보니 공연도 생각보다는 더 자주 하게 되고, 그러면서 주변 분들이 좋은 평가를 해주시고 하다 보니 처음 취지보다 활동 영역이 더 넓어진 거다. 그러면서 “우리 곡을 만들자”는 얘기가 멤버들 사이에서 나왔고 그 과정에서 창작을 위해 잠깐 휴식을 했다가, 아이디어를 갖고 다시 뭉치면서 결속력이 단단해졌고 작업 속도도 빠르게 진행됐다. 그게 2014년 연말 정도였고, 그렇게 작업을 하면서 지난해 4월에 첫 미니앨범이 발매된 거다.

 
- ‘4.19 혁명’을 팀 이름으로 잡은 이유가 있을까?

김명식 : 일단은 4월 19일이 내 생일이다. 그런데 그건 별 관련 없고...(웃음) 일단 4.19라는 숫자를 모티브로 잡고 이후 여러 의미로 활용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사실 4.19라는 숫자는 한국 사람들이라면 다 알 테지만, 엄연히 4.19는 ‘혁명’이었으니까, 이를 뜻하는 ‘레볼루션(revolution)’이라는 단어의 약자로 R자를 앞에 붙인 거다. 그런데 향후에는 이 ‘R’에 여러 의미를 부여하면서 활동할 생각도 있다. 한편 팀 이름에 들어있는 ‘나인틴’ 이라는 단어 때문에 “10대 밴드가 나오겠구나” 했다가, 아저씨들이 멤버로 나오니까 좀 놀랐다는 반응도 있긴 했다. (웃음)
 

- 팀 이름 때문에도 그렇고, 또 앨범 수록 곡 중 ‘안심하라’ 같은 곡 들어보면 이승만 정권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이 보이기도 했다.

김범태 : 직접적인 표현을 한 부분은 분명 있다. 말씀하신 ‘안심하라’의 도입부 한국전쟁 당시 대통령의 안심하라는 대국민 메시지를 그대로 사용한 것이기도 하고, 또 우리 팀명인 4.19 혁명이 그 정권의 부조리함에 반기를 들며 일어났던 일인 만큼 그에 대한 의미가 큰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꼭 특정 정권을 비판하기보다는, 지금 이 시대에도 최근의 인천 아동학대 사건을 비롯해 지구상 어딘가에서 벌어지는 불합리한 일에 대해 저항과 변화, 그러니까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들은 바꿔보자”와 같은 마음을 느낀 것이 사실은 더 크다. 사실 우리가 이승만 정권에 살던 세대는 아니었으니까, 지금의 이 세상에서 나타나는 여러 부조리한 현실에 더 목소리를 내고 싶은 거다.
 

- 주변에서는 “이왕이면 박정희 대통령 일가도 좀 비판하지 그랬냐”는 우스갯소리도 하더라. (웃음)

김범태 : 그건 여기 ‘어비스(알포나인틴과 친분이 깊은 홍대 헤비메탈 밴드로, 인천 출신은 아니지만 인천에서도 자주 공연을 했었음. 당시 인터뷰 현장에 어비스 멤버 문철민씨가 동석했었다.)’가 자기들 앨범에서 제대로 한방 먹인 적이 있다. (웃음)
 

30일 인터뷰를 진행했던 알포나인틴의 멤버 김범태(기타)와 김명식(보컬). 사진 좌로부터. ⓒ배영수

 
- 홍대에서 소위 ‘제법 날리는 밴드’ 치곤 인천에서의 활약이 꽤 많더라.

김명식 : 인천 출신 밴드이기에 인천지역의 클럽에서 우리에게 지원해준 부분이 좀 많은 건 사실이다. 애초에 꾸준한 히스토리가 있던 상황이 아니다 보니 초창기에는 우릴 불러주는 팀이 많지 않았지만, ‘쥐똥나무’, ‘글래스톤베리’ 등 인천 소재의 클럽에서 무대를 많이 제공해 줬으니까. 다행스럽게도 클럽 측의 ‘배려’에서 발전해 ‘인정’을 받게 됐는데, 그렇다고 “의리 때문에 간다” 같은 의미로 인천서 많은 공연을 하는 건 아니다. 서울 밴드들이 인천에 와서 하는 말들이 “인천에서 공연하면 반응이 정말 열광적이다”라고들 하는데 우리도 같은 감정을 느끼다보니 더 설레고 신나고 그러는 거다. 어쩌면 인천 시민들 마음에 ‘바닷사람’으로서의 어떤 강인함 같은 게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다만 아쉬운 부분이라면 인천이 아무래도 홍대만큼 공연이 많을 수는 없다 보니 공연 하는 횟수 자체가 귀하다. 그러다 보니 공연하는 우리나 봐주시는 분들이나 더 열광하게 되는 것 같고. 아무튼 이제 홍대 등 서울 밴드들도 인천에서 공연을 하면 꽤 좋다고들 한다.
 

- 음악을 하지 않을 때는 멤버들 각자가 직장인 생활을 하다 보니 “직장인 밴드가 뭐 이렇게 잘 하냐”는 반응도 있는 것 같은데?

김명식 : 사실 같이 동석한 어비스나 지금 정용성이 병행 활동하는 ‘서울 마더스’를 비롯해 오랫동안 역사를 쌓아온 밴드들도 소위 ‘전업’을 하는 멤버가 없는 상태다. 아마 홍대 쪽에서 활동하는 거의 모든 밴드들이 그럴 거다. 그런데 우리 스스로 ‘직장인 밴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한 밴드가 자기 곡 작업을 하고 앨범 발매 하고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프로다’라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모임’에 중점을 두고 기존 밴드의 곡을 커버하는 것인지가 프로 밴드와 직장인 밴드를 구분하는 기준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본업 직장이 있으면 직장인 밴드, 음악으로만 먹고 살면 전업 밴드’로 구분하는 건 옳지 않다고 본다.

김범태 : 또 앨범 발매를 했어도 그걸 기반으로 꾸준히 공연을 하고 다음 앨범까지 준비할 수 있는 여력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사실 우리는 내년에 또 한 차례 앨범을 계획하고 있고, 그래서 사실은 ‘직장인 밴드’가 아니라 ‘프로 밴드’라고 인식하고 있다.
 

- 각자 평소에 하는 일들은?

김명식 : 나는 현재 발 마사지 전문 프랜차이즈 업체의 총괄이사를 하고 있고, 최재학은 같은 프랜차이즈 업체의 매장 매니저 활동을 하고 있다. 김범태는 현재 파주의 한 원두커피 로스팅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강태민은 녹음실 엔지니어로, 또 임근효는 한 중소기업에서 대리로 일한다. 정용성은 가업인 아버지의 남성 전용 바버샵(이발소)를 이어받기로 하고 아버지와 함께 일을 하고 있다. 사실 정용성이 대단한 게, 요즘 시대에 전통을 이어받는 게 쉽지는 않은 건데 아버지와 함께 일을 하면서 지역 내에서도 의미 있는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다. 정용성의 아버님이 사실 인천에서 굉장히 유명하신 분이다. 정준영 이발사님이라고, 지역사회에서 아는 분들도 꽤 많은 걸로 안다.
 

- 직장인으로서 밴드 활동에 어려움이 있을 것 같은데?

김범태 : 아무래도 업무들이 다 있다 보니 시간 맞추기 힘들 때가 여러 번 있다. 지금 인터뷰도 내심 6명이 다 나와서 이야기 나눴으면 하는 바람이 사실 있다. 하지만 인터뷰처럼 몇 명 빠져도 진행이 가능하다면 그나마 좀 나은데, 6명이 다 모여야 가능한 활동들이 많은 밴드로서는 아무래도 애로점이 많다. 당일 모일 수 있다고 약속이 된 상황에서 한 명이 직장에서 갑자기 급한 업무로 비상이 터지거나 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니까. 음악적 성향이 부딪혀서 멤버 간 마찰이 생긴다면 그건 분명 발전적인 차원에서 일어나는 일이니 얼마든 환영하지만, 시간이 안 돼서 일이 꼬이면 그게 정말 스트레스더라. 현재는 리더 형을 비롯한 우리 멤버들이 정말 열심히 시간 쪼개고 가능한 한 최대한 밴드 스케줄에 맞춰 조율하고 있다.
 

- 지난해 발매된 음반이 상당히 빠른 시간에 진행됐다고 하더라.

김명식 : 아까 언급한 대로 서른이 넘어 다시 뭉쳤고, 생각보다 공연 횟수가 더 많아지니까, 프로 밴드로서의 마인드를 갖자고 다짐하면서 앨범 발매를 계획했다고 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친분이 있는 ‘서울 마더스’, ‘어비스’ 등의 밴드들이 앨범 발매를 계획했고 그 일환으로 열렸던 프로모션 공연에 우리가 참여하고 그러면서 “우리도 앨범 발매를 하자” 하는 의욕이 더 강해졌다. 물론 주변에서는 “너무 서두르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하기도 했다. 2014년 연말 지인들에게 앨범 낸다고 선언했고 이듬해 1월부터 녹음을 강행해 3월 말에 마무리하고, 4월 19일 앨범을 내고 프로모션 공연을 한 거였으니 2~3년 걸릴 일을 몇 달 만에 진행한 거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만약 1년을 넘게 준비했다 해도 우리가 투자한 시간은 똑같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추진력 있게 밀어붙인 거다. 솔직히 리더인 나보다 다른 멤버들이 더 열심히 했다. 다음 앨범도 아마 같은 방식으로 진행될 것 같다.

김범태 : 솔직히 너무 힘들었다. 직장에서 저녁에 일을 마치고 새벽5시까지 녹음하고 또 회사 가고... 하지만 짧은 시간에 집중했던 게 더 큰 만족도가 있었다고 판단한다. 솔직히 길게 시간을 가져가 봤자 집중하는 시간이 적었을 거라는 생각을 나도 한다. 공연까지 다 예약한 상황이라 배수진 치고 정말 열심히 하면서, 멤버들 간 사이가 더 돈독해지기도 했다.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 흔히 뮤지션들이 자기 작품에 백 점 못 준다고 하지 않나. 본인들의 첫 앨범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는?

김범태 : 아쉬운 부분이 몇 군데 있는데 대부분 내가 원인이다. (웃음) 나는 한 88점?

김명식 : (김범태를 보며) 그래? 난 좀 더 박한데. (웃음) 마음속으로야 물론 100점주고 싶은데, 나는 ‘밴드 녹음’은 당시 처음 경험하는 거였다. 그래서 보컬 녹음에 아쉬움이 좀 있다. 한 80점정도 주고 싶은데, 20점이 감점된 건 사실 나 때문이다. (웃음) 사실 이번 앨범에서 부족했던 건 다음 앨범 그리고 공연에서 채워가는 걸로 의미를 두자고 마음먹었다. 그래야 밴드가 더 발전이 있을 거라 본다.
 
지난해 3월 신포동 클럽 ‘글래스톤베리’가 인천 밴드들을 섭외해 진행했던 ‘메이드 인 인천’ 공연 중, 알포나인틴의 보컬리스트 김명식이 관객들의 반응을 이끌고 있는 모습. ⓒ배영수
 

- 좀 민감한 질문일 수 있는데, 흔히 ‘인천 밴드’, ‘인천 뮤지션’이라고 하면, 연주력이 한수 위임에도 불구하고 인디 음악계에서도 소위 ‘마이너리그’같이 인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인천 출신 밴드로서 이 점이 혹여 부담으로 다가오지는 않나?

김명식 : 이건 내 개인적인 생각인데, 과거 인천 밴드들의 특성 중 하나가 다른 지역 밴드들이 범접하기 힘들 정도로 연주 스킬이 우수했었다. 사실 당시 인천 밴드들 사이에서는 연주력을 중시하는 분위기도 있었고. 그런데 그런 장점과 동시에 창작 곡들보다는 기존 곡의 커버 연주가 많았다는 단점도 존재했다. 지금 홍대는 당시의 인천과 비교하면 다소 반대 지점에 있다는 느낌이 든다. 연주력보다는 자기 작품을 만들자는 ‘창작’에 좀 더 비중을 두고 있으니까. 사실 그런 점에서 일장일단이 있다고 보고, 우리는 크게 부담 갖지는 않는다. 또 요새 둘러보면 창조적인 인천 출신 밴드들도 있고, 또 연주력이 ‘어마무시’한 홍대 출신 밴드들도 있고 그렇기 때문에, 인천이라고 ‘마이너’로 인식하거나, 홍대가 아닌 다른 곳 출신을 부담스러워 하거나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 지난해 알포나인틴 뿐만 아니라 블랙 메디신이나 데스팟, 그리고 록 장르를 벗어나자면 세움, 최윤미 등 인천 출신 뮤지션들의 활약이 꽤 고무적이었다. 필드에서 직접 뛰면서 느낀 ‘2015년 인천 뮤지션들의 활약상’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김범태 : 우리도 2015년에는 활동 양이 많았고, 특히 블랙 메디신은 인천뿐만 아니라 홍대를 비롯한 많은 인디 음악계 팬들이 발매 이전부터 정말 기대를 많이 했었고 그 완성도는 음악 평론가들에게 극찬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지난해의 경우 국내 헤비메탈 신에서 인천 밴드들과 서울 밴드들 간 교류가 정말 많았고, 이런 교류를 통해 지역 간의 벽도 어느 정도 허물 수 있었다. 마침 서울에서도 인천 밴드들이 엄청난 두각을 나타났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는데, 사실 나도 그리 생각한다. 인천에 기반을 두고 활동하는 밴드 ‘해머링’만 봐도 지난해에 정말 많은 활동을 하면서 일본에 가서도 교류하면서 일본 팀들을 우리나라에 데려와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우리도 지난 4월 프로모션 공연에서 지역에 제한을 두지 않고 다른 헤비메탈 밴드들과 함께 무대를 장식하기도 했고.
 
- 요즘 ‘응답하라’ 시리즈 드라마 덕분인지 대중들에게 90년대가 많이 주목받고 있는데, 본인들의 기억에 90년대의 인천은 어떤 곳이었나?

김범태 : 90년대라... 물론 추억이 많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심지나 유진, 성림 같은 음악 감상실 생각이 많이 난다. 그리고 많은 로커들을 키워낸 현대, 필 음악학원은 거의 ‘메카’와도 같은 곳이었고. 또 관교동에 밴드들 합주실이 많아서 당시 머리 긴 형님들은 다 거기서 만났고. (웃음) 또 당시 여성 팬들이 지금의 아이돌 응원하듯 헤비메탈 밴드들 응원하는 문화가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부분이 사라진 건 다소 아쉽기도 하고.

김명식 : 블랙 신드롬이나 블랙홀 등 서울 쪽 선배들 보면 지금까지도 활동하고 있는데 인천의 선배들이 많이 사라진 건 인천 록 팬들에게도 많이 아쉬운 부분일 것 같다. 인천 록 밴드 ‘사하라’의 경우 근래 ‘파티메이커’라는 록 밴드에 의해 리메이크가 되기도 했을 만큼 기억하는 분들이 많고, 사실 우리도 아직까지 당시 음악 하던 선배들 만나면 어려워 할 정도로 그 선배들을 존경하는 만큼, 인천에 이런 문화가 거의 사라지다시피 한 부분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느끼고 있다.
 

- 자신들의 첫 앨범 프로모션 공연의 수익 전액을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썼다고 하던데?

김명식 : 과거 앞서 언급했던 ‘애니버셔리’ 시절에, 인천의 장애인 영유아시설인 ‘동심원’과 한 차례 기획을 했었던 적이 있다. 당시 네 팀의 밴드가 공연을 통해 기부하는 활동을 해보자고 생각했는데 진행비가 필요했고, 여기에 내가 운영하는 프랜차이즈의 이름으로 지정기부를 해서, 그 기부금을 갖고 콘서트를 할 수 있는 비용으로 사용하자는 계획을 잡았다. 그래서 프랜차이즈에서 동심원에 기부를 하고, 동심원에서 이 기부 받은 액수 중 일부를 공연을 위해 투자를 하고, 그렇게 공연을 해서 얻은 수익 전액은 다시 동심원에 재기부하는 방식으로 했던 거다. 그때 당시 공연 이름이 ‘기부’를 뜻하는 ‘Donation #1’이었고, ‘알포나인틴’ 이라는 이름을 팀명으로 정하고 지난해 4월 화성에 있는 ‘아름마을’이라는 장애인 시설에 같은 방식으로 공연과 기부를 진행하면서 ‘Donation #2’로 갔던 거다. 향후에도 이런 방식의 기부 공연을 계속 할 예정이다.
 
알포나인틴이 지난해 4월 19일 서울 상상마당에서 진행한 프로모션 및 자선 공연 ‘Donation #2’에서 무대에 올랐던 모습. ⓒ배영수
 

- 정규 앨범 계획은 혹시 없나?

김범태 : 정규앨범과 미니앨범 발매 여부를 놓고 팀원들 간 의견이 오갔는데, 사실 최근까지도 정규앨범으로 마음을 먹다가 상황을 돌아보니 2016년에 앨범이 나온다면 정규앨범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판단이 됐다. 그래서 2016년에도 올해와 비슷하게 5곡 정도가 담긴 미니 앨범의 형태로 나올 것 같다. 아마 정규나 미니냐의 고민은 앞으로도 계속 하게 될 것 같다.

 
- 하나의 정규 앨범을 쪼개서 내는 방식도 있지 않겠나? 예전 ‘부활’같은 경우처럼.

김명식 : 물론 그 방법도 괜찮다고는 본다. 전략적으로 곡들이 만들어진 상태에서 다른
유가 생기면 그렇게 내는 것도 방법이니까. 그런데 우리 팀 같은 경우 앨범 만들 때 주제를 담거나 하는 과정에 변화가 굉장히 심한 편이다. 그래서 하나의 주제를 생각하고 그 시기에 만들어진 앨범이 정규앨범만큼의 양이 된다면 그렇게 하는 게 옳은데, 그 정도 양이 안 나온다면 미니 앨범이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도 미니 앨범에 대한 큰 밑그림은 그려 놓은 상태다.
 

- 올해 활동 계획은 대략 어떻게 되나?

김명식 : 어쩌면 고집일 지도 모르겠는데, 우리 팀명에 의거해 4월 19일에 음반 발매 개시를 하거나, 그게 어렵다면 다른 뭔가를 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 아마 그날 아니면 초가을 정도 즈음해서 상당 부분의 곡 작업을 끝내면, 이를 기반으로 세트리스트를 정해서 공연을 많이 하게 될 것 같다. 참고로 우리가 지난해 공연 횟수가 23회로 한 달에 두 번 정도 한 셈인데, 올해는 한 30회 정도로 늘리고 싶은 욕심이 있다. 또 우리 팀 자체적으로는 지난해 세 개의 쇼를 기획했는데 올해 다섯 개 정도로 쇼 횟수를 늘려 보겠다는 생각이 있다. 물론 불러주는 곳이 있으면 공연하러 갈 거고.

김범태 : 현재 두 팀 정도의 밴드들과 함께 사용할 공동작업실을 준비 중인데, 운이 좋아서 환경이 아주 괜찮은 곳을 구했다. 이 작업실에 대한 전체 그림을 현재 잡고 있는데, 빠르면 1월 말에 완료를 예정하고 있고, 그 시점 정도 돼서 대중이 됐든 음악관계자가 됐든 초대해서 보여드리면 어떨까 하는 내용도 현재 검토하고 있다.
 

- 향후 국내에서 어떤 뮤지션으로 기억되길 원하는지?

김명식 : 딱히 뭐 하나라고 말하긴 어려운데, 개인적으로는 예전부터 사람들 앞에서 뭔가 보여주는 걸 좋아할 정도로 공연을 즐기는 성향이 크다. 지속적으로 공연을 통해 좋은 사람들과 만나고 연주하고 싶고, ‘알포나인틴’의 차원에서는 공연을 통해 관객들에게 활기참,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밴드가 되고 싶다. 어느 지역을 가든지 어울릴 수 있는 전국구 밴드가 되고 싶기도 하고.
 

- 새해 소망은?

김명식 : 밴드 목표와도 비슷한데, 가장 먼저 즐겁고 싶다. 나의 경우 개인 사업을 해서 경제적으로는 큰 어려움은 없지만, 나를 비롯해 부모님과 가족, 그리고 밴드 멤버들과 팬들 모두 즐거운 한 해였으면 좋겠다. 밴드의 목표가 커지다 보면 그게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 몇 배 큰 즐거움을 밴드를 통해서 얻는다. 또 헤비메탈처럼 강한 음악들이 비즈니스적인 부분으로도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기도 하다.

김범태 : 멤버들이 나이가 들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웃음), 요새 병원에 자주 다니는 멤버들이 많다. 건강이 행복의 첫걸음이니까, 한 해 동안 건강했으면 좋겠다.


- 인천 시민들께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김명식 : 인천은 내가 일곱 살 때 아버님이 직장을 옮기면서 인천으로 와서 굉장히 오래 살았다. 사업 상 문제로 몇 년 전 서울로 이사를 가긴 했지만, 나는 아직도 인천에 와야 집에 온 것 같은 느낌이 있다. 멤버 중 일부도 아직 인천에 살고 있고, 또 나는 본가도 아직 인천에 있다. 그래서 인천에 대한 애향심이 크고, 사실 그래서 인천이 지금보다 더 발전했으면 좋겠다. 사실 인천이 서울서 가깝다보니 피해 입는 부분들이 많다고 느낀다. 하지만 분명 인천은 ‘서울 옆’이 아닌, 그 자체만으로도 비전이 있는 도시다. 많은 분들이 즐겁게 살 수 있는 도시가 됐으면 좋겠고, 하루 속히 재정난(인천시 재정난을 말함)에서도 벗어났으면 좋겠다.

김범태 : 나 같은 경우 인천에서 35년을 살다가 사업 때문에 3년 전 파주로 이주를 했지만, 여전히 인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또 우리 아버지가 인천 항운노조에서 37년 간 활동을 하신 분이다. 그러다보니 다른 데 가서도 인천사람이라고 이야기하고, 인천의 자긍심 같은 것도 많이 강조하는 편이다. 분명 인천은 시민들 스스로가 자긍심을 갖기에 충분한 300만 인구의 국제도시다. 비록 재정난 때문에 ‘I Incheon U’라는 웃지못할 패러디가 생기기도 했지만, 분명 극복할 수 있으리라 본다. 인천 시민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셨으면 좋겠고, 또 인천 안에서 행복함 삶 누리시길 바란다. 아, 시민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웃음)
 

알포나인틴의 첫 앨범 [HERO]. 수록곡 모두 좋은 평가를 받았는데 특히 ‘Game Set’, ‘안심하라’ 등의 트랙들은 “세계시장에 내놓아도 부족하지 않다”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배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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