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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과 함께해온 강화도의 역사, 17년 동안 연구

[인터뷰] 강화역사문화연구소 만든 김형우 박사

16-06-14 09:22ㅣ 류영신 강화뉴스 기자 (lewy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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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뉴스 - 인천in 협약기사>
 

99년 8월 문화재청 전문위원 김형우 박사는 과감히 강화도로 내려와 강화역사문화연구소를 만들었다. 강화도와의 인연은 96년 선원사지 발굴조사에 참여한 때 부터라고 한다. 전공을 고려시대로 했기에 강화도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고 한다. 강화역사문화연구소의 문을 열고 얼마후 강화군 조례로 만들어진 삼별초연구회와 인연이 닿아 삼별초 연구를 했고 2000년 9월 강화문화원 사업으로 강화의 삼별초 연구보고서를 제출하였다. 그때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으로 16년간 강화역사를 강독하는 격주모임을 해오고 있다고 한다. 김형우 박사는 당시를 회상하며 “갑곳리에 월세 10만원 짜리 사무실에서 강독회를 하는데 한 회원이 마치 독립운동을 하는거 같다는 이야기가 나왔을 정도로 열악했지만 열정이 넘쳤다”고 한다.

2012년 안양대의 배려로 강화역사문화연구소는 대학의 연구기관이 되었다. 덕분에 강의실과 연구실 운영등의 지원을 받게 되었다.


   
 

강화역사자료 강독회는 설립 직후인 2000년부터 현재까지 16년동안 격주모임을 진행하여 현재까지 380회에 이르고 있다. 관련학자 뿐 아니라 관심있는 지역주민이 매회 평균 20여명이 참석하여 자료를 수집하고 강독했다. 강독회는 강화역사를 정리하고 강화도의 가치를 재조명 하였다. 특히 ‘강화문화원이 전국최초의 문화원이었다는 것, 부처님 오신날 연등은 강화도에서 최초로 시작되었다는 것을 밝힌 일은 강독회 회원들에게 보람있는 연구성과가 되었다고 한다.


2005년도에 강화역사문화연구소가 발굴하여 강독해온 고재형의 [심도기행] 은 화남 고재형 선생이 강화도의 마을을 답사하며 기록한 문집이다. 100년전 강화도의 아름다운 도보여행길을 글로 접하면서 이 길을 그대로 다니면서 복원해보자는 그룹이 생겼고 강화군이 함께하면서 지금의 강화나들길이 되었다.

재밌는 에피소드라며 김형우 박사가 말한다. “우연한 계기였는데 [강화] 영인본 제작에 얽힌 이야기다 자신의 글이 실렸다며 어느분이 연구소로 잡지한 권을 가져왔다. 1945년 발행된 [강화]라는 표지가 찢긴 향토지였다. 실린 내용은 지역광고, 사건사고 등인데 그 시대를 살았던 강화인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어서 신기하고 재밌었다 그래서 국립도서관에서 [강화] 잡지를 찾았는데 있었다. 표지까지 해서 영인본을 여러 번 제작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향토사에 머물던 강화사가 중앙사료로 검증되었을 때 강화역사는 한민족의 역사가 된다.
김형우 박사는 2000년 12월 조선왕조실록에 실린 강화역사만 따로 모아 책으로 발간했다. 디지털과 cd로 기록된 조선왕조실록을 검색하여 강화이야기만 발췌해서 모아놓으니 강화사는 곧 한민족의 역사라는 것이 입증되었다고 한다. “ 강화도는 수도의 길목에 있는 적지 않은 크기의 섬입니다. 토질이 비옥하고 먹을 것이 많아 수도의 현관, 배후단지 역할을 했어요 강화역사는 단군시대부터 개항 근대사까지 국가사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2001년 신편강화사 편찬은 중앙의 역사전문가들이 강화역사에 관심을 갖고 강화도를 연구하게 하는 성과를 이루었다고 한다. 고대역사, 중세역사, 근대역사, 문화, 민속등의 중앙전문가들이 각자의 연구영역에서 전문성을 발휘하여 강화역사를 시대별, 분야별로 정리해냈다.

김형우 박사는 “당시 88명의 학자가 참여했어요. 필진을 섭외하고 자료수집하는 일은 우리가 했는데 중앙사료로 강화사가 증명되고 정리되는 과정이 재밌고 보람있었습니다.”고 전한다.

강화역사문화연구소에 들어서면 칸칸히 시대별 분야별로 정리 되어 있는 강화역사자료가 한눈에 들어온다. “자료를 모으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재조명됩니다. 강화군의 모든 금석문 탁본사진과 원문을 엮은 [강화금석문집]은 후배 학자가 도움을 줬는데, 혹여 우리가 한 해석에 오류가 있을지 몰라서 원문을 그대로 실었어요. 원문 해석에 대한 논란과 오타수정을 용이하게 하기 위함이죠” 열려 있는 마음으로 사료를 대하는 김형우 박사의 모습이 엿보인다.

올해에도 강화역사문화연구소의 강독회와 강화역사아카데미는 진행중이다. 그리고 강화고가옥 20개를 선정하여 상량문을 조사한다고 한다. 앞으로 강화연구문화연구소는 개천대제의 제 지내는 매뉴얼을 만들어 제 자체를 무형문화제로 지정하는 일을 추진하려고 한다. 몇 가지 선결조건이 필요하지만 지역민들이 함께 한다면 가능할 것이라고 한다.


17년 동안 김형우 박사가 연구해 온 강화역사는 어떤 의미일까?
“강화도는 열고 지키는 일을 반복한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열였다는 것은 開(열 개)자를 써서 개천(하늘을 열고), 개척, 개방, 개항, 개간을 의미합니다. 팔만대장경도 편찬이라고 하지 않고 개간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그리고 고려왕조와 외침, 외규장각, 조선왕조실록 등 위험상황에서 강화도로 피난와서 지키고자 했던 역사, 문화가 있었죠. 강화는 아직도 발굴 중인 역사자원이 많습니다. 워낙 역사문화자원이 뛰어나서 조금만 관심을 갖고 가공하면 할 일이 참 많은 곳입니다.”

강화역사문화연구소의 계획에 많은 강화인들이 참여하여 강화역사를 알리고 지켜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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