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감’ 통해 세대를 관통하는 어르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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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감’ 통해 세대를 관통하는 어르신들
  • 배영수 기자
  • 승인 2017.06.15 13: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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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적 주목 받는, 인천 남구 ‘키니스 장난감병원’

인천 남구 ‘키니스 장난감병원’의 내부 모습. ⓒ배영수
 

지난 2008년부터 인천시가 지역 시민들의 영유아 보육비 절감 등에 도움을 주기 위해 운영하기 시작한 ‘도담도담 장난감월드’라는 장난감 대여점이 있다. 동네 마트에서 울고불고 장난감을 사달라 조르는 아이들, 그리고 금방 질리는 아이들의 특성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대여점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 이를 직접 겪을 때의 난감함을 해결하고자 공공영역에서 등장한 ‘공유경제 모델’이었던 것. 인천시가 선제적으로 이 모델을 도입해 공공영역에서 운영하기 시작해 현재 15개 지점을 운영 중인데, 인천에서 성공사례를 본 전국의 많은 지자체들이 장난감 대여점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도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어서, 대여한 가정의 아이들이 이를 갖고 놀다 고장이라도 내는 경우엔 변상을 해야 하는 등 난감한 상황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다. 실제 변상비가 높은 경우 크게 부담이 되기도 하고, 적잖은 부모들이 변상을 염려해 선뜻 장난감을 대여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어쩌면 저성장시대의 대안으로 평가받는 공유경제가 보여준 부분적인 한계점 중 하나가 아닐까.

 

전국에서 기부 받아 손을 본 장난감들 중 일부를 김종일 키니스 장난감병원 이사장이 진열해 놓았다. 이 장난감들 역시 추후 기부될 예정이라고 한다. ⓒ배영수
 

◆ “장난감이 없어 서러운 아이들 없어지는 게 목표”
 
“어휴, 말도 마세요. 요즘 지역 신문사들은 말할 것도 없고 공중파 방송사들까지 취재 오겠다는 걸 한사코 말리고 있는 상황이에요. 순수하게 아이들에게 장난감 고쳐준다고 봉사 활동으로 시작한 건데, 전국적으로 관심이 많이 생겨서 요새 좀 살짝 부담되더라고.”
 
인천시 남구 주안시민지하상가에 위치한 ‘키니스 장난감 병원’에 도착한 장난감들을 보면서 인하공대 교수 출신의 김종일 이사장이 이곳을 찾아간 기자에게 건넨 말이다. “의미 있는 지역사회 일을 좀 알리고 싶어서 왔다”는 부탁 때문이었을까, 한사코 인터뷰를 거절하던 그는 결국 기자와의 대화를 허락했다.
 
동료인 전자공학 전공교수들과 전자업체 연구원 등 교직 혹은 산업전선에서 은퇴한 지인들과 협업을 도모하며 만든 비영리단체다. 아이를 뜻하는 ‘키드(Kid)’와 노년층을 뜻하는 ‘실버’의 합성어라고 하는 ‘키니스(Kinis)’라는 창작단어를 통해 세대 간 공존을 도모하고, 실버세대가 아이들에게 직접 장난감을 고쳐 주고 때로는 지역 유관 기관과 함께 기부도 하는 등의 활동을 통해 “장난감이 없어 서러운 아이들이 없도록 한다”는 목표를, 작지만 충실히 이루어가기 위함이라고 한다.
 
최근 그 ‘소소한 목표’가 소문을 타면서 굉장히 커졌다. 앞서 언급한 공공영역 부분의 장난감 수리는 물론 각 가정의 고장난 장난감들을 다른 어떤 업체들보다 탁월하게 뚝딱 수리해주는 것으로 입소문을 탄 것. 게다가 수리가 가능한 모든 장난감을 무료로 고쳐준다는 사실이 전국적으로 알려지면서, 이제는 전국에서 수리 문의를 받을 정도로 인천에서 가장 바쁜 단체가 됐다.
 
전국적으로 장난감을 대여해 주는 곳들은 많이 생겼지만, 고장난 것을 무료로 고쳐주는 곳은 거의 없다 보니 경북 경주 등 지방에서도 수십 개의 장난감을 수리 요청하는 경우도 생겼다고 한다. 기자가 방문했던 날에도 전국 각지에서 수리를 해달라며 보내온 장난감들이 장난감병원 문 앞까지 쌓여져 있었다.
 
키니스 장난감병원은 설립 초기인 지난 2011년만 해도 관교동의 한 주택에 세를 들어 운영을 했었다. 그러다 수리를 요구하는 수요가 많아지면서, 올해 남구청 측에서 주안시민지하상가의 공가 한 곳을 무상으로 제공했다. 특히 ‘서민층이 많은 구도심’인 남구로서는 이러한 공간이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행정지원을 했던 것.
 
“아이들은 각자 나이에 맞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 가장 행복을 느끼고, 또 가격을 떠나 자기가 갖고 놀던 장난감이 고장 났다가 다시 고치면 오는 기쁨이 엄청날 거예요. 물론 자원 재활용이나, 혹은 실버세대의 고용 효과 등도 나타나지만, 아이들이 장난감을 가지고 놀면서 받는 행복을 생각할 때가 가장 기쁘죠”


13일 기자가 키니스 장난감병원을 방문했을 때, 마침 이곳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한 어르신이 장난감을 직접 고치고 있었다. 그날의 마지막 작업이었다고 한다. ⓒ배영수
 

◆ “전국에 우리 같은 장난감병원 많이 생겼으면”
 
김 이사장은 이곳을 찾아갔을 때 한사코 인터뷰를 거절했을 정도로 언론의 집중에 부담을 느끼지만, 그래도 좋은 건 하나 있다고 했다. 몇 번 방송도 타고 신문사들도 다녀가고 하다 보니 이를 통해 소식을 접한 전국 각지에서 고장난 것이든 멀쩡한 것이든 장난감들을 기부하는 양이 늘어났다고.
 
때문에 올해 ‘아트애비뉴27(장난감병원 바로 옆 공간부터 시작되는 지하상가 문화 공간)’에서 시민들 대상으로 기부 행사를 한 것을 비롯, 지난해 연말 인천 프로축구단(인천유나이티드)과 공동으로 관내 이주민센터와 다문화 관련 지원기관, 선교단체 등에 장난감을 기부하고, 어린이 관련시설에도 장난감을 기부하는 등 활발한 사회활동을 해왔다. 물론 기부 활동은 최근만의 일도 아니어서, 관교동에서 수리 활동을 하던 당시에도 관내 타 군·구 지역으로의 장난감 수리 활동 및 나눔장터 등을 해오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전자공학 최일선에서 이론과 실전에 활약을 했던 어르신들답게, 수리 능력은 ‘전국 최고 수준’이다.
 
“2011년에 시작했으니까 올해 6년 정도 해온 건데, 그러다 보니 장난감 특징에 따라서 어디가 어떻게 고장이 잘 나는지도 선수들이 됐지. 노트북이나 카메라 고치는 거랑 사실 크게 다를 바가 없는 거예요. 다만 우린 지역에 봉사하는 마음을 갖고 한다는 게 산업 일선에서의 수리 활동과 좀 다른 거고요.”

요즘 키니스 장난감병원의 구성원들은 꿈이 하나 생겼다고 한다. 장난감병원이 타 지역에도 지부를 내거나, 아니면 이같은 수리 활동으로 봉사하고자 하는 비영리단체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것. 사실 교직과 산업 일선에서 정년퇴임한 어르신들이 수리를 해주는 만큼, 어르신들은 오랜 시간을 수리 활동에 할애하지는 못한다. 김 이사장에 따르면 8명의 구성원들이 하루 수리할 수 있는 장난감 개수는 많아야 40개 내외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다른 지역에서도 이러한 활동이 많아진다면 사회에 긍정적인 효과로 작용할 수 있을 듯싶다.
 
이웃나라 일본이 우리보다 공유경제 개념이 한참 먼저 도입되면서 ‘키니스 장난감병원’과 같은 활동을 하는 비영리단체들이 많아지고 이를 국가 차원에서 장려하고 있는 것은 김 이사장을 비롯한 키니스 장난감병원 어르신들에겐 내심 부럽기도 하다.
 
“여기 계시는 8분들 중에 5분이 이미 일흔을 넘겼고, 다른 3분도 65세를 넘기셨어요. 체력 한계가 있으니까 아무래도 많이 하기 힘들지. 그런데 이런 곳들이 전국 각지에 많이 생겨 봐요. 그럼 각 가정에서도 수리 요청하려고 보내는 택배비도 좀 아끼게 될 거고, 우리한테 집중돼서 밀려 있는 일들이 좀 분산되기도 하고 그러면 수리 주기도 좀 더 빨라질 거예요. 지금도 장난감 대여점들은 전국에 많은데, 아이들이 갖고 놀다가 고장 낼 수 있잖아요. 그럼 주변에 장난감병원이 있으면 아이들도 더 행복해할 거고, 그러지 않겠어요? 전국 17개 시도에서 이런 활동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뭐, 고치는 노하우는 우리한테 와서 배워도 되고요. (웃음)” 
 

올해 4월 남구청과 공동으로 장난감 기부행사를 하던 당시의 기념촬영. (인천남구청 제공)
 
※ 키니스 장난감병원 네이버 카페 주소
http://cafe.naver.com/toyclinic



키니스 장난감병원 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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