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싼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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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싼이 그립다
  • 신언섭
  • 승인 2024.09.25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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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과 나눔의 글마당]
신언섭 / 인천노인종합문화회관 소통의 글쓰기반
시민의 신문 <인천in>이 인천노인종합문화화관과 함께 회원들의 글쓰기 작품(시, 수필, 칼럼)을 연재하는 <소통과 나눔의 글마당>을 신설합니다. 풍부한 삶의 경험에서 우러나오고, 글쓰기 훈련을 통해 갈고 닦은 시니어들의 작품들을 통해 세대간 소통하며 삶의 지혜를 나눕니다.

 

투싼
투싼

 

괴산행 고속버스가 서울 센트럴시티 터미널을 출발했다․ 가볍게 전용 차로에 들어선 버스는 시원하게 내달린다․ 모처럼의 대중교통 여행이 새롭다․ 얼마나 갔을까? 30분도 안 되어 승용차 주행차선은 주차장을 방불케 한다․ 보란 듯이 달리던 버스 전용 차선도 정체가 시작된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던 고속버스도 이제는 움직일 기미도 없다․ 애달아 여기저기 통화한 기사님이 전하길 5㎞ 전방에서 사고 수습 중이란다․

“TS 가 그립다”․ 말없이 창밖을 응시하던 아내가 새삼스럽게 말을 한다․ 고속도로를 가득 메운 차량 행렬 속에서 찾아보았지만 TS는 물론 보이지 않는다․ 아내는 평소에 TS를 좋아했다․ 우리가 좋아한 자동차 TS(투싼)는 앞좌석에서 바라보는 확 트인 시야가 스크린 같다고‚ 아내는 맘에 들어 했다․ 예전에 고생하던 차멀미도 없었고‚ 불면증에 잠 못 들 때도 조수석에 앉으면 쉽사리 잠이 들곤 했다․ 장거리 여행 중에도 다리를 편하게 펼 수 있다며 본인의 취향에 맞는 그 TS을 곧잘 자랑했다․

나도 네가 그립다․ 아주 많이. 너는 내게 참 좋은 친구였다․ 너를 내가 만난 때는 2007년 5월 초 보랏빛 라일락이 산들산들 춤추던 날이었다․ 그때 나는 젊은 나이 육십 세였다․ 전국이 나의 일터이었기에 때로는 밤낮없이 이동할 때가 많았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 인적 없는 산길을 우리는 당차게 넘었다․ 짙은 안갯속에서 갈 길 못 찾아 헤매기도 했다․ 장대같이 쏟아지는 빗속을 달리기도 했다․ 살얼음판 눈길에서는 속수무책 미끄럼을 타기도 했다․

‘TS’ 너와 함께한 시간 속에는 행복한 일도 많았다․ 바다를 좋아하는 내 취향 따라 우리는 섬 구경을 많이 갔었지‚ 연륙교가 있는 가까운 섬은 만만한 드라이브 코스이고‚ 동해안 여행은 즐겨 가는 곳이었다․ 개통 소식에 네 시간 반을 달려간 천사대교는 생각했던 ‘하늘의 천사’라는 의미가 아닌 1004개의 섬이 있어 명명한 것을, 우리는 펜션 사장의 안내를 듣고서 알았다․ 목포 삼악도 이난영 공원에서는 이른 아침 살랑이는 바닷바람을 맞으며 ‘목포는 항구다’ 노래를 반복해 들었다․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 설레는 여행이었다․ 어디 그것뿐이냐, 진도대교를 건너 섬 일주를 하고 여수대교를 건너 향일암 가는 길에서는 아내의 “찔레꽃”하모니카 연주에 너도나도 즐거워 신바람 나게 달렸지․

한 해 여름 휴가철 해남 땅끝마을 송호해수욕장에서는 숙소를 구하지 못해 쩔쩔매다가 주차장 한편에서 너와 같이 새우잠을 잤었다․ 연륙교 없는 제주에는 완도에서 고속 페리를 타고 갔다․ 민속촌이 가까운 가정집 별채에서 보름살이로 제주 일주를 했다․ 그때에 아쉬움 하나 있었다․ 숙소를 편리한 곳에 분산 예약했으면 장거리 운행으로 인한 우리의 시간과 피로를 줄일 수 있었을 게다․

고흥 나로도의 우주선 발사대 구경도 하고‚ 남해를 바라보며 삼천포대교까지 이어진 그림 같은 풍경을 잊을 수 없다․ 거제 바람의 언덕은 추억이 있다․ 절정의 휴가철에 빈방이 없어 비린내 나는 부둣가에서 우리는 차박을 했다. 때마침 옆자리에 낚시꾼 있어 도란도란 낚시하여 안주를 했다․ 소곤소곤 이야기에 밤은 깊어가고‚ 부둣가는 소곤거리다 꽃잠이 들었다․ ‘TS’의 모든 시간은 우리들의 젊은 날이었다․

작년 봄에 너를 몰고 아내와 같이 시장에 다녀오던 길에 접촉 사고가 났었지․ 평지 같은 미약한 경사로에서 신호 대기 중이었다․ 브레이크를 밟고 있었으나 나도 몰래 가압이 느슨해진 것 같다․ 기아 중립 상태로 후진이 되어 뒤차와 접촉되었다․ 경고음을 울렸다는데‚ 이야기에 빠진 아내와 난청이 있는 나는 그순간 경고음을 감지하지 못했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나에게 피해 차량 기사님이 도로변으로 너를 빼라 할 때 적지 않은 나이에도 나는 겁이 났다․ 먼저 피해가 있느냐고‚ 여쭤보았다․ 앞 범퍼에 높낮이가 맞지 않는 오래된 흠집을 지적한다․ 어쩔 수 없이 양측 보험회사 직원을 호출하였다․ 피해 차량 구 그렌저의 블랙박스를 확인했다․ 경적소리가 나고‚ ‘벅’ 하고 차량 접촉 소리가 들린다․ 더 이상 논쟁의 여지가 없단다․ 피해 차주의 요구대로 앞 범퍼 교체하고 경비 팔십만 원이 보험처리되었다․

한 달도 안 되어 두 번째 사고가 났다․ 그날따라 녹내장 치료를 받고 있는 눈의 상태가 흐렸다․ 재래시장 주차장에서 골목길을 나오니 왕복 4차선 도로가 가로막고 있다․ 좌측에 횡단보도 신호가 때마침 빨간 불로 바뀌었다․ 앞서가는 비보호 좌회전 차량을 급하게 따라갔다․ ‘쿵’ 멈추는 앞차를 보고 제동 걸었지만, 안전거리 미확보인 상태에서 접촉되었다․ 차에서 내려 피해 차를 살펴보았다․ SM3 뒤 범퍼에 접촉부위 흔적이 있다․ 뒷좌석에는 첫돌쯤 되어 보이는 어린 아기가 자고 있다․ 운전석의 아기 엄마는 문도 열지 않고‚ 전화가 계속된다․ 한참 만에 차에서 내린 피해 차 차주에게 사정을 했으나 현찰 보상은 관심도 없다․ 하는 수없이 보험 처리를 하였다․ 엄마가 입원하면 영유아도 따라 입원한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한 달이 넘어 끝낸 보상은 480만 원이라고 보험사 직원이 알려준다․ 그날 밤 죄 없는 TS을 두고 아내는 팔자 하고‚ 나는 더 두고 보자며 의견이 분분했다․

염려하던 사고가 또 발생했다․ 일 년 사이에 세 번째다․ 재래시장 공영주차장이다․ 오늘따라 차가 많아 주차한 최상층 육층에서 내려간다․ 뱅글뱅글 한참을 내려왔는데 삼층이다․ 나름 조심하며 일층까지 내려왔다․ 갑자기 주차장 내부 코너에 세워진 철기둥이 TS를 막아 친다․ ‘꿈인가?’ 운전석 쪽 앞 휀더가 찌그러졌다․ 서 있는 철기둥을 쫓아가 박치기 한 것이다․ 참으로 어이없는 사고를 저질렀다․ 자신이 부끄럽고 한스럽다․ 현장을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는 나에게 “복잡한데 어서 차 빼어 가세요”‚ 주차장 관리인이 정리를 한다․ 나의 반려 TS 너는 십칠 년 만에 부품 교체를 했다․ 후일에 다시 찾은 주차장의 사고 지점 기둥에는 눈에 잘 띄는 형광색 페인트로 도색 되어있다․ 주위 바닥에도 작은 안전 기둥 네 개가 설치되어 있다․

중고차 딜러가 차에 오른다 “안녕히 계셔요” 투싼의 인사 같다․ 17년 지기 내 친구인 네가 떠난다. 와락 가슴이 울음을 토한다․ 언제라도 너의 정년퇴직 때에 나도 같이 하겠다고‚ 마음의 약속을 수차례 했었다․ 이제 와 허무하게 약속을 저버린 늙은 주인을 원망이라도 하는 듯 경적 소리 울려놓고‚ 저 멀리 달아났다․ 어느 순간 나이는 이리도 많이 먹었나‚ 건강관리 잘했으면 이런 일은 없을걸․ 회한의 눈물이 가슴골에 흐른다․ 주행거리 13만km, 내가 너의 핸들을 부여잡고 달려온 그 길이 이제 와 생각하니 꿈길만 같다․ 두 딸애 시집보내고‚ 인적이 드물어진 우리 집에 너는 충실한 반려가 되었다․ 어디든 같이 가고 밤낮없이 동행해 준 네가 더없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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