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신포동 신신옥 튀김우동 + 호주 음식점 '코알라'
친구에게서 뜻하지 않게 호주 음식점을 추천받게 되었다. 솔직히 필자는 영국, 미국, 호주, 뉴질랜드 등 이쪽은 음식에 관해서는 별생각을 안 하고 있었다. 살아오면서 특별한 음식으로 느껴 본 적이 없었기에 그저 피자, 스테이크 외에는 딱히 기억에 남아있는 음식이 없었다.
그런데 친구가 소개해준 음식점은 식당이라기보다는 카페라는 생각이 들었다. 파이(pie)를 파는 곳인데 나름 괜찮은 곳이라고 소문이 난 곳이라고 말해주어서 친구들과 찾아가 보기로 약속을 했다.
파이(pie)는 밀가루와 버터를 개어 과일이나 고기 따위를 넣고 구워서 만드는 서양과자를 의미하기에 우리는 파이만으로는 저녁 식사가 어려울 것 같으니 가볍게 식사할 것을 찾아보기로 했다. 친구가 “우동은 어떠냐?”고 물어보길래 아무 문제 없다고 했더니, 신포시장에서 터줏대감인 ‘신신옥’을 소개해주었다.
드디어 약속한 날이 되었다. 서울에서 오는 친구의 차를 타고 신포동으로 향하면서 필자는 호주 파이에만 관심이 가고 우동에는 그다지 기대를 하지 않았다. 우동이 우동일 뿐이지 뭐 별거 있겠어? 라는 생각이 나의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었다.
잠시 후 신포동에 도착해서 우리는 또 다른 친구를 만나 신포시장으로 향하였다. 오랜만에 가보는 신포시장이었기에 필자는 설레었다. 더구나 신혼생활을 신포시장 근처에서 지낸 필자에게는 잊지 못할 추억이 소환되었다.
꽃게의 계절인 5월에 결혼한 필자는 부모님과 함께 살았었는데 어머니께서 집사람한테 필자는 꽃게탕을 좋아한다면서 꽃게탕의 비법(?)을 전수해 주셔서 지금까지도 집사람의 최고의 요리로 필자는 꽃게탕을 꼽는다.
집사람 혼자 장 보러 가서 문제가 생겼다. 이날도 꽃게를 사러 어머니께서 다니시던 단골집으로 가서 주인아주머니께 꽃게를 달라고 했었다. 그런데 꽃게는 안 주고 그냥 게(?)를 주시길래 어머니께서 사 오시는 빨간 꽃게를 달라고 계속 말했더니 주인아주머니께서는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아이고 어머니께서 사가시는 꽃게 맞으니까 가져가면 된다”고 하셔서 할 수 없이 가져와서는 매운탕을 끓였는데, 잠시 후 어라? 빨간 꽃게다! 하며 놀랬던 집사람의 모습이 지금도 생각난다. 열을 가하면 색이 변하는 걸 처음 본 집사람은 꽃게의 변신에 놀랐던 기억이 소환되었다.
공갈 빵집, 떡집, 신포시장 최고의 유명 맛집으로 소문 난 닭강정 집 등의 먹거리를 구경하면서 걷다 보니 드디어 목적지인 ‘신신옥’에 도착했다.
도착은 했는데 가게 앞에 놓여있는 좌판 때문에 입구가 눈에 잘 띄지 않았다. 실내로 들어서니 특별한 실내 장식은 전혀 없고 오히려 평균 이하의 내부 모습에 약간은 실망감이 감돌았으나 자세히 주변을 살펴보니 오래된 이 집의 역사를 증명하는 듯한 과거 인천의 모습과 신포동의 사진이 걸려있었다.
특히 수인선의 사진이 필자의 관심을 끌었다. 증기 기관차의 모습은 필자를 항상 초등학교 시절로 안내한다. 명절 때마다 할머니를 뵈러 수인선 기차를 이용했었던 필자는 사람들이 꽉 찬 기차를 타고 2시간 넘게 걸려 수원에 도착했었던 기억은 잊지 못할 듯싶다. 그 시절에는 왜 이리도 연착이 많았던지 조금 과장해서 말해보면 달리는 시간보다 멈춰 서있는 시간이 더 긴듯한 느낌이었다.
우리는 자리에 앉아 튀김우동과 장어 튀김 소(小)자를 주문했다.
밑반찬으로 큼직한 단무지와 겉절이 김치가 나왔다. 단무지를 보면서 웃음이 나왔다. 필자의 어린 시절에 먹었던 크기의 단무지였기에 실로 감회가 새로웠다. 잠시 후 장어 튀김이 나왔는데 처음 맛본 장어 튀김의 맛은 눈을 크게 만들어주었다. 우리가 ‘아나고’라고 알고 있는 붕장어로 만든 장어 튀김은 그 부드러움과 고소한 맛이 깜짝 놀라게 해주었다.
친구의 말에 의하면 우리의 선배들은 장어 튀김을 먹을 돈이 없어 우동을 시키면 고명으로 나오는 장어 튀김가루로 소주 한잔했다고 한다.
잠시 후 이 집의 주요리인 튀김 우동이 나왔다. 겉으로 보이는 우동의 모습은 전혀 느낌이 생기지 않았다. 튀김가루와 파 그리고 고춧가루가 얹어진 그저 그런 우동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면의 모습이 조금은 다른 느낌이었다. 마치 쫄면의 모습이었기에 사장님께 여쭤봤더니 쫄면은 아니라고 말씀해주셨다. 굵기로 보면 중(中) 면 정도이고 식감은 필자가 좋아하는 쫄깃한 맛이었다. 물론 쫄면만큼은 아니지만 나쁘지 않은 쫄깃함에 기분에 좋아졌다.
젓가락으로 휘이~~ 저은 후 한 젓가락을 입에 넣으니 우와! 이럴 때 하는 말인 ‘깜놀’이란 말이 생각났다.
면도 면이지만 국물의 맛이 기가 막혔다. 단맛은 나는데 달지는 않고 짭조름 하지만 짠맛은 아닌 온갖 맛의 표현이 거의 다 포함된 맛이었다. 그저 기가 막힌 맛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맛이었다.
같이 온 친구 중 한 명은 이 동네에서 근무하면서 많이 먹어봐서 그런지 우동이 원래 이런 거 아닌가? 하는 표정인데 다른 친구는 필자와 같은 느낌이었는지 “우와! 이 우동 정말 맛있다.” “국물이 예술이네” “면발이 환상이네” 등 최고의 찬사를 보내면서 우동 한 그릇을 비웠다.
필자는 국물의 비결이 뭘까? 하는 궁금증을 해결하고자 사장님께 여쭤봤더니 처음에는 멸치 육수라고 말씀하시더니 단순히 멸치 맛이 아닌 거 같다고 말씀드렸더니 빙긋이 웃으시면서 빈주리도 넣는다고 말씀해주셨다.
‘빈주리’로 불려지는 이 생선은 정식명칭은 ‘디포리’로 더 알려져 있다. 멸치 육수가 깔끔하고 시원한 맛이라면 디포리 육수는 더 무겁고 고소한 맛이 난다고 한다.
아무튼, 기가 막힌 우동을 맛본 필자는 사장님께 이 집은 몇 대째 이어오는지 여쭤봤더니 2대째라고 하시길래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사장님의 연세가 73세라고 하시는데 대를 이어줄 자녀가 안 보여서 혹시 오래지 않아 문을 닫는 거는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1958년부터 이어져 온 맛집이 사라지지 않기를 간절히 희망해본다. 사장님께서는 필자에게 얼마 전에 먹방 유튜버로 유명한 쯔양이 이곳에 와서 10그릇을 먹었다면서 자랑스럽게 쯔양 사진을 보내 주셨다. 필자도 다른 데 갈 곳이 없었다면 한 그릇은 더 먹을 수 있었다.
신신옥 맛의 여운을 뒤로하고 우리는 또 다른 목적지인 코알라 카페로 향하였다.
시장 골목을 벗어나서 조금 걸으니 예쁜 모양의 외관을 지닌 코알라 카페가 나타났다.
재밌게 보이는 외관에 이끌려 안으로 들어갔더니 실내는 더 재미가 있었다.
호주를 연상시키는 사진과 인형, 호주 국기 그리고 옷가지들이 필자를 “호주가 맞네”라는 생각이 들게 해주었다.
우리는 호주 맥주인 캔버 라거와 풀드 포크 파이(pulled pork pie), 미트 파이(meat pie) 그리고 머쉬룸 크림 파이(mushroom cream pie) 이렇게 3가지 파이를 주문했다.
우리 셋은 파이를 삼등분 해서 각각 맛을 보기로 했다.
파이의 겉을 쌓고 있는 빵이 조금은 질겨서 자를 때 약간의 어려움이 있었다.
풀드 포크 파이는 돼지고기의 향이 나의 입과 코를 자극했다. 불 향이 입혀진 고기의 향과 버터와 밀가루로 만들어진 빵의 고소함과 어우러진 맛은 필자를 삼겹살과는 다른 맛의 세계로 안내해주었다.
십수 년 전 필리핀의 세부 여행 갔을 때 샹그리라 리조트에서 먹었던 기름이 쫙 빠진 돼지 바베큐의 맛이 생각났다. 빗소리를 들으면서 온 가족이 다 같이 식사를 했던 그 추억이 잠시나마 필자를 행복감에 젖어 들게 해주었다.
곧이어 나온 미트 파이는 뉴질랜드 여행을 생각나게 해주었다. 결혼 25주년 기념으로 갔었는데 그곳의 가이드가 말하기를 뉴질랜드의 소고기는 곡물이 아닌 건초를 먹여 키워서 마블링을 중요시하는 우리의 입맛과는 다르다고 했었다. 실제로 먹어 보니 필자는 그 차이를 느끼지를 못했던 기억이 있는데 조금의 거친 맛은 느껴졌으나 소고기 본연의 맛은 좋았던 기억이 있다.
지금 그 맛을 느끼고 있다는 생각에 기분에 들뜨기도 했다. 광활한 목초지에서 풀을 뜯어 먹고 있는 소들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렸다. 아마도 호주를 느끼게 하는 실내 장식에 둘러싸여 있어서 더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해본다.
마지막으로 맛본 머쉬룸 크림 파이는 버섯의 향과 크림의 고소함이 필자를 엄지 척! 하게 해주었다.
파이를 평소에 즐겨 먹지 않았던 필자는 오랜만에 먹어 본 파이가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중앙아시아의 차이 하나 편에서 언급한 삼사와 비슷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맛에는 다름이 있었지만 만들어진 모습에는 너무도 비슷했다. 그런 것을 보면 인간의 음식 세계는 서로 간에 어딘지 모를 공통점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파이라는 음식은 어찌 보면 우리의 만두 요리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해보게 된다. 굽느냐 찌느냐의 차이를 빼고 나면 반죽해서 만든 피(皮)에 고기나 채소 등의 재료를 넣어 만든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오랜만에 친구들과 함께 신포동에서 옛 우동의 맛도 보고 호주의 파이 맛도 본 즐거운 추억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