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발맘발맘, 사람들의 발걸음이 하나둘 늘어나는 책방 - 김시언 / '우공책방' 책방지기
<작은책방, 그 너머의 기록>은 인천과 강화 지역에서 작은 책방을 꾸려가는 사람들이 전하는 이야기입니다. 요즘 세상에 책방을 열어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텐데, 그들은 왜 굳이 작은책방을 열고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문화를 말하는지 질펀하게 수다떨려고 합니다. 좁은 골목길에서 우연히 맞닥뜨린 작은책방, 그 길모퉁이에서 책방 사람들이 들려주는 소소한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세요. 책방시점, 책방산책, 우공책방, 딸기책방, 나비날다책방 순서로 일주일에 한 번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우공책방’은 강화군 내가면 낙조대 적석사 아래에 있다. 강화읍에서는 10분 남짓 걸리지만 고려산과 혈구산을 잇는 고비고갯길을 넘어야 올 수 있다. 사람들이 말하는 ‘강화 한계령’을 구불구불 넘어야 한다. 그래서인지 책방을 처음 찾아오는 사람들은 깜짝 놀란다. “아니, 어쩌자고 이런 산골에 책방을 냈어요?” “이런 곳에 책방이 있다니, 너무 비현실적이야, 하하하.” 책방을 찾아오는 손님마다 표현이 달라 재미있고 흥미롭다. 생각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지만, 책방을 내고 본격적으로 활동한 지 일 년이 채 안 되는 지금은 작은책방을 낸 일도, 고려산 산자락에 폭 파묻힌 고천리 연꽃마을에 책방을 낸 것도 참 잘했다. 사람 사는 곳이라면 당연히 책방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우공책방’이라는 이름은 《노자》 《장자》와 더불어 도가 삼서 가운데 하나라고 일컫는 《열자》에 나오는 ‘우공이산’에서 따왔다. 아흔이 다 돼가는 우공(愚公)이 산을 옮겨 놓는 이야기인데,
꾸준히 노력하면 산과 바다라도 옮길 수 있다는 뜻이다. 우공책방이 지금은 사람들의 발길이 적어 더 없이 한산하고 적막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알음알음 발길이 이어져 북적댈 것이다. 무척 한가롭고 여유로운 책방에서 손님들의 웃음소리와 이야깃소리가 늘어날 것이다. 먼길을 한달음에 달려오는 손님들을 보면 더디 가더라도 ‘산을 옮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발길이 멈추는 곳에서 시 한 편 읽어요
우리 책방에는 비교적 시집이 많다. 되도록 시집을 책방 입구에 두고 손님들의 시선을 잡아두려고 한다. 손님들은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시집이 팔려요?”라든가 “요즘 세상에 시집 사는 사람이 있을까요?”라고 묻는다. 얼마 전 뉴스에서 ‘가장 가난한 직업’으로 ‘시인’이 꼽혔는데 그와 맥락을 같이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책방을 찾는 손님들은 시를 무척 좋아한다. 책방 곳곳에 붙여 놓은 시를 조용히 읽거나 아무 말 없이 시집을 펼쳐든다. 책방에 오십 편 가량의 시를 곳곳에 붙여 놓은 까닭은 책장 사이를 오가다 그저 발길이 머무는 곳에서 시 한 편 읽어보라는 뜻에서였는데, 생각보다 많은 손님이 시 앞에서 멈춘다. 또 시인의 귀한 육필원고를 받아 액자에 넣어두었는데 손님들은 소리 내서 읽으며 무척 좋아한다.
“아, 나무 냄새!”
책방에 들어서는 순간 많은 사람이 하는 소리다. 나무로 만든 집인 데다, 책방 가득 손수 짜서 채운 나무책장, 나무책상, 나무의자 등등이 많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책 냄새가 나무 냄새와 어우러져 또 다른 책방냄새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오래전부터 책방지기들이 나무에 관심이 갖고 있던 책은 ‘보는 책’이라고 따로 분류해 두었다. 손님이 그 가운데서 책을 원하면, 절판된 책이라도 찾아 주문해준다.
책방을 열고부터는 ‘맘먹고’ 나무에 관한 책을 많이 들여놓는데 늘 부족하다. 지금은 《세계의 나무》부터 ‘우드카빙’에 관한 책까지 구비해 놓고 있지만, 나무에 관한 책이 워낙 많은 데다 눈만 뜨면 출간돼 때로는 마음이 조급하다. 하지만 욕심의 끝이 있던가. 그저 우리 결에 맞게 우리 속도에 맞게 책을 들여놓을 생각이다.
우리 책방은 공방을 함께한다. 마당에 있는 공방에서는 금속공예와 나무공예를 함께하는데 손님들은 나무공예에 관심이 많다. 나무 냄새, 나뭇결을 살펴보고 직접 뭔가를 만들어 보고 싶어한다. 나무는 사람에게 편안함을 주고, 일상에서 지친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기 때문이다. 책방에서 하루이틀 묵으면서 뒹굴거리면서 책도 실컷 읽고 나무책갈피나 빵도마를 만드는 이도 있으니 이들은 일석삼사조쯤 누리는 셈이다.
시골책방이 존재하는 이유
“대추계피차 한 잔 먹고 가려구.”
며칠 전에는 잘 알고 지내는 선생님이 친구들과 나물을 뜯고 가는 길에 들렀다. “생각보다 나물이 없네.” “한 움큼밖에 못 뜯었어. 바람은 왜 이렇게 차.” “다음 주에 다시 나와서 많이 뜯자.” 나누는 말들이 참 정겹다.
산책하다가 책방이 궁금해 들르는 분도 있다. “이사 온 지 얼마 안 됐어요. 마을이 조용해서 산책하기에 딱이더라구요. 이런 데 책방이 있다고 하길래 궁금해서 와봤죠. 근데, 손님은 와요?” “잘 놀다 가요. 산책하다가 종종 들러도 되죠.”
마을에 사는 어떤 엄마는 초등학생 중학생들과 책방에 왔다. “우리 동네에 책방이 있어서 좋아요. 읍까지 가지 않아도 되구요.” 시골이어서인지 학생 손님들이 그저 반갑다.
이렇게 마을 사람들이 오다가다 책방을 들르면 마구 설렌다. 동네책방으로서 자리매김하는 걸 실감하기 때문이다. 멀리서 시간을 내 책방투어를 오거나 책방 소문을 듣고 오는 분들도 반갑고, 마을에서 슬리퍼를 끌고 올 수 있는 곳이어서도 즐겁다.
“고라니 울음소리에 놀라지 마세요.”
우리 책방은 북스테이도 함께한다. 아직 손님이 많지 않지만, 대체로 왔던 손님이 알음알음 소문을 내주거나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다시 찾아온다. ‘다시’ 찾아오는 손님이 하나둘 늘면서 괜스레 마음이 넉넉해진다. 그 까닭은 즉슨 대접을 소홀하게 하지 않았구나라는 걸 확인하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책방이 워낙 산골에 있다 보니 손님이 편하게 묵을 수 있도록 저녁밥과 아침밥을 준비한다. 우리 책방의 하이라이트는 저녁식사. 되도록 정성을 다해 푸짐하게 차린다. 먹는 데서 정이 싹튼다는 말을 실감하는 밥상머리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시골책방은 손님은 손님대로 책방지기는 책방지기대로 아주 자연스럽게 친척모드로 바뀐다. 그래서 아이들이 늦게까지 아래층에서 책을 읽고 그림을 그려도, 아침 일찍 눈뜨자마자 내복차림으로 내려와 놀아도 서로 아주 편하다.
참, 저녁을 먹고 2층으로 손님들이 올라갈 때는 ‘주의사항’을 준다. 다름 아닌 고라니 소리와 부엉이 소리 딱따구리 소리 등 ‘자연의 소리’에 대해 설명해준다. 도시 사람들이 혹시나 낯선 소리에 놀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산속마을에서 하룻밤을 지낸 다음 날, 아침밥을 먹으면서 고라니 울음소리를 들었다며 신기해하는 손님이 많다. 성대가 발달하지 않은 고라니 울음소리는 참으로 낯설고 신기하다. 차 소리 등 인공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 별들이 무수히 반짝이는 시골마을 한복판에서 책을 읽으면서 묵는다는 것은 무척 즐거운 일이다.
사람 냄새가 나는 책방, 돌쩌귀가 닳는 책방을 꿈꾸며
최근 들어 몇몇 손님이 드라마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에 나오는 책방 같다고 말했다. 드라마는 잘 보지 않는 터라 무슨 말인지 모르다가, 도대체 어떤 책방이 나오나 궁금해서 찾아보았다. 드라마 내용은 접어두고, 정말 그 드라마에 나오는 책방은 시골에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책을 읽고 토론하고, 사람 사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내가 꿈꾸는 책방도 그런 책방이다. 사람 냄새가 나는 책방, 마을 사람들이 오다가다 들르는 곳, 멀리서 책방을 찾아오는 곳 말이다. 우리는 조용히 알음알음 입소문으로 알려지는 책방이 되길, 발맘발맘 사람의 발걸음이 하나둘 보태져 즐겁고 행복한 책방이 되길 바란다. 고려산 진달래꽃으로 온산이 붉게 물드는 요즘, 낙조대 적석사 아래 연촌마을은 무척 조용하다.
◇우공책방 : 인천광역시 강화군 내가면 연촌길 77-10
010-2217-0989
블로그 : ‘강화도 우공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