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사영 백서사건의 토굴이 있는, 천주교 집단촌
지난 3월 23일 아직 잔설이 군데군데 남아있는 배론성지로 향했다.
처음 ‘배론성지’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외국어인줄 알았다. 그러나 알고 보니 순수한 우리말로 ‘배의 밑바닥’이란 뜻이란다.
충북 제천시 봉양읍 구학리와 백운면 경계에 주론산(903m)이 솟아있다.
이 산의 정상에서 정동 쪽으로 조백석골과 배론성지 골짜기가 내려다보이는데, 그 지형이 배의 밑바닥과 흡사하다.
배론성지(충북 제천시 봉양읍 배론성지길 296(구학리 623), 충북 기념물 제 118호) 한가운데로는 제천천의 상류인 두학천이 흐르고 있다.
조백석골 입구에 자리한 배론성지는 200여년 전 우리나라 초기 천주교 신자들이 종교 박해를 피해 숨어서 공동체를 이루며 살던 지역이다.
이들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화전을 일구고 옹기를 구우며 때로 목숨을 걸고 신앙을 지켜냈다.
배론성지라는 표지석 앞에 차를 주차시키고 그 앞에 보이는 ‘천주교원주교구 문화영성 연구소’를 둘러보는 것으로 배론성지 탐방을 시작했다.
안에서는 신부님 한분이 성지해설자원봉사자 10여분에게 교육을 진행하고 계셨다. 조용히 ‘지학순 기념관’을 둘러보고는 황사영 토굴로 향했다.
황사영 토굴이란 황사영이 피신하여 백서를 썼던 토굴이다.
황사영(1775~1801)은 다산 정약용의 셋째 형 정약종에게서 천주교 교리를 배웠다.
1801년 신유박해가 시작되자 이곳 배론으로 피신하여 토굴에서 조선 천주교회의 비극을 중국의 북경주교에게 호소하는 긴 편지를 썼다.
이 편지는 발각되고 말았다. 그는 대역무도 죄로 몰려 능지처참 당하였다. 이것이 ‘황사영 백서 사건’이다.
배론의 토굴은 황사영이 내려왔을 당시 옹기 저장고로 위장됐는데, 그는 8개월간을 이 굴에서 숨어 지냈다.
황사영의 백서는 현재 교황청 민속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현재의 토굴은 1987년 이원순 교수가 고증을 통해 복원한 것이다.
머리를 숙이고 기어들어간 토굴에서 깨알 같은 백서의 사진본을 읽으며 그 정교한 글씨와 장문의 절절한 내용에 저절로 숙연해 진다.
그 옆에 자리잡고 있는 신학당은 조그마한 초가집 한 채이다.
우리나라에서 최초의 신학교가 설립된 곳이다. 1855년 메스트로 신부는 성인 장주기 요셉의 집에 성요셉신학교(일명 배론 신학교)를 세웠다.
푸르티에, 프티니콜라 등 프랑스인 신부들의 지도 아래 10여 명의 신학생들이 교육을 받았다. 조선에서 최초로 서양 학문을 배운 이들이 사제의 길에 들어설 무렵 병인박해(1866년)가 발생했다. 두 신부와 장주기 요셉은 각각 서울 새남터와 충남 갈매못에서 순교했고, 신학교는 문을 닫고 말았다.
옛 신학교 건물은 한국전쟁 때 불타버리고 지금의 건물은 2003년에 복원한 것이다. 초기 형태로 지어진 성요셉 신학교를 2명의 신부 동상이 밖에서 늘 지켜보고 있다.
방안에는 무릎을 꿇거나 혹은 꼿꼿이 서서 천주학을 공부하던 당시 신학생들의 모형이 재현되어 있다.
신학교를 둘러보고는 그 옆에 있는 황사영순교현양탑과 그의 동상을 찾았다.
다시 입구 쪽으로 조금 더 가서 산으로 올라간 곳에 김대건 신부에 이어 한국인으로 두 번째 사제가 된 최양업(1821~1861) 신부의 묘와 그를 기리는 조각공원이 있다.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난 최양업은 1836년 모방 신부에 의해 최방제, 김대건과 함께 조선인 성직자 양성을 위한 신학생으로 선발되었다. 마카오에서 유학 한 후 1849년 중국 상해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러나 몸을 돌보지 않고 전교활동에만 몰두한 나머지 1861년 식중독과 과로로 인한 장티푸스로 세상을 떠났다.
최양업 신부는 성요셉 신학교 산기슭에 묻혔다. 배론성지에는 최양업 신부를 추모하는 조각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앞 쪽으로 나오니 ‘약속의 땅으로 가는 길(인생 여정)'이라는 기도문이 새겨진 비석이 있다.
‘인생길은 순례의 길 서두르지 마십시오. 인생여정에는 생로병사가 있습니다. 어느 과정도 생략할 수 없고 모두 거쳐야만 목적지에 이릅니다. 인생여정에는 지름길이 없습니다. 참고 견디면서 묵묵히 걸으면 반드시 약속은 이루어 집니다’
기도문을 가슴에 새기며 ‘미로의 기도 장소’에 이른다. 미로 같은 인생길을 걸으며 기도문을 반복한다.
그동안 상처받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앞으로 화합과 평등의 시대를 만들고 싶다는 염원을 품고 아직 잔설이 곳곳에 남아있는 봄날에 찾은 배론성지를 둘러보는 동안 차가운 날씨여서 온 몸이 얼었다. 허브 차를 파는 소박한 카페에 들어가 향기롭고 뜨거운 찻잔을 두 손으로 모아잡고 천천히 마신다. 어느 사이 꽁꽁 얼어붙어 있던 마음 한구석이 따뜻한 온기로 차오르며 편안해진다.
코로나가 잦아들고 가을이 오면 이 곳에서 실시하는 피정에도 참여해 보리라 마음 먹는다.
산그늘에 어스름이 내려앉는 배론성지를 뒤로하면서 한결 개운해진 몸과 마음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