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디아스포라’ 등 3가지 소장품 범주 설정
문화예술계 "주제 확정 위해 전문가 의견 모아야"
소장품 구입 전담 전문인력 확보 시급 지적도
인천시가 문화복합시설 ‘인천뮤지엄파크’ 국제설계공모 당선작을 선정하면서 인천시립미술관 건립 사업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기대가 모아졌다. 때마침 시가 시립미술관 소장품 확보를 위한 인천작고작가 작품구입에 나서자 미술관 방향성과 운영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여론에 불씨가 붙었다.
시는 지난 연말 미술관을 비롯 박물관, 예술공원이 들어서는 인천뮤지엄파크 설계 공모 결과에서 토문건축사사무소 컨소시엄의 '경관의 기억'(Memories of Landscape)을 선정했다. 기본·실시 설계권을 받은 이들 컨소시엄은 곧바로 설계에 들어가는 것이 가능한 상황이다.
한편으로 시는 ‘인천시립미술관 소장을 위한 인천작고작가 작품구입 공고'에 나서 이달 3일 작품 접수를 마쳤다. 시 관계자는 “이번 작품 구입은 시립미술관 건립이 시작됐음을 지역사회와 미술계에 알리는 의미”라고 밝히고 있다.
두 사업을 지켜본 지역 문화예술계는 인천시립미술관 건립사업이 본격화됐다고 반기는 한편, 미술관 정체성을 만들기 위한 논의에 지역사회가 함께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기본·실시 설계가 시작되는 시점인 만큼 △본질적인 미술관 주제설정 △이를 담보하는 소장품 구입 방안 △조직구성을 포함한 운영 방향 등을 놓고 지역사회가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또 이를 위해 공무원 조직을 넘어선 전문가 그룹 중심의 추진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 건립사업 어디까지 추진됐나
인천뮤지엄파크 국제설계 공모에는 국내외 건축가가 대거 몰려왔다. 17개국에서 82개 업체가 신청, 37개 작품을 놓고 심사가 진행되는 등 국제적인 관심이 모아졌다.
인천뮤지엄파크는 용현·학익 도시개발사업 1구역 사업시행자인 DCRE가 무상 기부한 미추홀구 학익동 587-53 일원의 부지 4만1,170㎡에 연면적 4만1,812㎡ 규모로 지어진다. 새로 건립되는 시립미술관을 중심으로 시립박물관이 이곳으로 확장 이전하고 예술공원이 더해진다. 사업비는 2,014억원 전액 시비다.
지난해말 설계 당선작이 확정됨에 따라 올초 기본·실시 설계에 들어가 2024년 건축공사에 착수, 2027년 5월 개관할 예정이다.
시는 지난해 ‘소장품 정책연구 용역’에 나서 소장품 수집 범주를 ‘인천 근·현대 미술’ ‘국내외 동시대 미술’ 그리고 인천특화 콘셉트로 ‘디아스포라’ 등 3가지를 정했다. 즉 인천미술사에 의미있는 작가·작품, 작품성이 검증된 동시대 작가의 작품, 그리고 디아스포라와 연관된 국내외 작가를 발굴하고 작품을 수집하겠다는 방침을 마련했다.
소장품 구입 첫 사업이 바로 인천작고작가 작품구입이다. 이달 3일 작품 접수가 완료됨에 따라 오는 4월 중 심사를 거쳐 6월엔 구입을 마친다는 계획이다.
시 관계자는 “검여 유희강 선생의 작품이 성균관대로 넘어간 사례가 있듯이 3가지 범주 중 작고작가 작품에 한해서는 빨리 구입을 시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며 “이번 예산은 2억에 불과, 필요하면 추경을 세우거나 내년부터 지속사업으로 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시는 빠르면 이달부터 운영방안에 대한 연구용역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또 연내 전체적인 방향성에 대한 세미나도 구상중이다.
□ 주제를 둘러싼 논란
시립미술관 건립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고유한 정체성을 어떻게 잡느냐에 달려 있다는 본질적인 출발에 대해서는 문화예술계가 일제히 동의를 보낸다. 방향성을 담은 주제의 중요성에는 모두가 공감하되, 어떤 주제로 가느냐 하는 대목에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인천 근·현대 미술’과 ‘국내외 동시대 미술’ 범주는 대체로 공감한다. 그러나 인천 특화전략으로 꼽은 ‘디아스포라’를 놓고는 찬반이 갈린다.
찬성하는 쪽은 이민의 역사를 가진 인천만의 특징을 녹일 수 있는 적절한 주제라고 푼다. 반대하는 쪽은 한정하는 범위가 좁은 개념인데다 원뜻이 가진 태생적인 불편함을 지적,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이종구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는 “미술작업에 대한 ‘형식’이냐 혹은 ‘주제’냐에 따라 범위가 확장되거나 한정될 수 있다”며 “예컨대 지난해 개관한 울산시립미술관은 ‘미디어시대의 예술’이라는 미술형식에 맞춘 테마를 잡은 결과 다양한 수용성을 일궈낸 사례”라고 설명했다. 이어 “주제에 포커스를 맞춘 ‘디아스포라’는 좁은 개념으로 보일 수 있으나 인천을 특화하는 데 적절한 주제라고 본다”고 풀었다.
반면 지역의 중견 예술가는 “디아스포라는 이미 전세계적인 이슈로, 이보다는 동아시아 중심으로 갈지, 전세계를 중심으로 할지 고민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주제를 예의 3가지 범주로 확정하지 말고 더 많은 논의를 이어가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또 지역 특화 주제도 하나를 고집하는 대신 복수로 가는 방안도 필요하다고 제기한다.
김창수 인하대 초빙교수는 “세계적 미술관 추세가 개방성을 주요 콘셉트로 잡고 있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짚었다. 이어 “콜렉션 후발 주자이면서 예산도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국내외 동시대 미술’ 보다는 ‘동아시아 미술’로 범위를 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냈다. 또 인천이 낳은 한국을 대표하는 미술사 연구자인 우현 고유섭의 사상을 계승·발전시키는 역할을 인천시립미술관이 해야한다”며 방안으로 우현홀 설치를 제안했다.
시 관계자는 “디아스포라가 원뜻을 넘어 다양한 사회문화적 이유에 따른 자발적 이주까지 개념이 확장되고 있고 특히 국내 미술관 중 디아스포라를 주제로 내세운 곳은 없다는 점에서 특화 전략으로 가능하다고 본다”며 “전체적인 미술관 운영 방향성을 논의하는 세미나를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 소장품 구입 해법은
시의 인천작고작가 작품구입 사업에서는 인천시미술관 건립추진위원회가 방향을 잡아주는 역할을 했다. 추진위는 소위원회를 구성하고 작고작가 기준 등을 마련하는 한편 공모를 제한했다. 그 결과 미술전문가로 구성된 ‘작품가치평가위원회’와 ‘작품가격평가위원회’, 그리고 ‘수집심의위원회’의 3단계 검증을 거치는 선정방식이 결정됐다.
지난 2017년 출범한 건립추진위는 인천시부시장을 위원장으로 당연직 3명과 미술분야 전문가 17명 등 20명으로 구성, 현재 2기 위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이번 구입사업에 대해 지역 미술계는 늦었지만 시작한 것은 다행이라고 짚는다. 그럼에도 상당수 문화예술 전문가들은 소장품 구입 사업을 전담하는 전문 큐레이터 확보가 시급하다고 조언한다.
건립추진위원회 한 위원은 “작품 구입을 추진할 전문인력이 부재하기 때문에 이번에는 그 역할을 추진위가 맡게 됐다”며 “작고작가 리스트부터 작가 작품별 가치 등 전반적인 파악과 기준에 따른 선택이 이루어져야 함에도, 이번에는 응모한 작가·작품을 대상으로 상대평가를 하는 방식이라 아쉬움이 있다”고 지적했다.
지역의 한 문화기획 전문가는 “작품 구입의 제 1원칙은 전문성이 담보돼야 한다”며 “지역사회의 여론이나 특정집단의 압력이 작동할 수 있으므로 휘말리지 않으려면 전속 큐레이터 확보가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김상원 인하대 교수는 소장품 구입과 관련한 조례 제정을 적극 제안했다. “조례에는 큐레이터와 위원회 설립, 작품구입, 전시방향 등을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어 작품구입 방안에 대해 “한 트랙은 큐레이터를 선임 후 전문적인 안목을 기반으로 작품구입에 나서고, 다른 한 트렉은 작가 발굴을 위한 기획전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면 상대적으로 싼 가격에 좋은 작품을 구입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부연했다.
□ “시급한 것은 전문인력 구성”
시립미술관 건립사업을 전담하는 시 부서는 문화기반과 시립미술관팀으로 팀장 1명과 학예사 2명으로 꾸려져 있다. 이들 인력으로는 개관을 위한 각종 조례 제정과 기본·실시 설계에 따른 행정적 업무를 수행하기에도 벅찬 실정이다.
소장품 구입사업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큐레이터 역할의 전문 학예사 선임이 우선돼야 한다고 한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되는 이유다. 특히 미술관 방향성 논의에 맞춰 전반적으로 운영을 끌고 갈 관장 선임이 시급하다고 짚는다.
지역의 한 원로는 “300만 인구를 가진 도시임에도 미술품 콜렉션이 한점도 없는 곳”이라고 지적, “국제도시를 지향하기 위해서는 문화예술적인 지향에서 시작, 국제적인 안목을 지닌 인물을 찾는 것이 시급하다” 강조했다.
그럼에도 관련 부서에 대한 시의 인력충원 전망을 그리 밝지 않다. 시는 올해 행정안전부에 정원 충원을 요청했으나 단 한명도 확보하지 못했다.
시 담당자는 “올해 사업을 제대로 추진하려면 조직을 행정팀과 학예팀으로 나눠 확대하고, 학예팀을 아우를 수 있는 관장이 먼저 선임돼야 한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 장소적 문제 등 이의제기
인천뮤지엄파크에 미술관과 박물관이 함께 조성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의견이 여전히 일고 있다. 두 기관이 들어서기에는 공간적으로 너무 협소, 이도 저도 아닐 수 있다고 우려하는 시각이다.
한 문화기획자는 “한번 찾은 뒤 두 번 다시 갈 필요가 없는 미술관이 되지 않으려면 다양한 기획의 전시를 지속적으로 열어야 한다”며 “시민들이 미술관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도록 인천뮤지엄파크 부지 전체를 미술관으로 조성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더 나가 시민 접근성 문제 삼아 이의를 제기하는 의견도 나온다.
또 다른 문화전문가는 “선진도시에서는 미술관·박물관이 접근성이 우수한 도시 중심지에 입지, 공공의 공간, 만남과 소통의 공간 기능을 수행한다”며 “시가 적극 추진 중인 제물포 르네상스 프로젝트에 포함, 인천내항에 조성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을 제안했다.
신용석 개항박물관 명예관장은 지역이라는 경계를 탈피, 세계적인 지향으로 갈 것을 주문했다. “인천의 장점은 수도권 2,500만 인구를 배후에 지니고 있으며 인천공항의 연간 출국인구가 1억명에 달하는 등 좋은 입지를 지닌 도시”라며 “단순히 미술관에서만 머물지 말고 뮤지엄숍, 기념품숍, 식당이 있는 복합공간, 소장품 판권을 기반으로 하는 사업도 연계하는 등 다양한 콘셉트로 폭을 넓히는 국제적인 수준으로 가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