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장소의 조형물, 그 현장과의 소통이 긴요하다
[인천 공공미술 다시 보기] (4) 공공미술 현장의 중요성 - 안민욱 작가
얼마 전 평택역에 새로 생기는 한 전시 공간을 답사차 들렀다. 이곳은 평택문화재단 생활문화거점지원사업에 선정되었는데 주변 지역개발을 맡은 건설사의 후원도 동시에 받게 되었다. 시작부터 공간준비에 관여하기도 했는데, 그날은 공간, 기업 대표, 전시 참여작가들 그리고 대표와 관계한 건축학과 교수도 자리에 함께했다.
공간을 다 둘러본 후 식사 자리에서 한 교수가 이야기를 꺼냈다. 기존에 그가 성공 사례라고 생각하는 예시를 몇 가지들며, 세계적이고 유명한 예술가들을 불러서 상징적인 조형물 작업을 해야지 지금 지역을 답사하고 연구하는 현재의 접근 방식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그 나름대로 진심 어린 걱정이었다.
학교에서 도시설계와 건축을 공부하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가 한 말이라 내내 실망스러웠다. 장소와 공간의 맥락을 찾아보는 것이 왜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는지 대학시절 한 수업을 떠올려 보게 되었다.
미술과 현장
2008년에 다니던 학과에 '미술과 현장'이라는 수업이 새로 개설되었다. 그동안의 미술 교육이 시장 중심적이고 다소 동시대 예술 현장과 떨어져 있다는 교수진의 반성으로 결정된 일이었다. 필자 또한 미술을 전공하면서도 전시장이나 미술관에 가서 접하는 작품들을 이해는커녕 감상도 하기 힘들던 시절이었기에 반겼던 수업이었다.
하지만 수업의 취지와 개인의 감응과는 다르게 첫 학기가 지나고 대다수 학생은 수업을 기피했다. 이유는 현장이 우리가 예상했던 미술 현장에 가까운 전시장이 아니고 학교가 위치한 북아현동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결과물을 제시하기보다는 과정, 수행적 태도가 강조되었다는 것에 이물감을 느낀 학생들의 호불호는 극명하게 갈렸다. 아마도 근사한 작업을 깨끗하고 하얀 전시장 벽에 걸어야 하는데 그 것과는 다른 별개의 불필요한 일이라고 느꼈을 것이다.
전체 분위기야 어떻든 그동안 놓치고 있었던 요소들, 현재 사는 주변을 다시 살핀다는 것에 개인적으로는 큰 흥미를 느꼈었다. 맥락이 지워진 전시장의 흰 벽과는 대조적으로 골목길을 누비며 마주한 벽의 질감, 촉감 그리고 시간의 흔적은 그곳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 같아 매력적으로 보였다. 활동이 작업실 안에서 함께 이용하는 삶의 공간으로 확장되자 작업의 아이디어를 전개할 때 개인 관심사 위주로만 생각하던 태도에서 좀 더 사람들과 나의 관계 모색으로 변했던 것 같다.
졸업을 앞두고 있던 당시의 나는 예술가가가 되고 싶은데 주변에서는 예술을 할 것 같지 않아 보인다는 말을 자주 듣게 되었었고 예술의 모습을 찾아보는 <예술가처럼 보이게 만들기_2008>프로젝트를 첫 작업으로 시작하였다.
예술가로 보이고 싶은 참가자를 마을에서 찾아 프로젝트로를 진행하기 위해 설문지를 만들었고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예술에 대한 이미지를 조사하였다. 사람들은 하는 일과 소속한 집단 교육 정도에 따라 조금씩 결과는 차이가 났지만, 공통으로 예술은 어렵고 카리스마적인 흑백 이미지 속 백인 남성 천재가 하는 특별한 것이라는 생각하고 있었다. 참여했던 주민을 수집한 내용대로 예술가처럼 보이게 이미지 촬영을 하고, 예술을 한다면 꼭 알아야 하는 용어프린트를 만들고 유형에 따른 예술가의 모습을 모아 예시로 보여주며 프로젝트는 마무리가 되었다.
고백하자면 다소 들뜬 마음으로 진행한 첫 프로젝트였음에 모든 게 어설프고 낯설었다. 하지만 혼자서 생각하고 계획하여 결과물에 대한 평가를 받아오던 기존 방식과는 다르게 사람들과 대화하고 그 주제에 대해 고민하면서 계획을 수정하고 다음으로 나아가는 작업방식은 혼자서는 생각하지 못했을 문제들을 알게 해주었다. 참여자가 대상화될 수도 있다는 문제와 일반적으로 주변 사람들은 내가 궁금한 ‘예술’ 그 자체에 별 관심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참여자와 함께 관심을 갖고 진행할 수 있는 다음 프로젝트를 구상해 보게 되었다.
미술과 현장이라는 수업과 함께 시작한 아르스 프로젝트는 두 개의 시즌으로 2008년부터 2016년까지 아르스카페, 알스비안 나이트등 총 9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2020년 이후 잠시 멈추었던 가상의 예술 프로젝트를 현실화하여 아르스페이스(arsPace)라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우리들의 장소, 공간 그리고 예술
최근 인천 송도 센트럴파크 공공미술 현장을 연구자들과 함께 방문했다. 코로나19 이후 낯설어진 많은 인파 속에 자리 잡은 조형물들이 그것들의 예술적 성취와 상관없이 푸른 날씨와 함께 조화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원하게 내뿜어지는 세 아이 동상의 물줄기를 보며 애써 긍정적인 이야기를 만들어 일행들과 나누긴 했지만, 공공장소의 조형물들이 다소 동시대 미술처럼 느껴지지 않는 지점에서 조금은 씁쓸해졌다.
우리가 쉽게 볼 수 있는 공공장소의 미술로 여겨지는 조형물들은 그 자리에 놓이기 전까지 이용자들과 충분한 논의와 대화를 거치지 않고 자리했을 가능성이 크다. 소수의 건축주나 장소를 담당하는 공무원들 혹은 어떤 이유에서건 법으로 규정되어 있어서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제작 의례하고 위치시키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그 예술처럼 안 보이는 과정과 결과물의 피해는 고스란히 관여하지 못한 우리에게 돌아온다. 출퇴근길 혹은 공원에서 마주하는 예술이 아닌 미술품들 때문에 다시 미술에 대한 오해가 생겨나고 그것에 어떤 기회가 되어 관여하게 되었을 때도 쳇바퀴 돌 듯 또다시 그런 미술품들을 만들어 놓을 가능성은 커지게 된다. 세상 모든 일처럼 예술도 혼자 만들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마을을 답사하고 신이 나서 이런저런 계획을 세우던 학생들 앞에서 이 마을의 담벼락이 너희 개인의 도화지가 아니기 때문에 나가서 충분히 마을 주민의 이야기를 들어야 할 때라고 하셨던 교수님의 말씀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건 지금의 공공예술 현장에서도 유효해 보인다. 그리고 우리는 그동안 무관심했던 쓸쓸한 예술에 더욱 관심을 두고 그것에 관여할 사람들에게 잘 들으라고 이야기해 주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들의 장소와 공간을 연구하고 조사하는 일이 쉽게 스킵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