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족의 시작점, 내 마음의 정류소 - 진선미예식장

[인천 화가의 인천 이야기] (2) 공지선 작가 - ①가족의 탄생, 진선미예식장

2024-05-28     공지선
인천이라는 특정한 공간에서 성장하고 경험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들은 그 자체로 많은 이야기들을 간직한다. 어린 시절의 풍경, 변화하는 도시의 모습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변해가는 삶은 프레임 속에 고스란히 박제되어 있다. 단순한 추억 떠올리기를 넘어서, 사진 한 장 한 장이 갖는 의미와 그 시간 속에서 성장해온 필자와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려 한다.

 

버스를 타고 내리는 일은 일탈의 시작이었다.

단순히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한 운송수단이 아닌 어른이 되고자 하는 열망을 불러일으켰다. 처음으로 내 몫의 승차 토큰을 돈 통에 넣었을 때 나는 비로소 제 몫을 하는 사람이 된 느낌이었다. 엄마의 무릎이 아닌 의자에 오롯이 혼자 앉게 되었을 땐 어른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물론 여전히 창밖을 내다보려면 고개를 배꼼이 들어야 했고 흔들거리는 손잡이를 쥐기엔 턱없이 키가 부족해 까치발을 든 채 만세를 해야 했지만 말이다.

아빠가 쉬는 날엔 항상 승용차를 타고 이동했으므로 버스를 탔을 땐 주로 엄마와 함께였다. 대부분의 목적지는 십정동에 있는 삼촌네나 작전동에 있는 이모네 혹은 부평에 있는 동아백화점이었다. 모든 목적지가 신이 났지만 부평으로 가는 날은 더욱더 설레었다. 심지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빨간색 모직 재킷과 치마를 입다니. 어디 근사한 곳에 가는 것임에 틀림없었다.

 

사랑해

 

당시 우리 집에서 부평에 가는 노선은 지금은 폐선 된 67번과 현재 노선이 조금 변경되어 운행 중인 24번이 있었는데 무엇이든 먼저 오는 버스에 승차했다. 어김없이 엄마의 무릎에 앉아 앞좌석의 등판을 손으로 꼬옥 쥐고 창밖을 보고 있노라면 정신없이 바뀌는 창문 너머의 풍경이 마치 멀리 여행이라도 가듯 내 발을 절로 흔들리게 했다. 어떤 풍경들은 봐도 봐도 낯설어 버스 스피커 너머로 나오는 안내방송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현대아파트 - 새사미아파트 - 명신여고 - 한양 쇼핑 - 혜성플라자 - 부평여자고등학교 - 부평시장 - 부평역 - 진선미예식장.

예식장 안은 북적북적했다. 기분 좋은 일이라 그런지 상기된 목소리들이 축하를 하기 바빴다.
그런 날은 내게도 기쁜 날이었다. 예쁜 옷을 입고 귀걸이가 달린 머리띠를 하고 앞코가 동그란 에나멜 구두를 신었다. 하얀 드레스를 입은 신부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공주님 같았다. 그런 날에는 아빠도 정장을 멋들어지게 차려입고 엄마도 화려한 원피스에 가죽 핸드백을 들었다. 나는 그런 엄마아빠를 보며 어떤 만화영화 속에 나왔던 귀족들을 떠올렸다.

 

가족의탄생_새신랑_210x335mm_oil

 

진선미예식장은 내게 익숙한 공간 중 하나였다. 대부분의 친척들이 인천에 살았기 때문에 결혼식에 간다고 하면 어김없이 진선미예식장으로 향했다. 어린 날엔 결혼을 한다면 무조건 진선미예식장에서 해야 하는 줄 알았다. 예배당 같은 의자가 단상을 향해 줄지어 있었고 알록달록한 버진 로드가 폭신하게 깔려있었다. 결혼식에 다녀온 날은 어김없이 집에 돌아와서 앨범을 펼쳐보았다. 우리 부모님이 식을 올린 곳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결혼식 전날까지 술을 많이 마셔 숙취 때문에 피곤해 보이는 프레임 속의 아빠를 보며 내가 존재하지 않는 우리 가족의 시작점을 그려보곤 했다.

 

가족의탄생_새신부_405x270mm_oil

 

당시에는 뷔페랄 것이 없어서 식을 올리고 나와 인근의 큰 식당에서 식사를 하셨다 한다. 그래서인지 결혼식장 인근엔 큰 갈비탕 집이 있었는데 진선미예식장 옆에도 갈비탕 가게가 크게 있었다고. 국수보단 갈비탕이었지. 멀리서 오시는 손님들을 대접하기 위해 준비한 갈비탕은 당시 최고의 접대 음식이었다고...

진선미예식장은 부평 테마의 거리와 문화의 거리를 나누는 가운데 지점 중앙에 있었다. 인근을 지나가는 버스정거장에는 진선미예식장이라서 쓰여있었고 택시를 타고 이동할 때도 진선미예식장에 가 달라 하면 기사님께선 군말없이 데려다 주셨다. 부평에 랜드마크격이었던 이 건물은 언제부턴가 웨딩홀의 기능을 상실한 채 층마다 새로운 가게들이 들어서 저마다의 다른 이야길 써 내려갈 공간이 되었다.

진선미예식장은 문을 닫은 후에도 한참을 진선미예식장으로 남았다. 내 가족의 시작점. 긴장한 채로 발걸음을 옮기던 아빠의 구둣발 소리와 무거운 드레스를 입고 수줍은 미소를 내비쳤던 엄마의 모습. 그리고 프레임 속 내가 모르는 수많은 혈육의 어린 얼굴들.

 

가족의탄생_메아리_240x335mm_oil

 

펼쳐본 앨범에서의 가족은 항상 예식장의 어느 한 지점에서부터 시작됐다. 환상과 추억의 어느 지점에 있는 그 공간, 그리고 지금은 사라졌지만 오랫동안 정류장으로 남아있던 진선미예식장의 메아리처럼 나의 시작점도 그 어딘가에서 부유하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