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와 갈매기가 이어주는 만남의 광장, 구읍뱃터
[인천유람일기] (130) 영종도 구읍뱃터 일대 - 유광식/ 시각예술 작가
폭염 예보에 부랴부랴 집의 냉각시스템을 점검하게 된다. 자연의 화력이 거세진다는 소식이 매 여름마다 들려온다. 얼음이 녹고, 홍수와 가뭄은 함께 블루스라도 추는 듯이 빈번하게 반복된다. 환경은 변화무쌍한데 인간의 입장에서는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다. 기술이 좋아진들 삶이 나아진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변화 앞에 무력할 따름이다. 지진은 내 동공에만 일어나는 줄 알았는데 이젠 가까운 일이 되어간다. 과열된 마음을 잠시 식히고자 영종의 바다로 향했다.
먼 옛날, 육로와 영종을 이어주는 첫 다리는 배편이었다. 지금이야 배 뿐만 아니라 자동차, 철도, 비행기로도 접안할 수 있다. 오늘날은 기다란 해상 활주로를 구축한 인천국제공항 덕분에 사람과 물자의 이동이 가히 폭발적이다. 구읍뱃터 부근을 찾아 장소의 의미를 조망해보며 걸었다. 혹시 날 수만 있다면 제비 혹은 용이라도 되어 건너편 물치도에도 다녀올 수 있었겠지만, 상상만으로도 나쁘지 않다. 씨사이드파크 영종역사관 아래에서 시작하여 걸어본다. 주말을 맞이한 주차장은 이미 아슬아슬하게 꽉 차 있었다. 매표소 입구에서 우측 해안을 따라 걸었다.
구읍뱃터 일대는 얼마 되지 않은 시절까지 섬이었다. 이곳은 과거 왕의 피난로였던 만큼 중요한 곳이었다. 1시간마다 월미도를 잇는 배편(성인 편도 3,500원)이 갈매기의 안내를 받아 승객들을 태우고 있었다. 영종진공원은 과거 강화도조약의 빌미가 되었던 운요호 사건의 현장으로, 많은 희생이 있던 자리이다. 뱃터 옆으로 그 흔적을 찾기 무색하지만, 큰 느티나무(수령 300년 이상)가 무언가를 알고 있는 듯 무게감 있게 자리하고 있었다. 자갈 해변에서는 조개를 캐는지 이곳의 비밀을 캐려는지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굽은 등을 하고는 무언가에 몰두하며 쪼그려 앉아 있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없었던 해안 데크길이 이번에는 설치되어 있었다. 그 너머로 언제 지었는지 칸칸이 집들(관광호텔)이 많았고, 이용객들은 뱃터 일대와 공원을 여유롭게 산책하는 듯 보였다. 최근에는 공원 야외무대에서 생태환경 야외 미사를 드리기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옛 선박수리소 구역을 벗어나니 월미도 못지않은 거리 풍경이 나타난다. 이젠 뱃터 이상으로 즐길 거리가 많아졌다. 관광어시장, 카페, 해산물 요릿집, 낚시, 체험 프로그램 등의 다양한 요소가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것 같다. 이에 더해 내년 완공 예정인 제3연륙교가 이곳을 좀 더 만개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청라와 영종을 잇는 제3연륙교에는 보도와 자전거길, 해상전망대가 갖춰진다고 하니 완공 소식을 기다리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 중심에 구읍뱃터가 있다. 이곳은 젊은 층의 유입이 많고, 전망 좋은 호텔과 해변, 자전거길과 산책로, 다양한 행사 등 여가의 베이스캠프로 충분히 활약하고 있다. 안 그래도 뱃터 주변 갈매기들의 눈빛이 강렬하게 빛나던 이유가 있었다.
과거 뱃터와 육지(영종도) 사이에는 만세교가 있었다. 만세교는 제3연륙교 공사를 통해 부활한 느낌이다. 다리가 완공되면 많은 사람이 ‘만세!’를 외치지나 않을지 모를 일이다. 다리 건설 소식은 지역에서도 주된 관심사인데, 직접 걸어서 해상을 건널 수 있다고 하니 도보 산책로나 자전거, 혹은 마라톤 길로 급부상할 것이다. 왕이 건너기 위해 마련된 길을 이제는 국민이 왕처럼 건너게 되었다. 새파란 하늘이 바다를 거울삼아 얼굴을 빠뜨린 듯, 날씨가 흡사 여름을 닮아 있었다. 길에서 잠시 멈춰, 체인점 간판만 바꾸고 예전 모습 그대로 운영 중인 한 카페에서 매실레모네이드로 몸속에 폭포수를 채워 넣었다. 그리고 멀리 제3연륙교 건설 작업의 나머지를 영종도 제비에게 맡겨 둔 채 돌아 나왔다. 향후 무언가 들어설 각종 터는 식물정원으로 당분간 남아 있을 것이다. 조만간 한적했던 뱃터 주변은 교통, 관광, 역사의 요충지로 빠르게 성장하여 월미도 이상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많은 사람이 자연도 영종을 생각할 때 맨 처음 열고 들어가는 대문으로 구읍뱃터를 손꼽으면 어떨까 싶다. 그 어딜 찾아봐도 초인종이나 대문 손잡이가 보이진 않지만, 과거 남의 대문을 내리찍은 외세에 맞서 희생한 선조를 생각하는 시간도 함께 가져 봤으면 한다. 기억해야 할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이지만 어찌 되었든 AI에 다 맡겨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 몸이 반응하고 사색하며 행동하는 6월이 무더위에 무뎌질 만도 하지만, 그래도 노력해본다. 온갖 발전에 뒤덮이는 거친 태평암(영종진) 주변으로 아랑곳하지 않고 자라는 한 그루 상록수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