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오랜 우물이자 내 세상의 중심지 - 가좌동
[인천 화가의 인천 이야기] (2) 공지선 작가 - ② 첫 세상 가좌동
이 작은 땅, 가좌동은 내 발이 닿은 최초의 땅이자, 세상을 마주한 첫 창문이다. 물길이 닿은 서구에서 가장 안쪽, 부평구와 인접해 있는 이 작은 동네는 어린 내게 가장 큰 세계였으며, 모든 경험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봄날의 따스한 햇살이 어떻게 대지를 향기롭게 하는지, 여름 비가 어떻게 뜨거운 아스팔트를 식혀주는지, 가을 하늘 저녁놀이 어떻게 마음을 물들게 하는지, 겨우내 내뱉는 따뜻한 호흡이 어떻게 온기를 나누는지, 모두 이곳에서 알게 되었다.
화단에 심어진 꽃에서 색을 배웠고 그 옆에 높게 자란 대추나무에서 열매를 따며 달콤함을 나눴다. 매일같이 들렸던 길건너 서점, 경인문고는 내게 종이 위로 세상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놀이터의 뜨거운 미끄럼틀에 피부를 데이며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떠나보내며 만남과 이별을 경험했다.
대학을 제외하고 성장하며 겪은 입학식과 졸업식도 모두 이 동네였다. 모든 학교가 걸어서 20분 이내 거리에 있었는데, 유치원으로 운영했던 꽃동산 미술학원은 단 5분 거리였고, 수영장과 작은 동물원이 있던 ‘가정초등학교’는 15분, ‘나는 효녀입니다’라고 인사해야 했던 동인천 여중은 20분 거리였으며, 마지막으로 집에서 바로 코앞이었던 가림고등학교는 단 5분 거리였다. 버스를 타고 등교하는 친구들을 동경하기도 했지만 집이 가까웠던 것은 긍정적인 면이 더 많았다. 예를 들면 통학 시간이 짧다는 점과 체력 보존에 용이하다는 점. 잠꾸러기인 내게는 제일 중요한 이점이었다.
시간이 흘러, 재개발이라는 변화의 물결이 이 동네를 휩쓸고 갔다. 많은 것들이 사라지고 새로운 것들이 자리를 차지했다. 어린 시절의 장소들이 모습을 감추고, 대신 새로운 건물과 공원이 들어섰다. 흐른 시간만큼 내게 찾아온 변화들도 컸다. 대학에서 실내건축을 전공하고 수많은 직장을 전전하며 다른 지역들을 배회했다. 지하철을 타고 나가는 세상에서 나는 뿌리를 잃은 채 시간들 사이를 맥락 없이 미끄러져만 갔다.
뒤늦게 다시 꿈을 잡았을 때 돌아온 이곳은 낯설었다. 어린 시절 무서워서 가보지도 못했던 코스모화학의 공장단지가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 것을 보며 놀랐다. 2019년에 열린 내 두 번째 개인전 <the body is used for life, and the life is engraved on the body>는 이렇게 우연치 않은 계기로 가좌동의 COSMO40에서 진행되었다. 한 달 남짓한 기간 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잊었던 친구들, 스쳤던 인연들, 과거를 회상하는 이들. 그들과의 대화에서 사라진 건물들과 사라지지 않은 기억들을 느꼈다.
가좌동은 나의 오랜 우물이자 내 세상의 중심지이다. 회상할 수 있는 첫 기억의 발생지이며 여전히 고여 있는 가장 안전한 거처이다. 과거와 달리 많은 것들이 변했지만 나의 기억 속에는 여전히 그 옛날의 모습이 선명하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그 기억을 따라 걸으며 과거와 현재를 잇는다. 변화된 모습 속에서도 가좌동의 정체성과 내 정체성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매일같이 느낀다.
나의 첫 우물이자 가장 깊은 우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