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금연의 행운

[소통과 나눔의 글마당] 김병태 / 인천노인종합문화회관 소통의 글쓰기반

2024-08-28     인천in
시민의 신문 <인천in>이 인천노인종합문화화관과 함께 회원들의 글쓰기 작품(시, 수필, 칼럼)을 연재하는 <소통과 나눔의 글마당>을 신설합니다. 풍부한 삶의 경험에서 우러나오고, 글쓰기 훈련을 통해 갈고 닦은 시니어들의 작품들을 통해 세대간 소통하며 삶의 지혜를 나눕니다.  

 

 

회사에 안내문이 붙어있다. 그걸 보고 모두 난리가 났다. 금연 서약을 쓰고 회사로부터 금연 장려금을 받은 사원들이 흡연하다 단체로(4명) 사장님한테 흡연현장이 발각되었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처벌에 대한 글도 실려 있었다.

이전에는 회사 내에서 마음대로 흡연해도 아무런 제재가 없었으나 사회 기조가 금연의 추세로 돌아가기 시작하니 발 빠른 우리 사장님이 선수를 친 것이다. 자진 금연 각서를 쓰고 금연하는 자는 무조건 10만 원의 회사 장려금을 주지만, 이를 위반할 때 장려금을 토해 내고 회사의 진급 평가에도 반영하겠다는 의지를 밝히신 것이다.

그때 금연 장려금 10만 원은 큰돈이었다. 봉급이 백만 원 안쪽일 때이다. 너도나도 공짜라 생각하고 총무과에 가서 자진이 아닌 거의 의무적으로 각서를 썼던 것 같지만 형식은 자진해서 쓰는 각서였다.

그런데 금연 각서를 쓴 초창기에는 한 달간 유예기간을 두어 담배를 피어도 눈감아 주었으나, 한 달 후 총무과에서 단속한다는 공문이 붙고 나서는 금연자들이 음성흡연자로 변해 버렸다. 나 역시 후자에 속해 숨바꼭질하듯 숨어서 피었다. 그러다 4명이 지적을 받고 온종일 학생들처럼 총무과에서 반성문을 작성했다. 다시는 “흡연하지 않겠다”, “흡연 시 퇴사 처분을 받겠다”는 각서를 쓰고서야 용서를 받을 수 있었다. 이런 일이 몇 번인가 더 있어 몇 사람이 곤욕을 치렀다.

나 역시 금연을 하겠다는 각서를 쓰고 장려금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는 시점인데, 아직도 음성적으로 흡연을 하고 있으니 매일 죽을 맛이다. 회사는 회사대로 금연에 대한 포스터를 붙이고, 교육을 지속해서 했지만 음성적인 억지 금연자들은 기회만 있으면 흡연하려고 했다.

나 같은 경우 공무과 소속이었기에 현장 한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옥상도 가고, 지붕도 올라가야 하고, 화장실도 점검하여야 하므로 몰래 흡연할 기회가 참 많았다. 이 핑계 저 핑계로 남들이 안 보이는 곳을 찾아 끽연하고는 표식을 없애기 위해 껌을 씹고, 은단을 먹고, 용각산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손을 비누로 깨끗이 닦는 등 흔적 없애려고 기를 썼다. 지금에 와서야 그렇게 해 봐도 회사에서 다 알고 있는데, 속 보이는 짓을 하고 다녔다는 생각에 미치면 불현듯이 낯이 붉어진다.

하지만 내가 금연을 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회사 때문만은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회적으로 금연의 풍조가 많이 성숙하여 있었고, 아들이 고등학생이었는데 제 엄마와 단합하여 집안에서 담배 냄새와 연기가 싫다고 담배를 못 피우게 하니 내가 담배를 피울 수 있는 공간은 차밖에 없었다. 

아침 출근 때 차에 앉자마자 담배곽을 찾아, 한대 쫙 빨고 나서 시동을 걸고 회사로 향한다. 회사 주차장에서는 담배를 피우다 적발될 수가 있으므로 회사에 거의 다 가서, 길거리에서 차를 세우고 다시 한대 쫙 빨고, 회사 주차장으로 가서 주차하고는 껌 하나를 꺼내 질겅질겅 씹으며 출근한다. 왜 모를까, 그렇게 흡연하면 온몸에서 담배 냄새가 난다는 것을, 입에서만 안 나면 되는 거로 착각한 것은 지금도 웃기는 일이라 생각한다.

또 한 가지는 사람들의 심성이 참 고약함을 느낀 것이다. 동료들은 굳이 담배를 누가 끊었다 하면, 회식 자리라든 술자리에서든 한 대 피워 보라고 불까지 붙여 주어 입에 물려까지 주는 것이었다. 고약한 마음보는 자기들이야 장난이겠지만 당하는 사람은 죽을 맛이라는 걸 모르는 것 같았다. 직접 내가 당해 보니 정말 지랄 같았다. 나도 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은 걸 참고 있는 걸 모르는지 막무가내로 입에 물려주니 정말 참기 힘들었다. 어이가 없었다.

내가 금연을 하고 한 삼 개월이 지난 일요일 날이다, 집안에는 아무도 없다. 아들은 도서관에 갔는지 없고, 아내도 친구한테 갔는지 없다. 갑자기 담배 생각이 나서 옷이며, 책상을 뒤져도 담배가 없어 지갑을 들고 아파트를 나와 아파트 입구에 있는 <성신마트>에 가서 청자 한 갑을 샀다. 아파트에 들어가는 입구 계단에서 비닐을 벗겨 내고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라이터로 불을 붙여 쭉 빨다 생각하니 ‘내가 담배를 끊었는데’ 하는 생각이 들어 화들짝 놀라 깨어나 보니 침대에서 낮잠을 자다 꿈을 꾼 것이었다. 평상시 얼마나 담배가 피고 싶었으면 꿈에서 담배를 피웠을까...

그런저런 우여곡절 속에서 지내다 보니 벌써 금연한 지가 30년이 되어간다. 그런데도 흡연의 생각이 난다. 가끔은 날이 굿거나 마음이 울적할 때, 혹은 속상한 일이 있을 때는 한대 쭉 빨고 싶다는 간절한 희망이 들때가 있다고 하지만, 아서라 그 유혹을 참지 못하고 한 대 입에 무는 순간 30년 전으로 돌아간다. 그때 함께 금연을 했던 동료 몇몇은 그 순간을 참지 못해 지금도 흡연을 한다.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지금 흡연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때 잘 참고, 잘 끊었구나, 그때 못 끊었더라면 지금의 흡연자들과 같은 찬밥 신세, 고집쟁이 늙은이, 천덕꾸러기 대우를 받을 텐데. 회사의 배려와 집사람과 아들의 권고로 금연하게 된 것을 지금은 무지 감사하게 생각한다. 학창 시절 쉽게 배운 담배, 40대 금연하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았던가. 생각할수록 그때 금연한 걸 행운으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