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들이 철썩이는 검단의 공중정원, 아라보타닉파크
[인천유람일기] (135) 원당동 아라보타닉파크 일대 - 유광식/ 시각예술 작가
기나긴 폭염이 원망스러울 따름이다. 올해 여름은 두고두고 생각날 것 같다. 부디 건강을 해친 사람이 없기를 바란다. 덥기까지 한 상황에 화마로 인한 참사도 많은 것 같다. 화재 사고는 늘 조심해야 하겠고, 전기차량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생긴 것도 놀랄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매일 1건 정도 오는 'OOO 씨를 찾습니다!'라는 메시지도 안타깝고 뜨거운 사건이 아닐 수 없다. 하루하루가 고된 건 알고 있었지만, 자꾸만 오염이 된다면 갑갑해지기 마련이다. 잠시 휴식의 정원 아라보타닉파크로 피크닉 같은 산책을 나서 본다.
고산(高山, 123.4m)을 기준으로 좌측은 원당동이고 우측은 아라동이다. 원당동은 하늘에 제를 지내는 당이 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 동네에는 20여 년 전후로 KAL아파트와 어울림, e-편한세상이 터줏대감 노릇을 하고 있다. 검단신도시 개발로 이제는 이보다 더 높은 아파트가 지어졌고 교통도 개선되어 내년 여름 지하철 개통을 앞두고 시험 운행 중이다. 원당동행정복지센터 옆쪽으로 겉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공원이 하나 있다. 이름은 아라보타닉파크이다. 순우리말로 지었으면 어땠을까 하지만 공염불 같은 소리라는 걸 안다. 굳이 바꿔 보자면 원당식물공원 정도 될 것 같다.
입구에 서면 꽤 높은 계단이 앞을 가로막는다. 그러나 위압적인 정도는 아니다. 한 발 한 발 걸어 올라가 본다. 바로 옆은 유치원이라 잘 걷지 못하면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을지도 모르겠다는 상상을 해보았다. 조금 갔을 뿐인데 풍성한 수국이 반긴다. 경사진 오솔길을 따라 주변 식물들의 향기가 배어 나와 걸음을 보채는 것 같아 힘든 줄 몰랐다. 보타닉파크는 기존 고산의 생태를 잘 보존하여 공원화했다고 한다. 사실 뒤섞거나 새로 조성한 공원보다 훨씬 깊은 장맛이 배어 나온다고나 할까? 깊다는 기운을 받을 수 있었다. 공원을 안내하는 스카이데크는 꽤 높은 고도로 길게 이어져서 그야말로 공중정원 속 신비로운 모험을 하는 듯했다. 공중을 걸으며 나무들이 가깝게 다가와 잎과 열매를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었다. 조팝나무, 아까시나무, 참나무, 소나무, 밤나무, 느티나무와 내가 알 수 없는 무수한 식물이 푸른 보자기 평원에 놀러 온 모양으로 가깝게 느껴진다.
조금 더 오르니 옥계전망대에 다다른다. 전망대에 오르니 여름 바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잠시 앉아 쉬는 동안 비가 쏴 하고 내리는 것이었다. 잠시간의 비였지만 더위를 식혀줄 요량이었는지 모를 시원한 기분을 선물로 받아 상쾌했다. 드문드문 보이는 사람들이 반가웠다. 좀 더 많은 이들이 산의 기운을 받았으면 하는데, 바로 너머로 흉물스러움을 넘어 안타깝기까지 한 아파트 단지가 보였다. 공교롭게도 검단의 순살아파트라고도 칭하는 공공주택 단지였는데 이젠 검은 그림자만 드리우고 있다. 건설 당시 주차장 붕괴 사고가 일어나 시공에 대한 불신이 쌓여 전면 철거 후 재시공을 결정했는데, 여태껏 건물 철거나 기타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흔히들 먹는 것 갖고 장난치지 말라고 하는데, 하나 더 보태서 집 가지고 장난치다간 큰일 난다는 알맞은 예가 아닐까 싶다. 아무튼 경각심이 생긴다.
한편, 서구에는 아라라는 지명이 많다. 바다라는 뜻의 순우리말이라는 설이 있는데, 알고 보니 문제가 있었다. 원래 바다라는 뜻은 없다고 한다. 그런데 물과 관련이 없는 아라라는 명칭이 틀린 의미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튼 이것저것 가져다 붙여 쓰다 보니 이런 일이 벌어진 건 아닌지 모르겠다. 검단신도시에는 이 명칭의 표기가 많은 걸로 안다. 우겨서 순우리말이 된다면 누가 이걸 순순히 따르겠는지 모를 일이다. 어느 때보다도 많아진 무근본 이름이 우리 땅에 그물을 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물코가 더욱 작아지기 전에 조처해야 할 것 같다. 충분히 우리말로 만들 수 있었을 텐데 하필 집값 타령으로 탈이 많이 생기는 것 같다. 아라보타닉파크 아래 길 건너편에는 맑은물빛공원이 있다. 두 경우 다 검단신도시 입주 예정자 협의를 거쳐 선정된 이름이라고 하는데, 순간 고산병이 왔는지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옥계전망대에서 검단의 미래 아닌 근래의 모습을 다스려 본 후 데크길을 따라 좀 더 올라가 보았다. 참나무 아래로 도토리가 많이 떨어져 있었다. 새소리에 가끔 아이들 뛰어노는 소리가 섞여 잠자리를 쫓아 날아다닌다. 산 아래엔 원당중‧고등학교와 한별초가 있다. 한별초 앞에는 웃목어린이공원으로 단장된 놀이터가 있었다. 또한 그 학교 뒤에는 공원명과 유사한 아파트(파라곤보타닉파크)가 있다. 이곳 또한 시공 논란이 많던 곳이다. 근처는 왕릉뷰 아파트로 뉴스에 오르내린 곳이 가깝다. 그래도 높은 지대에 오니 속이 다 시원하다. 겨울엔 아랫목이지만 여름은 윗목이 제맛이다. 바로 아래로 내려오면 되었겠지만, 산 능선을 따라 좀 더 걸어 보았다. 단풍나무 길과 소나무 길 사이를 걷다 고산터널 아래로 방향을 튼 후 주택가로 내려올 수 있었다. 가까이서 신검단중앙역을 가늠해 보고, 불로동 주택건설 현장을 바라본 후 되돌아왔다. 짧은 시간에 풍성한 원형과 변형의 자산을 엿볼 수 있었던 여름 모험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