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의 행정력에 달린 공공미술 프로젝트
[인천 공공미술 다시 보기] (7) 10년마다 열리는 독일 뮌스터 조각프로젝트 - 조경재 / 시각작가
세계적인 공공미술의 대표적인 미술프로젝트 중 하나는 독일 뮌스터 조각프로젝트(Sculpture Projects in Münster)가 있다.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는 베네치아 비엔날레, 아트 바젤, 카셀 도큐멘타 등과 함께 세계미술계의 주요한 행사 중의 하나이다.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는 10년마다 여름과 가을에 걸쳐 열리며, 전 세계의 예술가들의 작품을 도시 곳곳의 공공장소에서 무료로 전시되어 관람이 가능해진다.
이 프로젝트는 처음부터 주민들의 호응이 있었던 프로젝트는 아니었다. 1970년 미국의 조각가 조지 릭키(George Rickey)가 자신의 키네틱 아트 작품 〈세 개의 회전하는 사각형(Drei rotierende Quadrate)〉을 뮌스터시에 설치하자, 이에 대해 대중이 격렬하게 항의했다. 당시 뮌스터의 베스트팔렌 주립미술관(Westfälisches Landesmuseum)의 책임자였던 클라우스 부스만(Klaus Bussmann)은 이 대중적 불만에 관해 고심하며 공공장소의 예술에 대한 이해에 가교를 놓고자 1977년 미술관 강연 프로그램 개설에 착수했다. 이러한 지속적인 교육과 강연 프로그램을 통해 뮌스터 주민들은 천천히 공공미술의 필요성을 인지할 수 있었고 이러한 프로그램이 확장되어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로 발전할 수 있었다. 현재 뮌스터 주민들은 이 프로젝트를 매우 자랑스러워하며 작은 대학 도시인 뮌스터에 프로젝트가 가져오는 경제적 이익 또한 상당하다.
필자는 2007년부터 2014년까지 쿤스트아카데미 뮌스터(Kunstakademie Münster)에서 순수미술을 공부하면서 직간접적으로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를 경험할 수 있었다.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의 10년 주기는 다른 예술 프로젝트에 비해 매우 긴 준비기간이다. 선정된 예술가들은 기존 작업을 가져오는 방식이 아니라 몇 년간 여러 세미나와 장소를 모색하는 시간을 가진다.
필자가 공부할 당시 다양한 조각 프로젝트 위크숍에 참여하였다. 즉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는 혼자 하는 작업이 아니라 주민과 학생 참여 그리고 주변 환경의 오랜 시간 리서치까지 예술과 공공장소, 도시환경의 관계를 작가들 마다 해석하는 시간을 충분히 제공한다. 이러한 시간 동안 큐레이터와 디렉터, 행정을 하는 공무원 그리고 주민까지 적극적인 협업 활동이 이루어진다. 한 작품을 만들어서 특정 장소에 제작해서 설치되는 개념을 넘어서 공공미술가가 가져야 할 태도를 그대로 보여주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주민들과 같이 만든 작품 중에 <Speak to the Earth and It Will Tell You (2007–2017)>있다. 이 작품은 2007년에 텃밭을 가꾸는 뮌스터시 내 공동체들에게 기르는 식물과 날씨 등의 일지를 10년간 기록해달라고 요청했으며, 2017년에 여러 권의 장서로 묶어 전시되었다.
또한, 조각 프로젝트는 성공 여부는 공무원들의 행정력에 있다.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를 주최하는 LWL미술관과 디렉터팀을 주축으로 뮌스터시, 베스트팔렌주, 독일연방문화재단은 물론 여러 기업과 기관, 일반 시민들은 긴밀하게 연결하고 소통하여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이다.
당시 쿤스트아카데미 뮌스터 교수였던 아이세 에크만(Ayse Erkmen)의 <물위에서> 작품은 사용이 정지된 항만 물속에 다리를 설치하였다. 뮌스터 항만은 예전에 있었던 공장이 사라지면서 항만 주변은 상대적으로 뮌스터에서 낙후 되어진 장소였다. 에크만의 작품을 통해 많은 관람객들이 방문하게 되면서 단순한 여름날의 이벤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을 바라보게 만들었고 그 이후 버려진 공장을 리모델링되면서 Wolfgang Borchert 연극 극장도 이곳으로 이전하게 되었다. 공공미술은 단순한 작품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인식 변화를 만들어내면서 환경을 바뀌게 되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작품을 통해 만들어지는 인식의 변화는 온전히 작가 혼자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작가의 리서치로 만들어진 아이디어는 행정력이 밑받침 될 때, 비로소 실현화 될 수 있다.
한국의 공공미술은 어떠한가? 필자는 한국에서 여러 공공미술에 참여하였다. 대부분의 프로젝트에서 행정에서 제동이 걸리는 경우를 경험한다. 디렉터와 작가들이 리서치를 통해 만들어낸 아이디어는 공무원의 한마디에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조건 속에서 공공미술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위에서 언급한 <물위에서> 작품이 한국에서 실현이 가능할까?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울 것으로 생각된다. 안전상의 이유로 차단될 아이디어이기 때문이다.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는 10년 준비 기간 동안 행정력과 여러 시민단체의 협업과 협조를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인천시 동구는 지난 2023년 구청 대강당에서 배다리 문화·예술의 거리 활성화를 위한 사업 설명회를 개최했다. 금창동 주민과 배다리 지역 상인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설명회에서는 국내 선진지 견학 및 워크숍, 배다리 공공예술 프로젝트 공모사업 계획 배다리 축제 개최 계획에 대한 설명과 주민 의견을 수렴하는 시간을 가졌다. 또 배다리 주민 모임 구성에 대한 논의와 의견도 함께 공유했다.
이러한 설명회를 바탕으로 ‘공공예술 프로젝트 사업’의 일환으로 인천시와 동구가 주최하고 공모하여 주민참여형 인형극을 진행했다. 문화적으로 소외된 어르신들에게 문화 향유의 기회를 제공하고 지난 세대의 이야기 전달을 통해 세대 간의 소통과 교류, 갈등 해소의 장을 제공하고자 마련하였다. 주민 40여명이 참여하였다.
주제는 ‘배다리를 흐르는 물’로 진행됐다. 배다리와 동구에서 일생을 보내신 어르신들은 지난 8월부터 글쓰기와 인형극 강의를 들었다. 어르신들은 강의를 토대로 자서전을 쓰고 직접 만든 인형으로 인형극 공연을 발표회에서 진행하였다.
인천시 동구에서 이루어진 작은 이벤트일 수도 있는 이러한 설명회와 주민참여형 프로젝트는 공공미술의 큰 발전에 좋은 밑거름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된다. 이러한 교류와 소통 그리고 시간을 바탕으로 참여한 주민만이 누릴 수 있는 공공예술을 너머 다수의 시민과 방문객도 참여 혹은 관람이 가능한 확장된 공공예술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