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로 태어난 윤동주문학관
'우물 속의 영혼의 터'에서 윤동주의 혼을 만나다
2024-09-28 전갑남 객원기자
서울 종로구 서촌에서 부암동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에 윤동주문학관이 있습니다. 시인 유동주 이미지처럼 하얗고 소박한 모습의 비움을 담은 문학관이라 합니다.
윤동주(1917~1945)는 일제강점기 시대 살았던 시인으로 학창시절 교과서 만나 익히 알고 있습니다. 주옥같은 그의 시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고, 특히 청년층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습니다. 시인은 27세의 짧은 생을 마쳤지만, 70여 년 전에 쓰인 시가 오늘날에도 해맑은 영혼을 일깨워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별을 노래한 영원한 청년 윤동주
시인은 <별 헤는 밤>, <자화상>,<새로운 길> 등과 같은 시로 우리 말 우리글로 일제에 맞섰습니다. 우리는 그를 민족의 감성을 잘 표현한 시인으로 또 독립운동가라 부르는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윤동주를 불같이 행동하는 실천적 인간형이라기보다는 고요히 자아를 응시하는 내면적 인간형에 속한 사람이었다 평합니다. 그의 시에서 알 수 있듯이 밤하늘의 별을 헤며 예전에 알던 이국 소녀들, 순하디 순한 동물들, 그리고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와 같은 시인들의 이름을 불러보던 순결한 영혼을 가진 청년이었습니다.
너무도 유명한 <서시>에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다"라는 시구를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윤동주는 해방을 불과 여섯 달 앞둔 1945년 2월 16일, 차디찬 이국의 감옥에서 원인도 밝히지 못한 채 목숨을 거두었습니다.
윤동주의 죄명은 무엇이었을까? 일본어가 아닌 조선어로 시를 쓴 죄, 조선 문화의 유지 향상에 힘썼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라를 빼앗긴 비애와 아울러 분노가 치밀어 옵니다.
시인 윤동주는 연세대학교 전신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다닐 때 문우 정병욱(1922~1982)과 종로구 누상동에 있는 소설가 김송(1909~1988)의 집에서 하숙생활을 하였습니다. 옥인동 수성동계곡 아랫동네 서촌에 가면 그의 하숙집 옛터가 남아있습니다. 시인은 아름다운 인왕산에 올라 호연지기를 기르며 자연 속에서 시정을 다듬었을 것 같아요.
그의 대표시라고 하는 <별 헤는 밤>, <서시>, <또 다른 고향> 등은 젊은 학창 시절에 쓰였다고 알려졌습니다.
윤동주문학관은 우리의 말과 글을 지켰던 시인의 공간으로 지어졌습니다. 그리 크지 않은 문학관 건물이 이색적입니다. 2012년 문을 연 윤동주문학관은 인왕산 자락에 버려져 있던 청운수도가압장과 두 개의 물탱크가 의미 있게 변모한 곳이라 합니다.
윤동주의 숨결을 재현한 문학관
문학관이 화려하다기보다는 동선과 팥배나무가 드리우진 건물이 인상적입니다. 건물은 3개 전시실이 있습니다.
하얀색으로 된 제1전시실 시인채는 순백의 공간으로 윤동주의 작품과 시간적으로 배열된 사진자료와 친필 원고 영인본 전시되어 순수한 시인의 체취가 묻어있습니다. 실내에 윤동주 생가에 있었던 우물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앞에 새겨진 <자화상>이란 시에서 우물에 자신의 얼굴을 비춰보았을 시인을 상상해 봅니다. 끊임없는 자기 성찰을 했던 시인의 면모가 읽힙니다.
자화상(自畵像) - 윤동주산모퉁이를 돌아 논 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 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시에서 어두운 식민지시절 부끄러운 자신의 성찰을 표현한 시인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일본 유학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했던 창씨개명은 눈물 어린 참회와 서정을 한 편의 시로 끄집어냈습니다. 한 젊은 지식인이 겪었던 괴로움을 큰 아픔으로 느낄 수 있는 대목입니다.
만년필로 쓰인 육필원고에서 청년 윤동주의 정결한 필체가 생생하게 전해집니다. 그가 세상을 뜬 뒤 1948년 30여 편을 모아 나온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눈길이 갑니다.
드르륵 문을 열고 제2전시실로 발길을 옮기는데 이곳은 열린 우물을 연상케 하는 공간이라 합니다. 시 <자화상>에 나오는 우물에서 모티브를 얻어 원래 있었던 물탱크 지붕을 뜯어내 하늘과 바람과 별이 함께하는 공간으로 꾸며졌습니다. 하늘이 보이고 팥배나무가 드리워 묘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뜰 공간 자체가 하나의 우물을 형상화했습니다. 시 <자화상>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 듭니다.
닫힌 공간인 제3전시실로 들어갑니다. 여기는 그가 숨을 거둔 후쿠오카형무소의 차가운 감방을 연상케 하였다 합니다. 사색하는 공간이 되어 윤동주 시인의 일생과 시 세계를 담은 영상을 감상합니다. 시인의 번뇌와 고뇌, 치열했던 삶을 영상을 통해 엿볼 수 있습니다.
근래 상영된 영화 <동주>에서는 빛나던 미완의 청춘,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름 동주라 했습니다. 윤동주는 살아생전 한 번도 시인이라 불리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일제 칼날이 거센 때 우리말 우리글로 맑고 청정한 삶을 서정적으로 묘사하여 마음을 울린 시를 남겼습니다.
한국인의 가슴에 별이 되어 빛나는 시인 윤동주! 나는 세상을 향한 젊은 청년의 맑은 시선을 윤동주문학관에서 어렴풋이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