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개의 우물, 바다가 되어 흐르다
김미례 감독 다큐멘터리 '열 개의 우물' 극장 개봉 16일(토) 인천 영화공간주안에서 해님공부방 사람들과 대화 이벤트 열려
작년 12월 5일, 김미례 감독의 다큐멘터리 <열 개의 우물> 상영회가 부평테크시티에서 열렸다. 1980년대 인천 만석동, 십정동, 화수동에서 탁아운동,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던 여성들의 과거와 현재를 담은 영화다. 차별과 부당함에 맞서고, 가난함과 소외를 견디기 위해 맺은 인연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다. <열 개의 우물>이 극장에서 개봉한다. 인천은 영화공간주안에서 10월 31일부터 11월 20일까지 상영한다. 16일(토) 오후 3시에는 특별한 이벤트도 준비돼 있다. 십정동 해님공부방 학생이었던 문보미 씨, 강헌구 씨가 각각 진행과 공연을 맡아 관객과 소통할 예정이다. 영화는 전국 극장에서 상영되고 관객과의 대화도 다양한 패널로 준비되어 있지만, 해님공부방 학생들이 주체가 되는 이벤트는 인천에서만 진행된다.
2023년 상영회가 해님공부방 활동가들과 자모회의 끈끈한 유대로 성사됐다면, 2024년 극장 이벤트는 해님공부방 학생들의 기억과 성장을 중심으로 보다 입체적인 시각을 제공하는 셈이다. 진행을 맡은 문보미 씨와 대화를 나눴다.
만석동이 철거되고, 십정동으로 이사할 당시 보미 씨는 초등학교 2학년이었고. 동생 새미 씨는 그보다 어린 미취학 아동이었다. 그래서 보미 씨는 공부방으로, 새미 씨는 놀이방으로 갔다고 했다. 작은 공간이었지만 책이 많아서 공부방에 가면 주로 책을 읽었다. 벽에는 노래 가사들이 붙어 있었고, 공부방 아이들과 함께 노래를 배워서 줄곧 흥얼거리곤 했단다. ‘작은 세상’, ‘작은 연못’ 같은 노래였다.
함께 나누는 기쁨과 슬픔
함께 느끼는 희망과 고통
이제야 비로소 우리는 알았네
작고 작은 이 세상
“며칠 전에 영화를 다시 보는데 내가 참 잘 자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화면에는 못생기게 보이고, 누가봐도 안 좋아보이는 동네 풍경이지만 저는 보면서 마음이 따뜻하더라고요. 아마 제 친구들이 보면 ‘보미가 저런 곳에서 살았다고?’ 하면서 놀랄지도 몰라요. (웃음) 그래도 저는 그 곳에서 정말 잘 자랐어요.”
“좁은 집이 서로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문 열면 앞집, 옆집, 뒷집 다 보이고 그랬는데도 크게 문제 없이 서로 잘 지냈어요. 문을 잠가야 한다는 강박도 없었고요. 어떤 분들은 ‘엄마가 별나서’ 괜히 네가 어려운 동네에서 고생했다, 햇빛도 안드는 집에서 어떻게 컸냐고도 하세요. 근데 재밌게도 저랑 새미는 바퀴벌레에게 이름까지 지어주면서 그냥 재밌게 잘 지냈어요. 중학교 때부터 신문배달을 했는데 험한 비탈길을 자전거로 달리면서도 위험하다는 생각을 딱히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마을에 계신 여러 선생님들에게 돌봄을 받고 있다는 생각 때문일지도 몰라요.”
보미 씨의 별난 엄마, 겁도 없이 아이를 험한 동네로 데려간 엄마는 바로 홍미영(전 부평구청장) 씨다. 보미 씨는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를 존경했다고 한다. 보미 씨에게 어머니는 동네를 돌아다니는 주인 없는 강아지, 길 고양이를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고, 어려움에 처한 이웃에게 거침 없이 달려가는 사람이었다.
“한 번은 제가 어머니께 집에서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고 한 적이 있어요. 그랬더니 어머니께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다 강아지를 키울 수 있게 되면 그 때 우리도 키우자고 하셨어요. 강아지를 키운다는 건 경제적 여유가 있어야 되는 일이고, 책임도 따르는 일이잖아요. 어머니는 남들보다 더 갖는 것에 대해 항상 부끄러워 하시는 분이셨어요.”
어린 시절이었기에 기억하지 못하는 일들도 많았고, 어른이 돼서야 알게 된 일들도 많았다. 현재 여성학을 공부하고 있는 보미 씨는 그 시절을 이해하기 위해 자료를 찾아보고 여러 번 놀란다.
“당시에는 무슨 일인지 잘 몰랐는데 해님방으로 동네 아주머니가 뛰어와서 어머니께 ‘보미 엄마, 나 좀 숨겨줘요. 살려줘요’ 라고 하셨던 적이 있어요. 나중에 알았죠. 정부가 반 강제로 시행한 불임시술을 피해 도망치신 분이라는 걸.”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는 표어가 붙어있던 시기였다. 정부는 불임시술을 하는 병원에 지원금을 주었고, 병원들은 가난한 동네를 돌면서 ‘간단한 무료 수술’이라며 여성들을 꾀어 데려가 불임 시술을 시켰다. 사인을 한 뒤에는 ‘마음이 바뀌었다, 안 하겠다’고 해도 간호사들이 양 옆으로 팔을 잡고 봉고차에 태웠다고 한다. 정확한 정보도 충분한 상담도 진료도 없는 마구잡이 수술이라 후유증도 컸다. 해님방에서는 피해 여성들의 증언을 모아 건의서를 제출했다.
“동네를 순회하는 가족계획 요원이나 병원 봉고차에 유입되어 수술을 받았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밤낮없이 일해야 하는 형편인데, 당시 받은 수술로 인해 극심한 생리통, 구토, 허리통증, 하반신 마비 등으로 수시로 몸져눕게 되고, 그 치료비가 만만치 않다는 등 참담한 내용이었어요. 그런데 제가 여성학 수업에서 이런 얘기를 하면 다들 놀라요.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몰라요.”
“신소영 선생님이 증언하신 내용에는 아이들 관련한 내용도 있어요. 사람의 침을 원료로 하는 치료제를 만들기 위해 제약회사에서 침을 모으는 하청을 주면 하청업체가 아이들이 모여 있는 학교 앞 문방구나 오락실에 와요. 침 뱉는 통과 껌을 주고 침을 모으게 하고, 일정량을 모으면 250원 정도를 주는 식이에요. 그걸 위해서 아이들은 하루종일 껌을 씹고 침을 뱉기를 반복하는데, 결국 부작용이 오는 거죠. 목소리가 갈라지고 목이 붓고, 쓰러지는 아이도 있었어요.”
빈곤은 여성과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왜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 이토록 다른 기억과 불균등한 삶의 조건이 형성되는가. 다큐멘터리 <열개의 우물>에 등장하는 여성 활동가들의 가장 큰 문제의식은 이것 아니었을까?
탁아운동의 주체들은 그것을 변혁운동이라고 불렀다 한다. 그러나 그 의미와 역할에 대해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돌봄노동은 여성이 당연히 수행하는 것이라는 인식, 거창해 보이지 않는 생활 문제 해결이 세상을 어떻게 바꾸냐는 편견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테다. 그러나 너무 가난해서 국가 행정의 눈 밖에 난 곳에서 주민 공동체를 만들고, 살 권리를 주장하는 매일의 투쟁을 벌였던 그 치열함을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된다.
보미 씨가 살던 동네에 초등학교가 생긴 것도, 망가진 공중전화, 상하수도, 무너진 계단, 고장난 가로등을 고치는 것도 모두 해님공부방 구성원들이 해당 행정기관에 찾아가 수도 없이 민원을 넣고 항의한 끝에 쟁취한 결과다. 뭐 하나 고쳐달라고 하면, “그 동네는 사람들이 험해서 고쳐봤자 또 고장난다”는 답변이나 돌아왔지만 포기하지 않고 요구하고 싸웠다고 한다. 초등학교가 문을 열던 날엔 엄마들이 다 모여서 마루에 왁스칠을 했다. 우리가 만든 학교라며 다 같이 기뻐했다. 보미 씨는 더 이상 학교를 가기 위해 40분을 걷지 않아도 됐다.
보미 씨는 말한다. “저는 아직도 한 사람의 열 걸음 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란 말을 새기고 살아요. 제가 살던 동네에서, 조금 더 나은 삶을 만들어 주기 위해 노력한 어른들을 보고 배운 것이죠. 해님공부방 출신인 싱어송라이터 강헌구와 제 동생 새미는 성인이 된 후에 공부방 선생님이 되기도 했어요. 이것도 하나의 성과죠. 이런 노력이 과거 속에 묻히지 않게, 여러 사회 문제를 풀 수 있는 실마리로 만들 수 있게 저도 노력할 겁니다.”
2023년 제15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 출품된 이후 전국 곳곳에서 상영회를 하고, 올 해 극장 개봉을 한 <열 개의 우물>. 열 개의 우물로 엮인 이들과 그들이 키워낸 사람들이 있어, 이야기는 점점 더 확장되는 중이다. 더 이상 우물이 아니라 냇물이 된 것 같다. 바다가 되어 흐르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