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천 년, 죽어 천 년을 견딘다
[정충화의 식물과 친구하기] 주목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오래 살고자 하는 욕망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바람이었다. 불로장생을 꿈꿨던 진시황이나 우리 조선왕조의 역대 군왕들은 권좌에 있는 동안 온갖 좋은 것을 다 취하고 살았지만, 누구도 주어진 시간 이상을 살지는 못했다. 현대 의학의 발달로 평균 수명이 늘어나고 드물게 백세를 넘겨 사는 사람이 있긴 해도 인간의 수명은 기껏 백 년이 최대치이다.
그러나 자연계에서는 천 년씩이나 장수를 누리는 것들이 적지 않다. 여행을 하다 보면 곳곳에서 수백 년, 또는 천 년씩 사는 나무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들 나무는 대부분 천연기념물 또는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대표적인 장수 수종은 은행나무로 양평 용문사의 은행나무와 영동 영국사 은행나무,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 등 이십 수종의 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그다음으로 많은 게 느티나무인데 아마도 주변에서 보호수로 지정된 수백 년생 나무를 한 번쯤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밖에 보은 속리산의 정이품송, 예천의 석송령 같은 소나무를 비롯하여 백송, 향나무, 회화나무, 팽나무 등도 오래 사는 나무이다. 또 하나 빠뜨릴 수 없는 장수 수종이 오늘 소개하려는 주목이다. 지난 연말 수감된 BBK 저격수 정봉주 전 의원에게 명진 스님이 구속 직전 염주를 선사해 화제가 된 바 있다. 이 염주는 백두산 주목으로 스님이 손으로 직접 깎았다고 한다.
예로부터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을 견디는 나무로 회자될 정도로 오래 살고 재질이 강한 나무로 알려진 주목은 고산지대에서 잘 자라는 주목과의 상록 침엽 교목이다. 추위에 강한 수종으로 줄기는 적갈색을 띠며 얇은 띠 모양으로 껍질이 벗겨진다. 짧고 납작한 바늘잎은 나선상으로 달리고 옆으로 뻗은 가지의 잎은 2줄의 깃 모양으로 달리며 잎 뒷면에 두 줄의 황록색 줄이 있다.
잎은 사철 푸르지만 2~3년마다 떨어지며 그 자리를 새잎이 대신한다. 암수딴그루인 주목은 4월에 잎겨드랑이에서 꽃이 피며 열매는 9~10월에 익는다. 가을에 익는 열매는 종 모양의 붉고 두툼한 과육 속에 흑갈색 씨앗이 들어 있다. 민간에서는 약재로 사용하기도 하나 주목의 잎과 씨앗에는 유독성분이 함유돼 있다니 주의해야 한다. 주목 씨눈과 잎, 줄기에 기생하는 곰팡이를 이용해 택솔이라는 항암제를 생산하여 상품화하고 있다고 한다.
재질이 붉은 주목은 결이 곱고 아름다운 데다 습기에 강해 문갑, 바둑판 및 고급 가구와 조각품, 지팡이 등을 만드는 재료로 귀히 쓰였다고 한다. 원예품종이 많은 주목은 수형이 아름다워 조경수로도 많이 심어 흔하게 볼 수 있다. 신품종 출원등록기관인 내 일터에도 황금주목을 비롯한 다양한 품종이 있어 가까이서 이들을 매일 바라보는 즐거움을 누린다.
간밤 딸아이와 TV를 통해 울려오는 제야의 종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새해 첫 아침에 이 글을 쓰고 있다. 날이 가고 해가 바뀌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으려 생각한 지 오래여서 무심하게 임진년(壬辰年) 첫날을 맞았지만, 개인적으로 소망하는 바가 있다. 가장 큰 소망은 대통령 한 사람의 그릇된 아집과 독선 때문에 깎이고, 잘려나가고, 파헤쳐진 우리의 산하가 속히 치유되고 복원되는 것이다. 그리고 올해에도 건강한 가운데 다채로운 식물 이야기로 독자 여러분과의 만남이 이어지기를 바란다.
글/사진 : 정충화